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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4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4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구내아는 일각이나 생각에 빠져들었다가 입을 열었다.

하오시면 제가 이제 드려야 할 질문이 명확하군요.”


그러하냐.”


그렇습니다. 다만 그 전에 몇 가지 도움이 될 질문이 남았습니다.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이왕 이리 된 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본좌도 숨기지 않겠다.”


일단 호기심이 많이 섞인 질문입니다. 말씀하시지 않은 다른 절대고수에게는 무엇을 주셨습니까?”


언급하지 않은 사람은 소림의 수미인데 그는 승려이고 불문의 도리와 사문의 정리 말고는 딱히 세상에 남은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딱히 줄 것이 없었다. 본좌가 소림을 무림에서 지우고자 하는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면 그와 뭔가를 주고 받을 일이 없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나름대로 해탈의 큰 관문을 향해 대각을 이루는 삶의 여정을 걷고 있으니 본좌와는 적게 얽히게 된 셈이라 할 수 있다.”


대상맹에는 무엇을 제안하신 것입니까?”


대상맹을 이어갈 다음 세대는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었다.”


부모의 재산만 물려받아도 충분한 사람들이 욕심이 지나친 것 아닙니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저 부잣집 철 없는 젊은이의 망상과 허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물론 그 나이에 그런 좋은 배경을 지닌 젊은이들이 흔히 분수와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과시적인 업적을 세우고자 하는 일이 흔하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좌가 이미 말했듯이 본좌는 아무에게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좌가 판단한 사람에게만 주었다. 그러니 대상맹의 젊은 간사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못 이루고는 중요하지 않다. 속세의 부화뇌동 하는 자들은 그들이 성공하면 담대하고 원대한 계획과 야망이었다고 할 테고, 실패하면 무모하고 어리석은 젊은이의 치기라고 말하겠지만, 그건 평가도 무엇도 아니다. 새겨듣기는커녕 들을 가치도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에 관한 본좌의 판단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큰 일이 성공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의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라 그들이 사람의 할 바를 다하고 놓치는 것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마을에 와서 거래를 하고 다닌 일이 무슨 계획의 일부인지 모르겠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상인의 야망은 더 큰 상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촉땅을 지배하는 대상맹의 후대들이 바라는 것은 그럼 천하제일의 상인 정도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군요. 그런 게 가능하다면....”


거기까지 말하다가 구내아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는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여 말을 꺼냈다.

설마 촉한을 기반으로 거병 건국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신황조의 재정과 상계를 틀어쥐겠다 그런 생각입니까?”


그런 결론과 추측을 내리다니 훌륭하다. 산간 벽지에서 제대로 된 학문을 할 기회도 없었던 네 나이 청년이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답변을 하자면 네 추측이 맥락은 제대로 짚은 셈이다.”


구내아는 아직 자신이 깨달은 바를 스스로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에 거의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천하제일의 상인이 되려면 천하의 중심에서 황실이나 조정의 실세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원의 변방이 촉한은 물산이 풍부한 곳이나 여기서 아무리 부를 쌓아봐야 중원의 거상들을 밀어내고 황실이나 조정의 실세와 밀접해질 수는 없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상업적으로 진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아예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세워보자? 그렇지만 촉한에 한정된 나라를 세워 독립해봐야 어차피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한고조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제갈공명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여기서 발흥하여 중원의 황조를 갈아치우자? 듣자하니 지금의 황제는 우둔하기가 짝이 없고, 외적의 침략과 간섭이 심하니 이런 황조를 상대하는 것은 과거 초패왕이나 조조를 상대하던 조건에 비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 아닌가? 그런 것입니까?”


대체로 말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조금 전에 제해천의 현 문주 가문이 천하를 노리고 역성혁명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상맹의 간사들과 손잡고 거병하는 사람은 제해천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입니까?”


어째서 제해천의 가문 일원이 그 사람이 아니라 따로 명령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비록 이곳에도 대강(大江)의 상류가 흐르지만, 제해천의 문주 가문이 어떤 신망을 얻고 있는 지역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고조나 유비가 지녔던 정통성이나 명망이 있지도 않습니다. 무림에서의 위세와 명성이 드높다 하여도 그건 무림의 일이니 말입니다. 저라면 그런 사람이 무림에서 힘 좀 쓴다고 해서 우리 지역에서 난데 없이 나라를 세우고 임금입네 하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땅의 평범한 백성들이 면전에서는 말 못하여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나라는 거병천하는커녕 거병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진승과 오광의 무리처럼 그저 일어섰다 사라지는 무리가 되겠지요. 결국 민심이 천심이고 그 점을 모른다면 임금이 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옳은 판단이다. 그래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대상맹과 손잡고 거병을 하려는 사람은 소지막이란 사람이다. 관부에서는 꽤 이름있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야심과 능력이 큰 사람이지. 네가 말한 이 땅의 민심을 장악할 인망이 있는지는 이 지역의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만...”


외지인이 고관대작이라는 이유로 이 지역의 민심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유비와 제갈공명이 촉한을 얻으려 하던 시절에도 이 땅에는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세력이 있었다. 유비가 유일한 황실의 씨족도 아니었고, 하지만 유장이 물러서고 난 뒤 이 촉한의 호족들은 유비를 정통으로 인정하고 따랐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 외지인들을 섬기는 전통이 촉한땅에 이어지고 있지. 결국 그것은 이후 소지막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 구내아가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다시 말했다.

그 소지막이란 분도 단순히 어르신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군요. 그런 사람이라면 가치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이다. 그는 그 자신이 별도의 야심과 능력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가 완전한 것이 아니어도 잡으려고 

할 뿐이고, 그것을 위해서 어떤 도움도 마다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전의 창과 방패와 달리 이 소망은 서로 충돌하는 것 아닙니까? 소지막도 제해천의 문주가문도 천하를 노린다면? 그런데 어르신은 양측을 다 후원하는 듯하고 말입니다.”

사슴을 죽일 때까지는 손을 잡고 양측의 싸움은 사슴을 잡은 다음에 할 정도의 머리는 있는 사람들이지.”


천하제일..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제해천의 아무나 가도 소지막이란 분을 암살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소지막이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가 그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이라면 본좌가 내세우지도 후원하지도 않았다. 유방도 유비도 자기 부하들보다 강하고 똑똑하지 않았다. 정말 큰 사람이 되려면 자신보다 똑똑하고 자신보다 강하고, 또한 유능한 사람을 아래에 두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부하의 능력을 질투하는 상급자들이 조직을 망치는 법이다. 군주의 덕목은 각 분야에서 신하들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 압도적인 신하들을 두고 부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비슷한 원리로 유귀붕도 너를 수장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너 역시 구천십지의 인재들을 이끄는 구천십지제일신마로서 그런 능력과 태도를 함양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미뤄두었던 질문을 하겠습니다.”


듣겠다.”


어르신께서 우리에게 날 때부터 주신 것 외에 또 더하여 주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무엇입니까?”

화무제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학동을 보는 서당 훈장의 표정을 지으며 그 질문에 대답하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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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토욜에 올려드리고, 한편의 글 빚을 갚을까요 항상 송구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3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3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그런 수고를 하셨다는 말입니까?”

아니다. 그러나 본좌의 모든 의도를 말하고 싶지는 않구나.”

 

구내아는 화무제를 담담히 바라보면서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듣고 싶습니다.”


화무제는 구내아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본좌를 그런 눈빛과 태도로 제대로 된 무공도 없는 몸으로 그렇게 바라보며 말할 수 있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구나. 그래 조금은 털어놓아 보도록 하마.”


화무제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으로 잠시 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 네 친구부터 이야기하지. 유귀붕 그 아이를 보면 오래 전에 만났고 지금은 죽은 지 오래 된 내 제자가 생각나는구나. 그 아이의 무공 재질은 나쁘지 않았으나 절대고수의 영역에는 닿지 못했다. 하지만 총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그리고 마음에 품은 야심도 무척 컸다.”


어떤 야심이었습니까?”


천하를 암중에서 지배하는 단체를 만들고 그곳의 수장이 되려 했다.”


그런 단체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성공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군요. 실패했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고, 성공이면 암중에 있을 테니까요.”


천하를 암중에서 지배는 못 하여도 암중에서 조종하는 가장 큰 단체를 만드는 일에는 성공하였다. 본좌가 그 아이의 의견을 따라서 그 단체의 초대 수장이 되어 2년 정도 하다가 당시 군사 역할을 하던 그 녀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태상의 자리로 한 걸음 빠졌었다. 다 그 녀석의 계획에 있던 일이지. 스승에 대한 예우와 스승의 무공과 위광을 뒤에 업고, 여전히 태상의 자리에 있는 본좌를 소흘히 대하지 않으면서 만사를 의논하면서도 가장 좋은 계획을 들고 왔다. 그 계획의 목적을 반대하면 모를까 계획 자체는 반대할 구석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 사람이 유귀붕하고 닮았습니까?”


매우 닮았다. 본좌는 그래서 유귀붕이 너에 대해서도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경우는 네 목적과 녀석의 목적이 같이 갈 수 있는 것이어서 너는 수장으로 그는 군사로서 대업을 이루는 경우겠지. 한실(漢室)을 재건했든 못했든 유비와 제갈공명의 관계같은 이상적인 관계일 테고, 반대라면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갈라설 테지만, 실제 일어날 일은 그 중간 어디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는 유귀붕이 언제나 자신의 계획을 수정할 수 있는 예지몽 능력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어쩌면 네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다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다. 네 그릇이 정말 크다면 실제로 뭔가를 이룬 것은 유귀붕이 아니라 너이거나 혹은 네가 이룬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어르신도 그래서 제자의 계획을 다 알면서도 따라주신 것입니까?”


비슷하다. 본좌는 언제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받고자 하는 것을 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예를 들어 조금 전에 언급한 신주일군에게는 잘난 척 고고한 척 하면서 남을 돕는 척 아닌 척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편을 도와주면서 착하게 보이는 능력자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이 있다. 신주일군 본인 그걸 짐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신주일군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딱 좋은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자기 편을 돕지만 세상 일에서 한 발 물러나 초연한 모습을 지키는 자신의 정체성에는 더없이 적절한 상황이지. 본좌의 입장에서는 제 마음대로 낄 때 안 낄 때 참견하던 성격의 소유자에게 그런 성격이라면 마땅히 받게 될 대우를 해준 셈이다. 신주일군은 비겼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은 본좌가 비기도록 해 준 것이다. 본좌의 처지에서도 그 정도가 가장 대가와 보상이 균형을 이루는 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신주일군이라는 분은 당금 무림의 절대고수시죠? 그럼 다른 절대고수분들에게도 뭔가를 주셨습니까?”


검신에게는 영웅적인 죽음과 업적 가운데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다만, 일천검이 장렬하고 처절하게 그러나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죽거나 아니면 그 모든 적을 다 물리치고 살아남아 영웅적인 업적을 이룰 기회였다. 이것은 또한 결과적으로 신주일군이 자신에게 걸맞은 친구를 사귀는 기회를 주었고, 친구는 혼자서는 될 수 없는 것이니 나는 두 절대고수에게 친구를 선사한 셈이다.”


해명신군이라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의형제를 주었다. 그가 바로 내 의제이고 본좌가 그의 의형이다. 해명신군은 서출로 태어나 다섯 살에 본가에서 쫓겨난 이후로 좋은 가정을 이루고 좋은 사람을 만나 천하에 협명을 떨칠 문파를 세우겠다는 그런 소망이 잠재의식에 있었다. 본좌는 제해천의 전대 두 주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제해천의 문주 자리는 해명 아우의 자손이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제해천은 강호에서 가장 강한 문파이고, 특히 수상에서의 영향력은 말 한 마디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그 말을 듣고 구내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구내아가 생각에 잠기자 화무제는 아무 말도 없이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았다. 구내아가 촌각에 촌각을 더한 시간(10분 정도)을 고민하고 마침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해명신군의 자손들 즉, 현재 제해천의 문주와 그 가족에게는 무엇을 주셨습니까? 혹은 주려 하십니까?”


유귀붕이라면 단번에 궁금해하고 즉시 떠올렸을 의문이다. 역시 총명에서는 유귀붕만 못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고, 그것을 숙곡하여 괜찮은 질문을 찾아냈으니 너 역시 대단하다. 절대 보통 사람은 아닌 게지. 네 질문에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강호의 지배자가 아니라 천하의 지배자가 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천자가 되려 한다. 해씨 성을 국성으로 하는 황조를 개창하려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반역이지.”


그 말을 듣고 구내아는 약간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그런 사실을 말씀해 주시는 것은 이 대화의 끝에 저를 죽이려 하시기 때문입니까? 저는 저를 죽이려면 지극히 간단한 분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럴 의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편하게 대화했습니다만...”


네 말대로 본좌는 너를 죽일 의도가 없다. 네가 짐작한대로 있었다면 벌써 했겠지. 아니 애초에 너희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게 조작을 풍수지맥에 가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오늘 들은 사실을 가능한 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는 되는 아이라고 생각했기에 본좌도 말한 것이다.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해명 아우 본인은 지금의 황실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자식과 손자가 꼭 아비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좌는 서로 모순되는 그들의 소망을 다 지원하고 있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국은 어르신께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러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의 소망이라도 결국은 본좌의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을 만들고자 하는 각각의 두 대장장이가 있다면 본좌는 그 둘이 모두 소원을 성취하도록 해줄 것이다. 그 창은 언제나 상대의 방패를 뚫을 것이고, 그 방패는 언제나 적의 창에서 소지자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둘 다 무적의 방패와 창으로 남겠지. 본좌가 그 둘의 소망을 모두 이루어주고자 하는 한,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구내아가 다시 한번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저희는 마교가 원하던 사람이었습니까?”


정확하다. 너희는 마교가 오랜 세월 고대한 명존과 명왕의 도래라는 전설을 현실에 실현할 구천십지의 인재들이다. 본좌는 마교가 원하던 것을 마교에게 주었다. 비록 이미 너도 짐작하겠지만 그게 전체적인 이번 사건의 진상은 물론 아니고 일부의 진실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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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2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2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완전히 침상에서 일어난 구내아는 석연치 않은 몸 상태와 더불어 여러 가지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일단 창문이 이미 환하게 밝아있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마다 무척 늦게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이곳의 생활이 매우 편해서 매일 농사일로 단련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해이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배가 고프다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구내아는 이곳에서 주는 아침을 먹을 때까지 배가 고픈 일이 없었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치자 가만히 생각하던 구내아는 이미 아침 먹을 때를 놓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은 평소와 달리 너무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 아침 끼니를 놓쳐서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런 생각을 기다렸다는 듯이 후각에 어떤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방향을 향해 눈을 돌리니 문가 탁자에 쟁반이 있고, 그 위에 밥과 고기 채소가 갖춰진 아침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내아는 최근에 이곳에서 친해진 청년들이 구내아가 늦잠을 자자 굳이 깨우지 않았고, 심지어 끼니도 거르자 밥을 타다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준비해두었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마음도 들고 어쩌다 이렇게 늦잠을 잤을까 생각하면서 아침상이 마련된 탁자로 갔다. 그릇을 덮은 보자기를 걷자 그 위에 종이가 보였다. 그것을 펴자 아침상을 마련해둔 사람이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은 구내아가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평범하지 않았다.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고, 안에서 기다려라. 귀붕(貴朋).’


귀붕은 당연히 유귀붕일 것이다. 물론 글자 뜻만 보면 귀한 친구가 남긴 쪽지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요사이 유귀붕의 필체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그것이 유귀붕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굳이 자신의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남긴 데다 서명에 힘을 준 뜻은 

그가 구내아의 귀한 친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지는 쪽지였다.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순간 그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던 구내아는 다음 순간 생각난 듯이 문으로 움직여 문을 밀어보았다. 손가락이 문에 닿는 순간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은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단단하기는 했지만, 방 안에 있는 가구와 연습용으로 가져다 놓은 날이 없는 병기가 있으니 시간은 걸려도 강제로 열고 나갈 수는 있었다.


문을 막아 놓은 것은 필시 유귀붕일 테고 그는 똑똑한 사람이니 그 점을 모를 리 없는데 이렇게만 해 놓은 것은 구내아가 자신의 말을 따라주기를 기대했다고 봐야 했다.


도대체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지?’


그런 의문을 떠올렸으나 일단 밥이나 먹자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벽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구내아에게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밥을 안 먹고 남긴다거나 하는 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내아는 친구가 차려 놓은 상을 비우기 위해 들어 올리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음식에는 약이 들어있다.”


구내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은 방금 확인했고, 일어나서 방안을 한 번 둘러봤으니 방안에 사람이 없다는 점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구내아가 뒤로 돌아보니 구내아가 방금 일어난 침상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가 말했다.

놀랐구나. 당연한 일이지.”


그 남자는 넓은 장포를 입은 장년인이었다. 다만 구내아는 어쩐지 그가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수준으로는 이전에도 맹목검객이라는 장님 무사를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 사람도 돌아보면 갑자기 나타나 있고,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쩐지 그 사람보다 강한 기운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생각이 났고,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밥에 약이 들었다고요?”

그 편지를 남긴 자칭 네 친구가 넣었지. 독약은 아니다. 잠을 푹 자게 하는 약일뿐.”


귀붕이가 왜 저를 재우려고 하는 거죠?”


그 녀석은 오늘 이곳에서 나가려 한다. 그런데 이곳을 맡은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해줄 리가 없지. 유귀붕은 총명한 사람이라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자기 나름의 해결책을 만드려 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 녀석 딴에는 그것은 앞날을 위한 첫 포석이기도 하고.”


이곳 분들이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리란 점은 저도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귀붕이는 어떻게 하려 한다는 건가요?”


오늘 이곳을 방문할 마교의 수뇌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죽이고 그래서 자신들을 막는 사람이 없어지면 떠날 생각이지. 물론 자는 너도 데려갈 작정이다. 깨워서 갈지 자는 채로 업고 가든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 그런데 어르신은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좌는 화무제라고 한다. 너희들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


저희 와요?”


그렇단다. 너와 유귀붕과 그 외 구천십지에서 태어난 19명 모두와 관련이 있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니면 너희는 지금과는 다르게 태어났을 것이다.”


다르게요?”


너희는 풍수상의 기맥이 흐르는 외딴 마을에서 태어나 그 기운을 이었다. 그것은 대개의 사람이 지닌 인식으로는 흉지라고 여겨지는 그러나 실은 천마의 맥을 지닌 사람이 태어나기 좋은 땅이었다. 그러나 나는 천마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천마가 세상에 가져올 피해는 원치 않았다. 천마의 자질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 흉성이 깊어지면 능력 있는 악인이 될 테고 그러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겠지.”


저희가 악인이 된다고요?”


아니 그렇지 않다. 그것이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 되도록 내가 하늘의 기운을 담은 성좌의 배치에 따라 너희들이 태어난 마을 주변에 숲을 조성했다. 그 숲이 땅의 기운이 흐르는 것을 조정하고 변화시켜 너희가 필연적으로 타고날 마성을 하늘의 기운으로 조화시켜 인성이 충분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너희의 재능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었지. 물론 어떤 재능을 얻을지는 본좌도 알 수 없었다만....”


재능이요?”


그래 특별한 재능을 지녔지. 예상했던 것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더욱 대단한 일은 아직도 각자의 재능을 모두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본좌가 말이지. 예를 들어, 본좌는 네 재능을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나 네가 이들 19명의 기재들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명확히 알고 있다. 유귀붕 그 아이도 알고 있는 듯하다. 본능인지 학습으로 깨우친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제게 어떤 재능도 없어서는 아닐까요?”


본좌는 아직 개화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하늘의 이치는 매우 깊어서 본좌는 그것을 흉내 내 너희에게 불어넣었지만, 그 결과마저 본좌의 헤아림 안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있지도 않고.”


귀붕이의 재능은 뭔가요? 탁월한 총명함이겠죠?”


그것도 있다. 그러나 문재(文才)나 무재(武才). 둘 중의 하나는 너희들에게 기본적으로 갖춰진 바탕이 아닌가 싶다. 그것 말고 각자의 특별한 보통의 인간은 지니지 못한 재주가 있는데 유귀붕은 아마도 예지몽을 꾸고 그리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아이는 계속 자기 계획을 꿈을 꿀 때마다 수정하고 있지. 이것은 고금의 어떤 책사도 누리지 못한 특전이지. 자신의 계획이 실행되는 경험을 미리 하고 거기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고 고친다면 천하의 어떤 책사도 그를 당할 수 없겠지. 이런 능력이 있는 자라면 비록 삼류의 책사라도 제갈공명의 환생도 지략으로 누를 수 있겠지.”


다른 친구들은요?”


동물과 소통하고 그들을 부리는 아이도 있는 것 같고, 영혼만 빠져 나와 돌아다니는 능력을 지닌 아이도 있고.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본좌도 너희 모두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록 3일밖에 관찰하지 못했지만, 본좌의 능력으로 3일 안에 알 수 없었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다.”


구내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에게 이런 능력을 부여하신 것은 우리의 마성을 누르고 인성을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도록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본좌가 정말 원했다면 너희의 마성만 누르고 하늘의 기운이 지닌 여러 능력이 너희 각자에게 안배되는 일은 막을 수도 있었다.”


우선 어르신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런 안배를 해주신 일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인성을 함양시키는 일은 그렇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이런 재능을 주신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으신가요? 혹시 아무 염려가 없는 이유가 우리가 어떤 재주를 지녔건 통제할 수 있다

고 자신하시기 때문입니까?”


일부만 맞다. 너희 재주가 아무리 대단하여도 지금 무림의 절대고수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에 장차 절대고수가 나오고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무공과 결합한 절대고수가 된다면 그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니 본좌도 그것이 어떤 수준일지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재능을 지녔다고 절대고수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되어도 그것이 무공과 합쳐져 상승효과를 지닐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저희에게 하늘의 재능이 안배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똑같은 것만 있는 곳에 새로움을 더하고 싶었다.”


“?”

구내아가 이해가 안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화무제가 말했다.


무림을 시장이나 식당에 비유하자면 다 똑같은 음식만 팔거나 아니면 음식 장사만 시장에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림에는 여러 문파와 무공이 있고 그것들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 바탕은 비슷하다. 호랑이나 표범이나 사자나 다 비슷하듯이 말이지. 물론 지금 말한 맹수들의 싸움법은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호랑이들도 개체별로는 다르게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빨과 발톱 그리고 그에 연장된 근육의 힘으로 싸우는 것은 같지. 하지만 날개 달린 늑대가 있다면 그 싸움은 전혀 다르지 않겠느냐? 식당만 있는 곳에 향수 가게와 옷가게가 들어선다면? 그 새로움은 전혀 다른 종류의 다름이 아니겠느냐?”


왜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딱히 없을 필요도 없지. 사실 그보다는 그렇게 다른 종류의 재능은 무림에서 버틸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그런 다른 종류의 재능으로 무림에 행보한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재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신주일군 정도는 되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다.”


신주일군이요?”


그런 사람이 있다. 무공 말고도 여러 재주에 능통한 사람이지. 무공이 없어도 절대고수에 맞설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러나 신주일군은 천재였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대성을 이루었기에 거기에 무공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순서가 반대였다면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을까? 본좌는 모르겠다. 아마 신주일군 본인도 모를 것이다. 분명 신주일군은 무공이 없어도 어쩌면 절대고수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무공에서 먼저 절대고수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성취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조금이라도 무림에 접촉했다면 말이다. 본좌도 신주일군의 인생을 다 모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만 그래도 본좌의 생각이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어떨까? 하늘이 준 무공이 아닌 다른 재주를 지닌 너희들의 앞으로 행보는 어떨까? 어찌 궁금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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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한 편 더 써 올린다는 약속을 어겨 죄송합니다. 이 한 편의 글빚은 꼭 갚겠습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1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1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이렇게 두 번째로 권평서의 검이 사장로를 위협하자, 보고 있던 그의 부하들 역시 다시 한번 헛바람 소리를 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안혜빈의 공격이 함께라서 더욱 피할 길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라면 누구도 지금 공격을 막거나 피할 능력이 있는 자들이 없었다.


그러나 사장로는 달랐다. 그는 여용기산이라는 절세의 방패를 든 사람이 안혜빈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구절편도 얼마든지 방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장로가 구절편을 들고 회전하자 구절편도 사장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상이 생겼다. 권평서와 안혜빈의 검이 모두 그 잔상에 뚫지 못하고 퉁겨 나왔다.


두 사람의 검을 퉁겨낸 후에도 사장로의 회전은 멈추지 않았는데, 만약 이 자리에 안력 높은 고수가 있어서 본다면, 사장로가 구절편의 가장 끝을 잡았다가 중간을 잡았다가 하며 계속 잡는 위치를 바꾸며 몸을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권평서와 안혜빈은 그런 점은 보지 못했지만, 사장로라는 회전하는 태풍의 범위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사실을 보고, 그럴 것이라는 점은 파악할 수 있었다.


구절편이 온몸을 감싸면서 빠른 속도로 사장로의 주위를 돌기에 혹은 사장로가 그렇게 돌리고 있기에 어떤 공격도 들어가지 않는 형세가 되었다.


저렇게 빠른 속도라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라도 모두 막아낼 듯한 촘촘함과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장로가 그 상태로 적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구절편의 소용돌이는 발이 달려 움직일 수 있는 작은 태풍이었다.


권편서와 안혜빈은 즉시 마음이 상통하여 눈빛을 교환하고 안혜빈이 여용기산을 내밀며 앞으로 나섰고, 권평서는 그녀의 뒤로 섰다.


다가오던 구절편이 여용기산에 충돌하는 순간 안혜빈이 우산대를 돌렸고, 그러자 당연히 우산도 그에 맞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앞으로 쭉 내민 채 회전하는 우산에 구절편이 충돌하며 엄청난 폭음을 내었다.


구절편도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였으므로 여용기산에 쏟아지는 구절편의 충돌은 그야말로 한 여름에 우산에 쏟아지는 소나기 못지않았고, 소리 자체는 그보다 훨씬 큰 폭음이 연이어 터졌다.


예전에 화염공과 이왕 동일한 대결을 했던 안혜빈은 그때의 싸움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이란 만약 자신보다 무공이 심후한 고수와 붙게 되는 상황에서는 결국 여용기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용기산의 힘을 빌리는 방법이란 여용기산이 지닌 방어력을 믿고 최대한 활용하는 길이란 사실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따라서 장차 반드시 있을 그런 고수와의 대결을 상정하고 그 상황에 대한 대처에 미리부터 대비하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행여 싸움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고 전투의 주도권을 쥐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준비도 항상 해왔다.


그래서 다른 고수와의 대결이지만 사장로 역시 그녀보다 무공이 높은 사람이기에 싸움은 결국 같은 모습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염염공은 무기가 없었고, 사장로는 구절편이란 신병이 있다는 점이 달랐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이것은 같은 종류의 싸움으로 귀결된 대결이었다.


사장로는 몸을 회전하면서 한편으로 구절편을 그 회전하는 기세에 실어 공격을 보내었고, 안혜빈은 여용기산을 회전하며 그 기세를 죽이면서 한편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장로 역시 일단 밀린다면 비록 겉으로는 평평해 보이는 우산 면의 윗부분을 상대하는 것이지만, 그 공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전쟁터에서 누군가 방패를 자신의 앞에 두고 그대로 부딪치며 미는 수법을 사용한다고 할 때 그 방패 앞에 아무런 뾰족한 것이 없다고 그것이 위력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거나 방패로 적을 밀어내는 동작은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고, 그 동작 다음에는 다른 손에 든 무기를 사용해 방패 공격으로 흔들린 적이 자세를 회복하기 전에 공격하여 끝장을 내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용기산은 우산을 방패로 사용하는 방식이 그 운용법에 들어있고, 우산대에는 검이 숨겨져 있다. 다시 말해서 초식 자체에 한 손 검과 한 손 방패로 하는 싸움을 대비한 무공초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두 개의 방패가 충돌하는 내공 대결의 양상이 되었다. 어느 쪽이든 먼저 버티지 못하면 흔들리게 되고, 흔들리면 상대의 다음 수를 감당하기 어렵다. 구절편으로 이루어진 폭풍의 방패와 여용기산을 활용한 회전의 방패와의 대결로 방패와 방패

의 대결이란 점에서 무림에서 매우 희한한 대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이 통한 두 부부의 의도대로 권평서가 아내인 안혜빈의 뒤에 서더니 손을 뻗어 등에 대고 자신의 내력을 아내에게 전달하였다.


사장로의 무공과 내공이 권평서 부부보다 윗길이라지만, 그건 한 사람 한 사람을 봤을 때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의 내공이 합쳐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런 방어에서는 원래부터 그런 용도로 만들어지고 특별히 제작된 여용기산이 훨씬 더 유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두 가지 장점이 합쳐지자 사장로의 태풍은 기세가 줄어들면서 한 발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다른 방식의 대결로 싸움의 형태를 바꿀 방법도 없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것은 사장로의 필패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싸우는 사장로가 가장 먼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사장로는 이 내공 대결이 깊어지기 전에 그래서 자신이 빠져나갈 길이 없는 패배가 확정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결심하고 가진 내력을 폭발시켜 몸을 뒤로 빼냈다. 지금은 그렇게 일순간에 쏟아부을 내공이 있지만, 이런 내공 대결을 오래 한 후에는 그럴 기운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밖에 그럴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장로가 물러나자 권평서 부부 역시 상대의 의도를 대충 짐작하고 손을 거둬들였다.


사장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승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함께 가기로 합시다. 두 분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그렇게만 열없게 말하고, 수하들에게 정중히 대하라는 지침을 따로 준 후에 등을 돌렸다. 권평서와 안혜빈은 그 등 뒤에 대고 포권으로 예를 갖추고 떠날 준비를 시작하였다. 사장로가 분명히 뒤 돌아있었음에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한 손을 어깨 위로 조금 올려서 흔들어서 포권에 대한 답례 아닌 답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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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늦었지만, 간신히 오전에는 올렸습니다. 휴일이 많은 주간이라도 할 일이 없는 날은 없는 게 사람 인생인가 봅니다.

그래도 휴일이 많은 주간이니 이 주간에는 토요일 전에 한 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징검다리 연휴 평안하십시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12권 평서전기 하편 20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0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권평서의 검이 사장로를 위협하자, 보고 있던 그의 부하들 가운데 헛바람 소리를 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리고 어지간한 무림인이 보기에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없는 외통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장로를 비롯한 이 자리의 모든 무공을 아는 사람들이 권평서라는 두 번째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협공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위력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장로의 무공이 고절하니 이 한 수에 죽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권평서 부부에 비해 먼저 부상을 당하리란 사실은 명백해 보였다. 그 부상이 얕게 베인 정도에 불과할지라도 그래서 전체적인 비무에는 영향이 없을지라도 그 한 수를 먼저 당하게 되었다는 점은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생사를 걸고 하는 비무라면 다르겠지만, 사실 이 비무는 그 정도까지 갈 생각이 상호 간에 없는 비무였고, 그런 만큼 누가 우위를 먼저 나타내느냐가 중요했다. 누가 먼저 우위를 나타내느냐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누가 우세했는가 그리고 우세하게 마무리를 지었는가도 중요하지만, 문자 그대로 누가 시간상으로 먼저 우위를 나타내었는가도 중요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결과는 마교측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선을 제압당하고 시작하는 모습이 될까 걱정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사장로의 무공은 모두의 특히 그의 무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의 부하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장로의 구절편이 안혜빈의 여용기산에 얽히더니 힘이 들어갔고, 안혜빈은 여용기산의 통제권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 우산에 내력을 더 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산이 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자 구절편은 더 단단히 여용기산에 얽혔고, 사장로가 힘을 쓰자 마치 밧줄을 고리에 걸고 당긴 사람처럼 사장로의 몸이 빠르게 이동하여 안혜빈쪽으로 움직였다.


사장로의 상대의 힘을 빌려 쓰는 재주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한 수였다.


그 결과 누가 봐도 최소 옷가지 정도는 베이지 않고는 넘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권평서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고, 사장로는 권평서의 빠른 검속도를 비웃는 듯한 속도로 그 자리에서 이미 벗어난 뒤였다.


사장로는 몸이고 권평서는 검이니 이 신법 운용의 불가사의함과 구절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의 신기는 과연 암중 무림의 최대 세력이라는 평가를 듣는 마교의 장로답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권평서가 보기에 이는 그가 평가하던 것보다 훨씬 나은 실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이것은 같은 편인 사장로의 부하들이 보기에도 높아서, 사장로의 부하들은 상관에 대해 자신들이 지녔던 평가를 이 순간 마음속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었다.


사장로는 단순히 안혜빈쪽으로 붙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기세를 이용해 무서운 속도로 육박하고 있었다. 여용기산은 그 어떤 방패보다도 적의 공격을 잘 막아내지만, 아주 강한 힘이 부딪힌다면 그 충격까지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일반적인 방패에 비하면 우산대를 거치는 동안 그것을 잡은 손에 전달하는 힘을 상당히 줄여주긴 하지만, 사장로 같은 뛰어난 고수가 작정을 하고 몰아친다면, 사장로보다 공력이 낮은 안혜빈은 자칫 우산대를 놓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용기산의 초식을 배우는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일은 우산대를 언제든 놓치지 않고 또 손에서 놓아 보낸 여용기산을 제 때에 회수하는 방법이었다.



사장로의 돌진은 별로 효용성이 없었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졌기에 그의 구절편은 아까와는 달리 더 많은 부분이 안혜빈을 위협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는 구절편의 끝 한두 마디 정도가 안혜빈을 위협했으나, 지금은 사장로가 쥐고 있는 쪽 한 두 마디를 제외한 모든 마디가 안혜빈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연결된 그 마디마디는 놀랍게도 전혀 다른 조각처럼 떨어지더니 각자가 안혜빈을 여러 방향에서 공격하였다. 마치 여러 줄기의 번개 줄기가 안혜빈에게 여러 방향에서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내공이 높아 안력이 좋은 사람은 사장로가 다루는 구절편의 마디마디를 연결하는 금속실의 길이가 2장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거의 낚싯줄 굵기의 금속실이라 일반적인 안력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 금속실이 도대체 얼마나 저 아홉 칸의 마디에 숨어있고, 몇 장 길이까지 늘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사장로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한편으로 여용기산이 어떠한 공격 아래서 그 주인을 보호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도 그 주인말고는 없었다. 비록 여용기산의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더 있을지라도 현재의 안혜빈의 성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안혜빈이기 때문이었다.


안혜빈이 몸을 굽히는 순간 그 키가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던 마치 각자 따로 떨어진 별개의 마디처럼 공격해오던 구절편의 공격 방향은 여전히 사방이기는 했지만, 여러 방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안혜빈의 신법 하나로 구절편의 마디들 공격에는 그들이 원치 않는 방향성이 생겼다.


그것은 그 공격들이 사방에서 오는 공격이지만 한편으로 모두 위에서 오는 공격이라는 방향성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우산은 위에서 쏟아지는 것들에게는 본시부터 탁월한 효과를 지니는 물품이다.


사장로의 공격은 모두 안혜빈의 우산 위를 때렸고, 몸은 낮춘 안혜빈은 그 아래에서 안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우산을 때리던 구절편의 마디라는 빗줄기가 그친 찰나의 순간에 다른 손에 든 여용기검이 충분히 가까워진 사장로를 노리고 들어갔다.


같은 순간 권평서의 검도 아내의 공격에 완벽히 호응하여 사장로의 다른 빈틈을 노리며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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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일을 어기다 못해 이틀이나 늦어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알림] 연재가 늦어 죄송합니다.

이번 편 내일까지는 올리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연휴가 있으니 추가로 최소 한 편이라도 더 올리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9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9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권평서가 든 검은 다른 곳에서 구한 보통의 검이었다. 화룡검은 워낙 유명하고, 이 지방의 연고를 둔 명문거파인 점창의 시선을 받을 일이었기에 그런 물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나았다.


화룡은 연검이라 허리띠로 사용할 수 있었고, 권평서는 그 위에 넓은 천으로 한 번 더 둘러서 옷을 입었기에 겉으로는 그런 물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노출되지 않았다.


명왕일종의 4대장로의 별호는 혼괴광난이라 그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혹은 악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명왕일종의 4대장로를 지칭하는 혼괴광난은 전적으로 그들의 무공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괴장로 사남우의 무공은 괴이하다는 평을 듣는 무공이었다. 아니 그 말은 틀렸다. 그의 무공은 괴이하다. 다만 그 괴이하다는 방향은 이런 경우에 괴이하다는 말이 사용되는 일반적인 유형과는 조금 달랐다.




 

괴장로 사남우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부부라 들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한번에 덤벼도 좋다.”


권평서가 그 말을 받았다.

저라면 둘이 있어도 귀하의 상대가 되지 못할지 모르나 제 내자는 혼자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빨리 결말을 보는 편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 실례를 무릅쓰고 저도 내자에게 힘을 보태려 합니다.”


괴장로 사남우는 그 말을 듣고 권평서를 잠시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내가 되어서 아내를 높이는 그 태도를 못났다고 해야 할지 그러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보이니 범속치 않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뭐 아무튼 대화는 이쯤에서 그치지.”


권평서의 말은 아내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언제나 그렇듯이 명확히 현실을 파악하고 직시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실 이 시점에서는 권평서의 의형제 가운데 그의 무공이 가장 쳐졌다. 권평서는 이 시기에 타기곡이 정신적 성숙을 위한 침잠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자신의 의형제가 가운데 자신의 무공이 가장 약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정면 승부를 한다면 여산민에게는 이기겠지만, 막내 아우의 장기는 암기와 독공이니 실제로 싸운다면 지는 사람은 권평서일 것이다. 대형인 한내역은 동정호에서 헤어질 때 자신보다 심후한 내공을 지니고 있었고, 개인의 성격과 무공의 특징상 나날이 그 내공이 깊어지는 사람일 테니 점점 그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여사민은 원래 검법이 그보다 나았고, 태도의 가벼움과 달리 무공에 관해서는 남모르게 정진하고, 검법 외에 다른 무공을 손대지 않을 테니 그 진보 역시 현재나 미래에나 자신보다 나을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런 것을 짐작하는 일에는 구체적인 현재의 사실을 명확히 알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권평서는 자신의 아내인 안혜빈이 오히려 자신보다 무력이 높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천하사대기병의 하나인 여용기산의 위력이 뛰어난 탓에 그렇기도 했지만, 여용기산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안혜빈과 잘해야 동수를 이룰 수준 정도라고 여겼다.


권평서는 자신의 강점과 할 일이 그런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분발하는 마음은 있을지언정 아무런 자괴감이나 시기심 따위는 물론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감당할 책사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다른 형제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무공에도 정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뿐이었다.

 




괴장로 사남우가 꺼내든 무기는 아홉 간의 마디를 지닌 대나무 지팡이 같았다. 어찌 보면 죽검객의 죽장검과도 비슷했는데 그보다는 훨씬 한 마디의 길이가 길고 마디도 아홉이나 되어서 전체적으로는 검이 아니라 창에 가까운 크기였다.


괴장로 사남우의 무림에서의 명성이 작지 않고, 권평서는 원래 이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저 대나무 창이 실제로는 대나무도 아니고 창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것은 구절편이라는 무기로 일종의 채찍 같은 무기였다.


대나무의 내부에 금속으로 된 실이 있어서 실제로 휘두르면 그 길이가 더욱 늘어났다. 이 구절편은 워낙 익히기 어려운 무기이고, 내공이 없으면 아무런 위력을 보일 수 없는 무기여서 강호에서 익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창이나 칼은 전혀 내공이 없는 사람, 심지어는 무예를 전혀 익히지 않은 사람의 막 휘두르는 방식도 위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구절편은 내공이 없는 사람이 휘두르면 작대기만도 못하다. 아홉 마디를 단단히 연결하고 있는 것이 없으므로 보통 사람은 

일직선으로 세워서 들고 있을 수조차 없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괴장로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 내공이 심후한 무림인이므로 평소에도 마치 그 크기의 대나무 지팡이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

. 그것만으로도 일단 그런 무기를 사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과시할 수 있는 무기가 이런 유형의 구절편이었다.

괴장로 사남우는 일부러 구절편을 뻗었다. 권평서 내외의 방향이 아닌 자신의 우측 방향으로 부하나 다른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구절편이 좍 늘어나며 원래 길이의 두 배는 더 멀리 뻗어 나갔다. 구절편의 마디마디가 벌어지면서, 그 사이에 각 마디를 연결한 금속의 실이 보였다.


얼마나 더 늘어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권평서가 이제까지 강호에서 본 어떤 채찍보다도 더 길이가 길었다.


괴장로는 자신의 무기가 어떠한지를 보여주어 나중에라도 뒷말이 나오거나 비겁하다는 말을 들을 여지를 없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선수를 양보하고 싶지만, 내 무기의 특성상 그래 봤자. 오히려 자네들에게 불리할 테니 바로 내가 시작하지.”


그 말과 함께 방금 보여주었던 늘어나는 구절편의 방향이 그들에게로 향하면서 뻗어왔다.


이 수법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알기 쉬운 대처는 안혜빈이 여용기산을 방패로 사용하여 막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안혜빈은 그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안혜빈은 그런 방식으로 대처했다.


구절편이 앞으로 내밀은 여용기산을 후려치더니 퉁기면서 위쪽의 마디가 꺾이면서 우산의 내부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마디는 세 칸이었지만 각 마디 사이는 크게 벌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공세의 범위는 우산을 방패 삼아 방어한 공간을 다 무위로 돌리고 우산 뒤에 있는 안혜빈의 팔은 물론이거니와 머리까지 타격할 정도로 넓었다


선수를 양보하는 일이 의미 없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공격이었다. 선수를 양보하면 채찍류의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불리할 것 같지만, 상대가 일반 채찍이 아니라 구절편이라면, 자신을 지나온 마디가 꺾이면서 상대의 뒤를 공격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 구절편의 공격 초식이었다.



안혜빈이 여용기산으로 적의 공격을 막을 때 지금처럼 그 공격을 해소하지 못한 일이 없었는데 과연 이 무기의 특별함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방어수단을 괴롭히는 괴이한 점이 있었다.


다만 안혜빈은 처음부터 상대의 무기 특성을 알고 있어서 구절편을 쳐내도 마디가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상대를 거의 쫓아다닐 정도로 민활하게 움직인다는 점을 생각해 두었기에 즉시 우산대에서 검을 꺼내어 구절편을 쳐내려 했다.


그러자 우산에 가리어 그 뒤편을 정확히 볼 수 없을 텐데도 사남우의 구절편 마디가 두 번째 마디는 왼쪽으로 세 번째 마디는 오른쪽으로 꺾이는 듯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잡 무쌍하게 안혜빈을 노려왔다.


안혜빈은 연달아 그 공세를 검으로 쳐내면서 돌연 여용기산을 놓아버렸다. 그냥 놓은 것이 아니라 강한 내공을 담아 솟구치게 했기 때문에 여용기산의 윗부분에 걸쳐져 있으며, 걸쳐진 부분의 먼 쪽이 자유롭게 안혜빈을 노리던 구절편 전체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여용기산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부력이 굉장히 커서 우산에 닿아 있는 구절편도 그 영향을 받았으며, 그 때문에 구절편은 전체적으로 높이 올라가서 옆에서 보면, 마치 사남우가 공중으로 45 각도로 구절편을 치솟게 한 것으로 보였다.


다만 여전히 구절편의 끝은 사남우의 손에 있었기에 사남우는 즉시 구절편을 움직여 안혜빈과 권평서를 노리려 했다.

그렇지만 공중으로 올라갔던 여용기산은 다시 내려오면서 구절편의 진로를 방해했다.




 

공중에서 구절편 여러 마디가 각자각자 여용기산과 충돌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안혜빈이 여용기산으로 구절편을 치고 있는 것인지 구절편이 여용기산을 마디마디로 쳐서 주인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충돌의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두 사람의 무기는 서로의 주인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충돌하는 형국이었다. 구절편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몰라도 여용기산에게 잘려나가지 않으니 그 단단함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가 무기의 강함을 겨루는 가운데 이쪽에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고, 권평서가 사남우 장로에게 거의 접근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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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욜에 올려야 하는데 항상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8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8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권평서 일행이 가장 가까운 객잔까지 이동하는 동안 무림인을 아무도 만나지 않은 일은 절반은 행운이고 절반은 두 처녀가 가진 능력 덕분이었다. 한 사람은 들키지 않고 어디든 빨리 다닐 수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잠을 자야만 하지만, 그래도 예지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능력을 모두 사용하여도 현재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기에 무림인을 피해 객잔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일은 행운과 능력이 겹친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행운은 무한히 지속되지 않았다.





 

이제 등영림이 자기와 같은 구천십지의 인재들이 끔찍한 일을 당할 것을 알고 권평서 부부를 깨워 움직일 준비를 마치고 객잔의 문을 나서자 바로 그 앞에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앞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명 뒤에는 다시 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좌우로 움직여 권평서 일행을 포위하는 중이었다. 설령 객잔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여도 이 작은 객잔을 완전히 포위할 기세였기에 들키지 않고 도망갈 길은 없어 보였다.

 



이 무리를 이끌고 온 사람은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마교의 명왕일종의 4대 장로 가운데 괴장로인 사남우(史南宇)였다.


사남우는 권평서 부부를 보자 말없이 손짓하였고, 그러자 그 간단한 손짓을 이해한 듯, 막 완성된 포위망에 정면을 막아섰던 10명이 더 움직여 새로운 포위망을 더 강화하였다. 객잔이 작다고는 하지만, 객잔 밖에서 전체를 포위하려면 30명 정도로는 간격이 넓어 포위망이 약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정면을 막은 인원을 줄이더라도 남은 3면의 포위를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괴장로는 권평서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덕분에 아직 예를 갖추지 못한 권평서는 그제야 포권으로 인사를 하였다.


괴장로가 권평서보다 연장자이니 먼저 인사하는 일은 당연하였다. 괴장로 역시 무거운 태도로 그 인사를 받고 곧 자기 말을 꺼냈다.

그 뒤에 동반한 두 소저는 본교와 인연이 깊으니 본좌와 같이 갔으면 하오.”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사입니다. 그러니 이 두 분 소저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 말에 괴장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소저에게 말을 하려 할 때 등영림과 옥소홍은 말도 들어보지 않고 바로 거절하였고, 거절의 말만 한 옥소홍과 달리 등영림의 말이 이어졌다.

사장로님은 유과를 좋아하시지만, 저는 싫어해요, 향초를 쓴 음식도 싫어하고요. 아 그래도. 전병 중 하나는 맛은 괜찮았어요. 조금 딱딱하기는 했지만요. 저를 위해 준비했다는 방의 요강은 너무 무거워요. 그거 비우러 다니는 일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사장로님의 둘째 아드님과 달리 저는 돈이 무조건 좋지는 않아요. 매우 많은 돈은 매우 많은 어려움을 의미하니까요. 우리 가족은 안전하니까 그걸로 저를 협박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제일 처음 준비했던 옷 그거 비단이긴 한데 만든 모양새가 너무 형편없었어요. 저는 치렁치렁 끈이 달린 옷은 싫고요. 빨간색 옷은 더욱 싫거든요.”



괴장로는 처음에 이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나 싶다가 그것이 모두 다 구천십지의 인재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 물품 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혹시 옷에 끌리는 여자가 있을지 몰라서 옷도 준비하고, 재물도 준비하고, 처음 맞이하는 장소에서는 맛있는 다과도 내놓고 말을 안 들으면 가족을 볼모로 삼아 협박도 하는 등의 나름대로 준비를 해두었는데 이 아가씨는 보기도 전에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괴장로 자신의 사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 점을 알아차리자 괴장로는 저도 모르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가씨는 그런 일을 어떻게 아는 거요?”


사장로님과는 이미 여러 번 만났어요. 적어도 저로서는 그렇죠. ! 이런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제가 이런 일이 많아요. 제 입장에서는 친숙하거나 다 아는 일이라서 상대방 처지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란 사실을 잊는 일이 있어요. 죄송해요. 제 이름 정도는 우리 마을에 다녀오셨을 테니 아시겠지만,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등영림이에요. 알고 계시겠지만, 이 애는 옥소홍이고요.”


뭔가 순서가 바뀐 인사 같지만, 일단 만나서 반갑소.”


솔직히 저는 반갑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바꿔도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거 같으니 이쯤에서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이렇게 객잔 앞에서 만나는 일은 미리 알지 못했어요. 이 부분은 몰랐어요. 하지만 유귀붕 그 녀석을 만날 때 그 자리에 사장로님이 계셨어요. 그러니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서 그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아마도 지금 그곳에 있을 친구들을 빼고는 다 이 자리에 있으니까요.”


괴장로 사남우는 아직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등영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그 추측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등소저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소? 무당처럼?”

무당 같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질문하신 내용은 맞아요. 미래를 봐요.”


그래서 처음 만났어도 많은 일을 알고 있는 것이고?”


네 맞아요.”


유귀붕이란 친구를 전에 만났소?”

유귀붕뿐 아니라 지금 거기 데려다 놓은 사람들 아무도 만난 적 없어요. 현실에서 직접적으로는 없었다는 말이죠. 하지만 제게는 다 친숙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만나기도 전에 다 죽는 일은 싫어요.”


다 죽는다고?”


제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안 믿으시나요?”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믿어야 할 것 같소. 내 나이 정도 되면 터무니없는 일을 믿는 일의 어리석음도 알고 터무니없다고 치부하고 버려둔 일 때문에 겪게 되는 참혹한 결과도 아는 나이요. 이 경우는 터무니없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경우 같구려. 더구나 우리가 모으는 구천십지의 인재들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은 나도 잘 아니. 더욱 믿어야 하겠지.”


그럼 잘 되었어요. 그 사람들이 모두 죽기 전에 어서 가요.”


구천십지의 인재들이 모두 죽는다는 말이오?”

처음에는 그랬어요. 그렇지만 하룻밤에도 여러 번 꿈을 꾸는데 그때마다 결과가 달라졌어요. 이제 거의 그 뭐냐.....”


권평서가 등영림이 자신이 해줬던 말을 기억해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도와주었다.

양패구상.”


맞아요. 양패구상. 이제는 거의 그 단계까지 왔어요. 아마 나중에는 유귀붕이 계획한 대로 당신에 광난의 두 장로와 인의 두 장로 그리고 그들의 수행원 그 계단이 가운데 나있는 건물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까지 모두 죽을 거에요. 주약전인가 하는 그들의 사부도 죽을 테고 하여간 아마 그렇게 될 거에요.”


잠깐? 꿈을 꾼다고 그러면 등소저가 미래를 보는 방법은 예지몽을 통한 것이란 말이오?”


, 그래요. 지금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장로님이 우리를 지금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 도착했을 때 사장로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금 전에는 우리와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


사장로님의 교단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곳에 가는 일은 그것과는 별개예요. 만약 우리를 데려가지 않으면, 사장로님의 사람들도 모두 죽을걸요.”


좋소. 이랬거나 저랬거나 어차피 두 분 소저를 모시려던 곳은 그곳이었으니 갑시다. 일단 가고 생각합시다. 다만....”


괴장로 사남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등영림이 먼저 말을 잘랐다.

이 두 분도 같이 가야 해요.”


그것은 곤란하오.”


가지 않으면 더 곤란해질 거에요.”


이 두 사람의 능력으로는 본좌를 곤란하게 만들 수 없소.”


그 말에 권평서가 나섰다.


등소저가 말한 곤란함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지만, 지금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우리가 그 곤란함을 보여드려야 하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권평서는 검을 뽑고, 안혜빈은 우산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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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욜에 올려야 하는데 항상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12권 평서전기 하편 17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7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유귀붕이 초사력과 마음으로만 통하는 말로 친구인 비이기(費利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인과 의장로는 명왕일종의 광난(狂亂) 두 장로와 손속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 넷의 실력은 매우 비슷하여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그만큼 작은 실수나 변수만 있어도 승부는 어이없이 끝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귀붕은 적절한 시점에서 친구인 비이기가 아무 몸에 들어가 잠시만 경직 시키면, 승부의 균형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한편으로 그렇게 만들게 하려고 초사력에게 언제든지 자기 방 침상에 누워 있는 비이기에게 말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었다.


다만 이 경우 초사력도 자기가 눈앞에 빙의해 온 그 몸에 담긴 비이기에 영혼에 말을 거는 것인지 침대에 누워서 조종하는 비이기에게 연락하는 것인지는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초사력의 재주는 일반적인 시야가 닿은 거리라면 중간에 벽이 있거나 산이 있거나 계곡이 있거나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거리가 문제이지 중간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전달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자기 말이 어디에 전달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넓은 곳에 가서 비이기를 여기저기 놓아두고 자리를 바꿔가면 실험하면 알겠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었고, 중요한 것은 일정 거리 안에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점이니 크게 지금은 딱히 그 호기심을 충족할 필요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안에서는 비이기가 원래 자기 방에 있건, 남에게 빙의하건 어차피 유효거리 안이기 때문에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유귀붕과 그런 심산을 지니고 있었으나, 사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아마도 유귀붕이 무공에 관한 식견이 조금만 높았으면, 그것을 조금 미리 눈치챌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인장로는 목숨을 걸고 자신과 싸우는 난장로의 공격을 간신히 피해 잠시 노려보는 대치 상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유귀붕이 모르던 점이 이것이었다. 유귀붕의 실력으로는 당대 무림의 거대세력인 마교 장로가 펼치는 무공을 보고 그 의도를 짐작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온갖 수를 사용해 간신히 이 기회를 얻어낸 인장로는 상대인 난장로에게 외쳤다.

이보게,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적의 흉계에 걸린 듯싶네.”


난장로는 습관적으로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하려다가 인장로의 진지한 표정과 자신 역시 이 일에 의구심이 있었기에 잠시 손을 멈추고 말을 들어보려 했다.


인장로는 매우 어색하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죽어간 양측의 고수와 새떼를 자유로이 부리던 이곳의 구천십지의 학생들 그리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 주약전 등을 언급하며 이것이 교내의 음모가 아니며, 자신들 명존지종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명왕일종의 계획도 아니지 않겠냐고 설득하였다.


그 말을 듣는 가운데 다른 두 장로와 남은 두 명의 수하도 싸움을 자연스럽게 그쳤다. 그러나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상태라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고, 특히 명왕일종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저 두 장로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인데 그냥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강해서, 인장로가 목숨을 구걸하여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 살아보려고 하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강했다.


유귀붕은 여기서 끼어들어 선동질하여 다시 상태를 싸움으로 밀어 넣으려 하는데 인장로가 상대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다음의 한마디를 하였다.

만약 이것이 그대들 명왕일종이 정말로 우리를 제거하기 위해 세운 계획이었다면, 나중에라도 그게 사실이라는 점이 밝혀진다면, 내 기꺼이 만인이 보는 앞에서 자결하겠네. 명존께 맹세코 그리하지. 하지만 나는 이것이 저기 있는 구천십지의 인재, 아니 저 나쁜 놈들이 불순한 목적을 지니고 우리를 상잔하려고 꾸민 계략이라고 생각하네. 거듭 말하거니와 그게 아니라 그대들의 계획이라면 최소한 나 한 사람은 명존에 맹세코 자결할 걸세.”


양종의 누구든 모시는 신을 걸고 하는 맹세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그것으로 상대방이 진심이고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네 명의 장로와 두 명의 수행원은 즉시 시선을 구천십지의 인재들에게로 돌렸다.


유귀붕이 자기 머리를 탁치며 말했다.

! 이런 한 수가 있었네. 이걸 생각하지 못했다니 이런 이런. 이제 이를 어쩐다. 이기가 한 명을 묶어도 남은 3인 장로의 공격을 지금은 우리가 수는 많아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말하던 유귀붕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정면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장로들에게서 자신들 뒤편의 문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래의 와선군사에게는 이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습니까?”

모두가 유귀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4인의 장로는 공력이 높아서 누군가 밖에 도착해 이제 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어떻게 같은 교단의 사람이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된 이곳에 침입해 여기까지 와서 문을 열게 되었는지 몰랐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권평서와 안혜빈 그리고 최근에 만난 두 처자 옥소홍과 등영림이었다.

 




 

 

 

등영림은 잠에서 깨어나 옷도 대충 걸치고 바로 옆방의 문을 두들겼다. 권평서와 안혜빈은 잠 들어 있었으나 무공도 없는 사람이 기척도 지우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데 계속 자고 있을 사람이 아니기에 바로 몸을 일으켰다. 등영림은 안에서 사람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자 아직 객잔의 방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외쳤다.



어서 일어나세요. 우리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몽땅 죽을 거에요.”


권평서는 침상에서 내려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또 미래를 본 게구나! 알았다.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한편, 유귀붕은 잠에서 깨어나며 말했다.

이 여자애랑 처음 만나는 날짜와 장소는 계속 바뀌는군. 어제는 우리가 장로들에게 전멸할 때 나타나서 죽어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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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재를 상습적으로 하루 밀려 죄송하고 분량이 적어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12권 평서전기 16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6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형제를 공격한 명존지종의 수행원의 표정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각자의 처지에서 다양하게 해석하였다. 명왕일종의 두 장로는 그 표정을 뭔가 사정이 있어 강압 때문에 시키는 일을 내키지 않아도 했으나 막상 저지르고 나니 자신이 더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때 명왕일종의 수행원 중 하나가 몸을 재빠르게 일으켜 탁자를 넘어 반대편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형제를 공격한 후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어찌할 줄 모르던 그자를 공격하였다. 양편의 어느 장로가 보기에도 그 공격은 성공할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공격하고 당황한 마음이 너무 컸는지 수행원 여섯의 평균적인 실력은 고사하고 여자를 담당한 지도자인 고종비라도 막을 수 있는 공격이 그대로 적중하였다. 그렇게 멍한 상태인 적수의 천령개를 격파해 일장으로 격살한 명왕 측의 수행원이 남은 한 명의 멀쩡한 수행원을 공격하였다.


이때는 이미 양편의 장로들이 사정을 따지지 않고, 대치상태에 들어갔는데 서로의 실력이 비슷한 만큼 어느 쪽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명존 측에서는 명왕 측이 뭔가 일을 꾸며 자기 측의 수행원을 배신시켰고, 이 자리가 필시 그들 두 장로를 노리고 만들어진 함정이라고 이른 시간 안에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 측인 명왕 측 장로들도 그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이곳에 오지 않은 두 장로나 그중 하나가 일을 꾸민 것이라면 자신들에게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곳에 온 장로들도 당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일을 계획했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자기편을 의심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명왕 측 두 장로는 같이 온 다른 자기편 장로는 자기와 달리 아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품고 있었다.




 

한편으로 형제를 죽인 수행원을 격살하고 이제 명존 측에서는 유일하게 남은 멀쩡한 수행원을 공격하던 명왕 측 수행원의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태에 대해 이미 같이 온 셋 중의 하나는 죽고 하나는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자기에게 명왕 측 수행원의 공격이 들어오자 남은 명존 측 수행원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력을 끌어올려 일생일대의 공격으로 맞받았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적중하리란 생각보다는 상대도 부담을 느끼고 물러서면 한 박자 쉴 틈을 찾아 싸움의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공격이 그대로 들어갔다. 상대방은 일부러 그 공격을 맞아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대처하더니 그냥 그렇게 전력을 다한 공격을 그냥 맞고 쓰러졌다. 그럴 거면 왜 그런 흉험한 기세로 한 사람을 죽이고 남은 명존 측 사람을 공격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말이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일단 그런 공격이 성공했어도 전세는 그들이 불리하였다.


명왕 측의 남은 두 수행원 역시 사태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물어볼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갑자기 이런 유혈극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그간 교내의 양측 종파의 사이였기 때문이다.


명왕 측의 남은 두 수행원은 명존 측의 남은 한 명을 상대하여 죽이거나 제압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때까지는 대치만 하고 있던 4인의 장로 역시 각자 상대를 맞아 22의 대결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였고,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출수를 망설이지 않았다.

 



고종비와 학생들은 갑자기 싸움터가 된 장소에서 물러나 새떼들의 공연이 펼쳐졌던 마당으로 조금씩 움직여서 싸움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양측 역시 고종비와 학생들의 움직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학생 중에 최소한 유귀붕은 어떤 식으로든 이 사태와 연관이 있고, 당연히 교내의 고위층 누군가와도 연관이 있는 관계일 거라고 짐작하였다.


 

명존 측의 두 장로인 인장로와 의장로는 자신들의 수행원은 하나만 멀쩡하고 명왕 측은 둘이 멀쩡한데 실력은 동반했던 여섯이 모두 비슷하였으니 싸움은 보나 마나라고 생각하고 21의 대결에서 이긴 명왕 측의 수행원이 가담하기 전에 상대 장로와의 대결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이 일을 꾸민 것은 아무리 봐도 명왕 측인 것 같으니 더욱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들 수준에서는 넉넉히 막으리라고 생각했던 명존 측 수행원의 공격을 명왕 측의 수행원이 마치 넋이라도 나간 듯이 그대로 맞으며 바로 절명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싸움은 완벽하게 33의 대결이 되었고, 서로의 실력도 매우 비슷하여 쉽게 결착이 나지 않는 상태로 들어섰다.


싸우는 양측이 모두 마음 한구석에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지만, 그런 점을 의식해서 싸움을 중지하기에는 눈앞에 당도한 상대방이 매우 강했다. 더구나 양측은 오랜 앙금이 서로 쌓여있는 상태라 미심쩍은 상황에 대한 의심보다는 본래 갈등하던 상대에 대한 의심이 더 강했다.


유귀붕은 양측이 서로 싸우느라 아무 짓도 못 하자 물러서 있던 마당에서 천천히 걸어서 가장 처음 부상을 입고 빈사 상태에 있던 명존 측의 수행원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꽤 길이가 긴 단검을 꺼내더니 그 수행원의 가슴에 박아 남아있던 명줄을 끊었다. 이 사람은 유귀붕이 그렇게 천천히 단검을 꺼내 서두리지 않고 자신의 가슴으로 내리 찌르는데도 어떤 반격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위중한 상태로 그냥 두어도 죽을 것 같았지만, 유귀붕이 확실히 처리하였다.


유귀붕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단검을 갈무리한 다음 싸우고 있는 명왕 측 장로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빈사에 처한 적이나마 마무리하여 충성심을 보였으니 명왕종에서는 약속을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유귀붕이 그렇게 말하자 싸우던 사람들은 더욱 이 상황에 대한 일말의 의심을 접고 상대방을 해치우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유귀붕과 고종비 그리고 남녀 학생들이 마당으로 물러나 싸움을 지켜보는데 학생 중 하나인 초사력이 말을 걸어왔다.


이곳의 학생들은 제각각 특별한 재주가 하나씩 있었는데 초사력은 특별하게도 재주가 두 가지였다. 그 두 번째 재주는 이곳에 와서

야 그들도 알게 된 것으로 서로 시야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다면 그들 같은 운명을 타고난 19명과는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고도, 또 무림에서 사용되는 전음입밀의 수단이 없어도 대화할 수 있다는 능력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초사력만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초사력은 누구든지 마음으로 말을 걸고 그렇게 마음으로 말을 건 상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고, 원할 때 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초사력이 없으면 이곳에 모인 청년들 사이에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반대로 초사력에게만 어떤 말을 전달하면 아무도 모르게 모든 친구들에게 그 말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능력을 지닌 사람은 초사력과 여자 학생 숙소의 다른 여제자 한 명 그렇게 둘뿐이었다.


유귀붕은 일부러 구내아 등 몇 사람에게는 시험하지 않았지만, 시험할 것도 없이 초사력과 다른 여학생의 능력이 그렇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초사력은 일정 시간에 유귀붕에게 말을 걸어 필요한 사항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전달받은 내용을 초사력은 다른 남자와 또 같은 능력을 지닌 여자에게 전달하였고, 여자는 자기 친구에게 전달하여 그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상황에서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올 수 있었다.


그런 초사력이 마음으로 물어온 것은 특별한 정보가 아니라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은 여섯의 대결에는 이기가 끼어들지 않아?’


이기는 비이기(費利器)를 가리켰다. 비이기의 능력은 유체이탈이었는데 단순히 유체이탈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빙의한 몸을 지배하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지배당하는 처지에서는 의식은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고, 원치 않는 행동을 막을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실험에 따르면, 그들과 동류인 19명의 구천십지의 인재에게는 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 같은 동류가 아니면 누구에게든 빙의할 수 있었다. 절대고수에게는 안 될지도 모른다고 유귀붕은 추측하였지만, 그것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귀붕은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연속으로 너무 많은 사람에게 들어갔다 나왔다 했어. 너무 일찍 빠져나오면 본래 몸의 주인이 지배권을 되찾아 공격에 반응하거나 반격할 수 있지. 그래서 가장 마지막 순간에 더는 본래 몸의 주인이 몸을 되찾아도 막을 수 없는 순간까지 버텨야 해. 그렇지만 죽는 순간까지 버텨서 지배한 몸이 죽으면, 죽지는 않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껴 그러면 한동안은 다른 일을 못 하지. 이기 그 친구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아무런 고통 없이 매번 성공해도 기운이 빠져서 쉬지 않으면 안 돼. 자기 몸에서 벗어나는 것은 온종일 그래도 상관없는 듯하지만, 남의 몸에 들어가는 것은 한 번만 하여도 힘든 일이라 하더군. 지금은 자기 몸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아직은 다 계획대로야 저들은 실력이 비슷해서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기는 그사이에 기운을 회복하고 다시 저들 중 하나에게 들어가 그 몸을 마비시킬 테고 그런 식으로 하나만 남을 때까지 반복하게 될 테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그렇게 남의 몸에 들어가면 그 몸의 무공도 다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그럴 수 있지만, 지금은 그저 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해. 그 몸이 훈련해 온 재주를 사용하는 일도 아직은 어렵지. 그러니까 만약 이기가 숙수(요리사)의 몸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는 없다는 뜻이지. 그렇지만 몇 년 뒤에는 요리사가 지닌 재주, 예를 들면 빠르고 정확하게 야채를 가지런히 써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전히 그 상태에서도 요리는 못해. 요리는 야채를 써는 능력, 불의 온도를 아는 지식 등등 여러 가지가 결합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고기는 언제 준비하는 언제 써는지 야채는 어떻게 써는지 밀가루는 언제 반죽할지 고기 써는 일과 밀가루 반죽하는 일 중에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준비한 재료는 어떻게 보관하고 언제 화덕에 넣을지 요리사의 몸을 지배하고 칼질 능력이나 다른 모든 능력을 자기 것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인 상태일 테니까....’


그럼 지배당한 자의 무공을 펼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겠군.’


그래. 언젠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기로서는 어렵지.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야 우리의 재주는 아직 충분히 여물지 않았어.’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건 내 재주 때문이지. 나는 같은 인생을 꿈속에서 많이 살고 있으니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이 결국 훈련이 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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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일을 매주 하루 늦어 죄송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무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허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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