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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9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9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교단의 양종을 대표하는 4인의 장로가 안으로 들어서자 남자를 가르치는 주약전과 여자를 가르치는 고종비가 모든 남녀 제자와 하인들까지 이끌고 장로를 맞이하였다.


4인의 장로는 이미 보고받은 숫자 그대로 정확히 제자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만족하였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학생 중 하나가 마치 좌우에 주약전과 고종비를 거느리는 것처럼 중앙에 서서 그들을 영접하고 있었다.


4인의 장로들은 전에 만났건 아니건 간에 보고 받은 제자들의 신상명세를 머릿속으로 더듬어서 중앙에 선 남제자의 이름이 구내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장로 중 하나가 주약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


그러나 주약전이 대답하지 않자 다시 그들의 눈은 여제자를 담당한 고종비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머뭇거리는 태도만 보일 뿐 상급자인 장로의 말에 시선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시선이 주약전에게 향하고 말이 이어졌다.

교단의 장로가 묻는데 대답도 하지 않을 셈인가?”


주약전의 시선이 구내아에게 향했고, 구내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직접 말씀드리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스승님이 직접 답변하십시오.”


주약전은 마치 상급자의 허락이 떨어졌다는 듯이 자세를 다시 다듬고 입을 열었다.

저는 본교가 오랜 기간 기다려온 염원과 교의 미래가 제가 맡은 이 제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들을 교의 중심이자 지도자로 삼아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들의 스승으로 이들과 인연을 맺었지만, 이제는 이들의 대업에 참여하는 일원이 되어 본교의 오랜 염원과 무수한 숫자의 본교 교인들의 기대를 이루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양측의 장로들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이들을 본교의 교주로 추대하기라도 하겠다는 뜻인가?”


당장은 아니겠으나 장차는 그리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명존이든 명왕이든 이 땅에 현세하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었고, 이들이 그 꿈을 이뤄줄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렇게 모은 것이 아닙니까? 이들을 도구로 사용하고 그 쓸모가 다하면 버린다는 것은 강호의 도리를 논하기 전에 본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나쁜 일입니다.”


네 말이 옳다 하여도 이들을 본교의 교주로 올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인간을 명왕이나 명존으로 받들고 섬기는 것도 본교의 교리와는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저도 이들이 명왕이나 명존의 현세 강림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본교가 바라는 세상을 당겨서 가져와 줄 사람이라면 그들을 굳이 도구가 아니라 영도자로 세우는 일도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이건 뭔가? 애들을 가르치라고 보냈더니 홀리기라도 한 것인가?”


교의 이상을 잃고 종파적 편견에 사로잡혀 대의를 잊은 것은 바로 지금의 교단 수뇌입니다.”


방자하다!”


그때 구내아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아직 귀교에 입교하지 않았습니다. 교단 양종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귀교에 가입하길 바라는 마음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장로들은 주약전과 일을 끝내고 싶었으나 구내아에게 일단 주목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감정으로는 분명 교단의 하급자로서 망발과 도리를 벗어난 행태를 범하고 있는 주약전에 신경 쓰였으나 오랜 경험으로 보아 지금 이 자리에서 집중해야 할 상대방의 대표는 구내아라는 현실에 집중하기로 판단을 내렸다.


상황을 대국적으로 보려는 이러한 태도는 일방의 장로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품성이기는 했으나 갖추기는 어려웠다. 그러한 훈련받은 혹은 경험 많은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촉한의 심저(深底)를 지배하는 마교의 장로들이 양종 어느 쪽이라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 아래 장로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너 혹은 너희들이 주약전 같은 심지가 굳은 사내를 고종비와 더불어 너희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잘 알겠다. 그것만으로도 너희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래 그 정도 능력이 없다면 너희에게 기대하는 우리가 잘못일 테니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것은 너희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냐? 그러한 능력 과시 다음에 입교를 이야기하다니 감히 입교에 조건을 달아서 본교에 들어오겠다는 것이냐?”


구내아가 답했다.

크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우리는 귀교를 벗어나 우리만의 세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의 힘으로 어느 정도 위세를 지니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무런 기반 없는 젊은이들이 일방의 세력을 이루는 어려움이 적지 않겠으나, 귀교에 입문하여도 그 안에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텃세를 극복하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어려우냐 문제일 뿐 어렵다는 사실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본교에 입문을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고 입에 담는 이유가 있겠지.”


물론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타고난 재주와 배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우리만의 색깔을 지닌 단체와 세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교가 지닌 문제점이 그리 크지 않다면 이미 조성된 기반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선택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귀교는 이미 이 땅에 있는 세력 중 가장 우리와 비슷한 색깔을 지닌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명문정파가 우리에게 호의적일 리가 없고, 설령 호의적이어도 우리와 동색이 아닙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우리와 같은 색을 논할 단체는 귀교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귀교냐 아니면 우리끼리냐 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는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귀교에서 우리끼리가 아니라 귀교여야 할 이유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조건을 내걸면 되겠는가?”


잠시 고민 끝에 한 장로가 물은 질문이었다. 물은 사람은 하나였지만, 다른 3명의 장로 역시 그 질문을 하고 싶었고, 그 대답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였다.


구내아가 그 질문에 대답하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처우가 아닙니다. 물론 누구나 귀한 대접을 받고 싶겠지만, 좋은 처우를 받건 나쁜 대접을 받건 그런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귀교는 둘로 분열되어 있으며, 한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더 큰 세력을 쥐고 있어서 우리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고, 우리가 교내에서 큰 지위를 차지하게 해줄지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 그것도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지금 말씀드리는 일은 우리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를 의미한다는 점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우리의 가야 할 길이 궁금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처럼 분열되어 서로 다른 가치관과 다른 목표를 지닌 집단에 가입한다면 우리는 그 내부 알력 싸움에 가장 먼저 동원되기에 십상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단의 입장을 정리하여 주십시오. 합의하든 싸우든 우리가 귀교에 가입하여 추구하고 이 땅에 실현할 가치가 무엇입니까? 명존의 밝은 교리로 세상을 감화 시켜야 합니까? 명왕의 출현으로 극락정토를 실현해야 합니까? 이곳에 있으면서 당신들이 비치해 놓은 책들을 꽤 읽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방금 말한 명왕이니 명존이니 하는 것은 결국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교리를 세상에 퍼뜨릴 때 왕도(王道)를 택할 것인가? 패도(覇道)를 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 둘 중 어느 쪽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는 곤란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 한 마리도 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본교에서 오랜 세월 논의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 문제이다.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아무리 대단한 가치가 있기로서니 입교 조건으로 정할 문제도 아니거니와 우리가 너희를 얻고 싶다고 갑자기 해결책이 생길 일도 아니다. 설령 해결책이 있더라도 그것이 절대 쉬운 길이 아닐진대 그런 어려운 해결책을 가야 할 이유로 너희들의 입교가 그 정도로 무게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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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글 빚이 독자분들에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이 글의 빠른 완결을 위해 더 부지런해야 하는 작가에게는 소중한 독자에 대한 더 큰 빚이 있음을 압니다. 항상 송구합니다.



허안 배상


[알림] 연재 지연

죄송합니다. 개인 사정으로 연재 지연을 알려드립니다. 

휴재까지는 아니고 가능한 한, 주중에라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이는 먹고 할 일은 많은데 여러 사정이 뜻대로 되지는 않네요.

이러니 저러니 해봐야 독자분들에게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작가는 죄송하고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8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8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구내아는 이 식탁에 앉을 때 내려놓았던 밥상 쟁반을 손가락으로 힘주어 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귀붕에게 밥을 먹이지 않아도 재울 수 있어서 다행인가? 생각해보면 녀석이 나에게 먹이려 한 밥을 자기가 먹어서 잠이 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인 듯도 하고...”


그렇게 구내아가 속마음을 겉으로 작은 소리 나마 드러내어 말하는데 속마음으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구내아는 그 부름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부터 익혀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말을 하는 것처럼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해보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속으로 생각만 하는 방법과 그것을 소리 내 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마음으로 전달하는 방법의 차이도 쉽게 추론하고 곧이어 실제로 해낼 수 있었다.


여러 친구가 각자의 방식으로 물었지만, 질문의 요지는 결국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생각인지 묻는 내용이었다.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은 다른 친구들 역시 생각은 비슷할 것이라고 구내아는 추측하였다. 구내아는 아마도 지금 일종의 심어(心語)라고 할 수 있는 이 마음을 통한 대화에 현재 이곳에 끌려온 모든 친구가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금 전에 잠든 유귀붕은 당연히 제외하고 말이다. 구내아는 그 사실을 마음으로 모두에게 확인하였다. 이 식당에 있건 배당받은 자기 방에 있건, 이 건물 어느 구석에 있건 남녀 친구 모두가 마음으로는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고, 또한 구내아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다음 구내아가 입을 열었다. 물론 비유적인 의미에서다.

너희는 내게 어찌할지 묻고 있지만, 그것은 내가 할 질문이다. 너희는 어찌할 작정이냐?’


마음속의 질문이 마음속의 침묵으로 돌아왔다. 구내아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는 무슨 생각으로 유귀붕의 계획에 따랐지? 그가 총명해서 그의 계획을 따르면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다 치고 유귀붕의 계획이 성공하고 실패하고를 떠나서 그 계획이 너희를 위한 계획이라는 확신은 대체 어디에서 얻은 것이지?’


그 말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듣고 있는 친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는 사실을 구내아는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곳의 대우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고, 이용하다가 우리가 무능해지면 버릴 것이고, 혹은 우리가 그들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해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귀붕은 우리가 이곳을 벗어나 힘을 합치고 또 함께 힘을 기르면 누구도 우리를 이용하거나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총명했고, 또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의도는 몰라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누군가가 마음으로 전해온 말이었고, 모두가 그 말에 공감한다는 느낌도 전해져왔다.


구내아가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 말은 옳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얼마나 힘을 합쳐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유귀붕이 나를 빼놓고 일을 하려 했고, 그 결과는 내가 보기에는 실패다. 우리에게 지금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같은 문제로 남아있다. 나아진 점은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힘을 보탤 것이라는 점이다. 나 한 사람 힘을 보태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구내아는 여기서 말을 끊었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의 전달을 끊은 것이지만, 그리고 다시 모두의 주의를 새롭게 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전달받아 느끼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전에 우리 중에 나의 위치를 정해야 하겠다. 너희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희의 수장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졌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너희에게 달렸다. 최소한 그런 정도는 스스로 결정해라 앞으로 너희를 대신해 결정하고 이끌 수장을 선택하는 일만이라도 스스로 아니 그 일이니까 더욱 스스로 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늘이니 운명이니 뭐니 하는 것에 기대지 말고 선택해라. 그 선택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어도 이곳을 나갈 때까지는 서로 협력해야 하겠지만, 그 후에는 자신의 선택한 대로 살아도 내가 그것에 간섭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구내아에게 말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의논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마치 내용을 알 수 없는 대화가 멀리서 수군거리며 이어지는데 자신은 들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말이 전달되어 왔다.

유귀붕도 품을 수 있다면 좋다.’


구내가아 간단하게 긍정했다.

나 역시 바라는 일이다. 그가 나를 거부한다면 몰라도 나는 그가 나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생각들이 구내아에게 전해졌다.


구내아는 고개를 돌려 엎드려 잠든 구내아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유귀붕의 뜻을 알아야겠군.”


그리고 그를 언제 깨우는 것이 좋을지 고민할 때 유귀붕이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깬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구내아는 잘 모르지만, 유귀붕은 언제나 잠에서 깰 때 자신의 계획이 틀렸어도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수정할 계획을 짜는 사람이지 결과가 나쁘다고 어두운 표정을 짓는 사람이 아니기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고, 마음 속의 심어로 그것을 전달받은 곳곳의 

모든 친구들의 마음도 어두워졌다.


따라서 이 무리 중에 유일하게 평정한 얼굴을 한 구내아가 돋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 꿈에서 무엇을 봤지?’


구내아가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그 내용을 듣고 구내아가 생각했다.

과연 화무제라고 해야 하나? 결국 우리가 갈 수 있는 길 가운데 몇 가지는 애초에 갈 수 없는 길이었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하늘이 내린 나의 적수(敵手)의 양부모라고 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초면에... 초면이 아닌가? 아무튼, 다짜고짜 죽일 수는 없는 일인데 말이지. 여기에서 벗어나는 일과 마교와 척을 지는 일 따위는 그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지. 화무제여 당신과 뜻을 같이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이 바라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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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독자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7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7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유귀붕이 말이 없자 구내아가 다시 물었다.

자네가 본 미래에서 내 자리는 어딘가?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애초에 그들 자리가 있기는 한가? 있다 하여도 혹시 그게 자네의 발밑인가? 아니면 자네의 마음 안에 있는지 그것이 가장 궁금하네.”

 

여전히 유귀붕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진심이 그게 아니라고도 맞는다고도 할 수 없는 여러 마음이 혼재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스스로 이 무리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그러한 야망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구천십지의 인재들을 자신의 야망의 도구로만 여기지도 않았다.


구내아는 유귀붕의 그러한 심리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질문을 하지? 자네는 내 능력이 뭔지 알고 있나? 나도 사실은 내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네.”


유귀붕은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실대로 내가 아는 바를 이야기하겠네. 구내아 자네의 능력은 우리의 능력과 연결되어 있네. 자네는 원한다면 우리의 능력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네. 자네가 원하고 또 우리와 일정 거리 근처에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더욱 강해지네. 다만 이건 내가 꿈에서 이미 봐서 아는 일이고 그렇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미래의 우리를 보았기에 아는 것이라. 누구의 능력을 어느 정도 어떻게 강력하게 해주는지는 확실히 모르네. 앞으로 차차 알아갈 일이 되겠지.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자네는 우리의 능력을 없앨 수 있네. 아니 없앤다고 할 수는 없고, 끈다고 해야겠군. 촛불을 끈다고 양초가 없어지지는 않으니 끈다는 표현이 맞겠어. 하여간 자네는 직접 대면하고 있다면 그리고 자네가 원한다면 우리의 능력을 끌 수 있네. 그리고 자네가 다시 켜줄 때까지 우리는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없지.”


그 말이 진실하다는 점을 알겠지만, 어떻게 그리하는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강화는 어떻게 하는 것이지?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고, 오늘은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사건이 몇 시진 안에 다가오고 결정 날 것으로 생각하는데 아닌가?”


맞네.”


그렇다면 자네의 불완전한 계획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아낼 시간도 부족할 테고, 설령 계획을 바꾸고 싶어도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유귀붕이 그 말에 반문했다.

어쩌란 말인가?”


식당이란 장소나 탁자 위라고 해서 잠을 청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 자네 능력은 일종의 예지몽 아닌가?”


그걸 알고 있었나?”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알았네. 하지만 잠이란 것이 자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졸리네?”


그리고 유귀붕은 바로 식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등영림은 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 표정으로는 충분히 소리지르는 얼굴로 잠에서 깼다. 마차 안에는 등영림과 옥소홍 그리고 권평서와 안혜빈이 타고 있었다. 마교의 장로와는 아직 서먹한 면이 있어서 같이 동승하지 않았다.


마차라는 것이 아무리 안락해지고 싶어도 길이 평탄하지 못하면 안락하지 않다.

더구나 천천히 가면 조금 낫지만, 빨리 길을 재촉하고 있다면 편안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등영림은 쉽게 잠들었고, 그리고 덜컹거

리는 마차의 진동이 아니라 꿈의 내용 때문에 놀라서 깼다.


안혜빈은 등영림이 매번 미래를 보고 그 내용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기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저는 괜찮아요.”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그 음색에 실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권평서가 가장 먼저 그 대답에 담긴 무거운 분위기에서 다른 뜻을 포착하고 그에 맞춘 질문을 던졌다.


너는 괜찮지만 다른 누구는 괜찮지 않은가 보구나?”

안혜빈이 남편의 그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게 누구니?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니?”


등영림이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유귀붕 그 녀석이 또 계획을 바꿨어요. 그래서 우리가 진짜로 처음 만나는 상황이 다시 변했어요. 지난번에는 그곳의 친구들이 모두 죽은 상황에서 우리가 뒤늦게 도착해 죽어가는 유귀붕과 만났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그들 모두가 살아있는 채로 우리를 맞이하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안혜빈이 그렇게 재촉하는 질문을 했지만, 권평서가 말을 잇지 못하는 등영림을 보고 내용을 짐작하여 말했다.


아무래도 그 다음에는 우리 부부가 죽는 모양이구나.”


, 죄송해요. 이런 적은 없었는데 유귀붕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그밖에 다른 사람은 무사하니?”


그 만나셨다던 백건재라는 친구도 무사하지 않아요. 그가 두 분의 일에 관해서 반대했나봐요. 이건 보지 않아서 제가 본 상황만으로 내린 추측이지만요. 그래서 백건재도 죽었거나 어딘가에 갇힌 것 같아요. 아무튼, 좋은 상황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건 나쁜 소식이구나. 유귀붕이라는 친구가 총명한지는 모르겠으나 모략을 짜는 일에 있어 본바탕이 좋지 않구나.”

원래 그렇게 나쁜 마음을 지닌 녀석은 아니었는데.... , 물론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간 만나본 바로는....”


아니 그런 것을 의미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책사란 기본적으로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며 일단 상대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야 한다. 상대방이 비우호적으로 나올 때를 대비하면서 말이지. 만나지도 않은 상대를 적으로 선언하고 그에 맞춘 계략을 짜는 것은 좋은 책사의 본바탕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이 경우에는 나름대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으니 어차피 숙명의 적으로 만날 사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네가 말한 네 능력이 유귀붕의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면 그 능력은 대단한 것이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의지하여 계획을 짜다 보면 완전하지 않은 허술한 계획을 짜는 습성이 들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모사의 머리 쓰는 일도 무공 수련처럼 편한 길로 습성을 들이면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인데 역대의 책사와 모사들은 그런 자신의 수읽기가 부족한 바를 염려할 필요는 있어도 그런 쪽으로는 염려할 필요가 없었는데 유귀붕은 정반대의 문제를 지니게 될 것 같다. 뭐 아무튼, 네가 꾼 꿈을 바탕으로 우리도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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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연재] 와선별부 평저전기 하편 26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6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구내아는 잠시 앉아서 고민하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에 나서야 할 때였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 전 생각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할 생각은 없었고, 그렇다고 유귀붕의 의도대로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구내아는 일어서 문으로 갔다. 아까와는 달리 문이 잠겨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친절하게도 화무제가 잠겨있던 문을 풀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문은 닫혀만 있지 아까와는 달리 잠겨있지 않았고, 구내아는 문을 열고 나가는 일에 문을 부수거나 하는 귀찮음을 덜 수 있게 되었다.


구내아는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을 한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이 늦지는 않았다. 아직 구내아와 이곳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밥을 먹는 식당에 사람이 있었고, 구내아가 찾는 유귀붕의 모습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구내아는 찾던 유귀붕의 모습을 보고 걸어갔지만, 구내아가 나온 모습을 보고 유귀붕은 놀란 듯하였다. 아마도 그의 예지몽에서 보지 못한 전개라는 간접적인 그러나 뚜렷한 증거가 유귀붕의 표정에 담겨있었다.


구내아는 유귀붕이 앉은 식탁으로 다가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들고 온 밥이 담긴 쟁반을 그 앞에 놓으며 착석했다.

그리고 유귀붕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준비해준 이 밥은 내 입에는 맞지 않는다. 네가 준비한 것이니 네 입맛에는 맞을 듯하니 네가 먹는 것이 어떠냐?”


그렇게 말하면서 구내아는 자신의 앞에 있던 밥상쟁반을 유귀붕에게 밀었다. 유귀붕은 자신의 앞으로 밀려온 밥상에 아래로 시선을 주어 잠시 쳐다보다가 말했다.

오늘은 나도 이상하게 입맛이 안 좋아서 사양하겠네.”


구내아가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묻고 싶은 바를 담아 말했다.

오늘만 그런가? 이후로도 계속 이런 밥은 먹고 싶지 않은 건가?”


유귀붕의 답이 즉시 나왔다.

오늘만일세.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 아니 먹을 것이고, 이후에는 언제든지 내가 차린 밥을 자네가 되 물리면 내가 먹을 수 있네.”


구내아는 그 대답에 약간은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들겠다니 그나마 다행이네만, 근본적으로 자기는 먹지 않을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닐세.”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리 했네.”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누가 결정했는가? 자네인가? 나인가? 그것은 누구에 필요한 일인가? 자네인가? 나인가?”


결정한 것은 나이고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이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거기에 내가 왜 저절로 포함되어야 하는가? 정말 옳기는 한 건가? 목적은 옳은가? 목적이 옳더라도 방법은 그 수밖에 없었는가?”


다른 질문은 몰라도 방법은 그 방법밖에는 없었네. 나는 많은 경우의 수를 보았고...”


구내아가 그 말을 잘랐다.

그래. 자네의 식견에서는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자네가 미래를 보고 얻어낸 결론이 그 수밖에 없다고 해서 그 수가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네. 바로 우리가 이런 대화를 지금 여기서 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네. 그저 최선이 아니면 다행이지만, 최선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실패할 수를 두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심지어 거기에 자네 목숨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내 목숨까지 걸린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하네.”


유귀붕이 말을 잇지 못하자 구내아가 다시 말했다.

자네는 나의 여러 질문에 다른 질문은 몰라도 방법은 그뿐이라 했는데 그조차도 옳은 대답이 아니었네. 그렇다면 그에 앞선 다른 질문들 과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지 나는 왜 저절로 포함되었는지 등등은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을 지경이라는 뜻일세.”


유귀붕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구내아의 말은 이어졌다.

자네는 무척 총명한 사람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네. 그 두 가지가 결합하였는데도 자네는 꿈속에서 끝없이 실패했지. 그렇지 않나? 내 말이 틀렸는가?”


그 질문에 유귀붕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는 끄덕였다.


구내아가 그 고갯짓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오늘의 일을 계획하기 위해 몇 번이나 실패를 겪었는가? 나는 아마 몇 번이 아니라 몇십 번이라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자네처럼 총명한 사람이 계획을 짜고 몇 번을 미리 꿈을 통해 겪어보기까지 했다면,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대화는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고, 자네는 꿈속에서 몇 번이나 실패한 계획을 몇십 번을 다시 실패하며 다듬으며 딴에는 빈틈없이 한다고 고치고 또 고치고 있겠지. 그리고 이제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가 보이게는 그 계획에도 그리고 자네의 방식에도 큰 허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네.”


유귀붕은 그 말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떤 허점인가? 내 계획의 내용을 아는가?”


자네 계획의 세부적인 내용은 모르네. 그러나 자네가 일을 하는 방식에 허점이 있으니 당연히 그 계획에도 허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


내가 일하는 방식에 무슨 허점이 있는지 말해 주겠나?”


물론이네. 내가 이 식탁에 앉은 이유가 그것이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네는 총명을 타고 났고, 그런 총명을 타고난 보통의 모사(謨士)들이 누릴 수 없는 자신의 계획을 미리 점검할 수 있는 예지몽을 타고났지. 그래서 스스로 그런 방면으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나는 걱정이네. 걱정 하는 것은 내가 자네를 어느 정도는 친구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고, 걱정한다는 것은 자네의 그런 자부심이 실은 기반을 단단히 다지지 않은 자만심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하기도 하네.”


내 계획이 기반이 약하다?”


비유하자면 자네는 먼 길을 가려는 사람이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하면서 마음으로 펼쳐질 여정을 모두 점검하는 사람이지 않겠나? 그런데 도중에 있는 문제를 가지 않고도 알 수 있으니 이런 문제는 이리 처리하고 저런 문제가 발생할 테니 저런 준비를 해야지 하고 있는 것일세. 그러면서 기일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지 못할지 계속 날짜를 따지는 그런 사람인 셈이지.”


그런 태도가 왜 기반이 약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마굿간에 말이 한 마리만 있는 것이 아닌데 마굿간의 있는 말 가운데 일부만 가지고 이리저리 따지고 있기 때문이네. 말을 한 마리만 이용할 수 있는 여행이면 반드시 실패할 여행도 말이 두 마리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말 한 마리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생각해 낸 최선의 계획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말 두 마리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충 세운 계획은 여행에 성공할 수도 있지. 그러므로 이미 말했지만, 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선의 수라는 말은 아니지.”

유귀붕이 그 말을 알아듣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진 모든 인력과 수단을 동원하고 참작하여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최소 자네, 즉 구내아라는 친구를 빼고 일을 추진하면서 자기 딴에는 완전한 계획을 만든답시고 계획을 세웠다가 부셨다가 했고, 이제는 그 와중에 자기 혼자 이게 그래도 최선이지 하면서 일을 추진하려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성공할 것 같지 않다. 그런 말인가?”


대충 그런 말이지.”


확실히 그 점은 내가 잘못했고, 자네 말이 옳군.”


이해한 듯 싶으니 다행이네. 그럼 이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겠군.”


하고 싶었던 말? 그게 뭔가?”


다름 아니라 유귀붕 자네가 나를 배제한 이유가 궁금하네. 그 가장 깊은 밑바닥에 있는 자네의 본심이 궁금하네. 내가 유귀붕이라는 사람이 이 무리의 수장이 되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치워두려 했나? 아니면 지금부터 위험한 일이 벌어지려 하니 나를 휘말리지 않게 하려 했나? 아니면 이 둘의 절반쯤 되는 생각으로 구내아가 필요는 한데 유귀붕의 자리를 위협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어중간하게 행동한 것인가 등등 말일세. 간단히 말하면 나를 포함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데 나라는 수단을 굳이 빼고 계획을 세운 자네의 본심이 궁금하네.”


유귀붕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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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쉬어서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알림] 죄송합니다. 한 주 휴재합니다.

죄송합니다. 개인 사정상 한 주 휴재합니다.

글 빚을 갚지는 못하고 늘리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기다리시고 읽어주셨던 독자분들에게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5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5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본시 본좌가 네게 아니 너희 모두에게 주려던 것은 지금까지 본좌가 알려준 이야기였다.”


구내아가 조용히 있자 화무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최소한 너는 자신이 지니게 된 힘이나 저간의 사정이나 이런 일에 대해 궁금증이 없다시피 하구나. 본좌는 너희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과 정체성에 대한 희의감을 풀어줄 정보를 강력하게 원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귀붕은 몰라도 너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구나. 따라서 처음 본좌의 생각과는 달리 네게는 별로 준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 정도만 제공하고 훌쩍 떠나도 어쩌면 충분할지 모른다는 선택지는 이미 사라진 셈이다.”


송구합니다.”


네가 송구할 일은 아니지. 마치 조금 전에 말한 소림의 수미처럼 크게 원하는 것이 없으니 크게 줄 것도 없는 상황이랄까? 이래서야 본좌가 오히려 향후 너희의 행보를 보고 싶다는 큰 욕심이 있다는 불리한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제가 딱히 원하는 것이 없으나 오늘 들은 말씀을 듣고 난 뒤에는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실은 저 자신도 이미 제가 태어난 마을을 떠나올 때의 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매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문리가 트여서 생각이 뚜렷해졌다고 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짧았지. 본좌도 그것은 네가 지닌 천부의 재능이 개화하면서 네게 명철을 더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더하여 주실 것이 없다 하시면, 저희의 출생 전에 저희가 인성을 유지하도록 해주신 일에 대하여 보답을 기대하십니까?”


그것은 천하를 위하여 한 일이다. 본좌는 천하에 마인과 악종이 넘치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본좌의 이익에 들어맞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전쟁을 사주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사주라 할 수도 있겠지만, 용인이라고 하자. 하지만 가능하면 그런 비극과 악행은 용인하고 싶지 않다. 물론 정녕 필요하다면 피하지도 않겠다는 점 역시 사실이긴 하다.”


가능하다면 저 역시 어르신과 충돌하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정녕 필요하다면 피하지도 않겠습니다.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하하. 좋다. 잘 배우는구나. 그 정도도 좋다. 본좌는 본래 너희들이 모두 본좌의 일에 투신하여 정성을 다하는 그런 좋은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이 본좌의 일을 방해하면 어려운 일이 되리란 점도 오래전부터 명확했지. 하지만 너희들이 있는 세상이 그리고 무림이 어떻게 변할지는 불명확하고 본좌가 보고 싶은 경과와 결과는 그것이 될 것이다.”


자신의 운명도 좋고 자신의 원하는 의지도 좋다. 무엇이든 세상에 남겨 보아라. 가능하면 좋은 것으로 가능하면 본좌와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화무제는 예외적으로 말을 흐렸는데 하고 싶은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답지 않은 고민을 끝낸 화무제가 말했다.

이 대화는 이 정도로 끝내자. 다만 오늘 일어날 사건은 너와 네 친구들에게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 일에 관찰자로 설 것인지, 주재자가 될 것인지, 혹은 참여자가 될 것인지, 방관자가 될 것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간단하게 방관자가 되려 한다면 저기 미뤄놓은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하는 방법도 있겠지.”


그 말을 듣고 구내아가 밥상에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화무제를 보았을 때는 화무제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만 앉았던 곳에 글이 남겨져 있었다.

그럴 리 없지만, 행여 꿈이라 생각할까 봐 남겨둔다. 더하여 다음에는 검각에서 한번 보자꾸나.’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면서 노파심을 적어 놓은 글을 남기고 화무제는 사라졌다.

 

화무제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기고 간 숙제, 사실 그 숙제는 화무제가 남긴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출제하고 화무제가 그런 숙제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준 것이지만, 아무튼 그러한 숙제는 남았다.

 

구내아는 몰랐지만, 이제까지 유귀붕이 계획한 그리고 내다본 어느 미래에서도 없었던 구내아의 적극적인 결정이 이제부터 일어날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었다.

 

구내아를 깨우고 움직이게 함으로써 화무제가 얻으려 하는 숨겨진 의도가 있을지 모르지만 구내아로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보통 사람들이 평범하게 하는 행동을 특별하게 하여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태도를 택하는 방식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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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독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4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4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구내아는 일각이나 생각에 빠져들었다가 입을 열었다.

하오시면 제가 이제 드려야 할 질문이 명확하군요.”


그러하냐.”


그렇습니다. 다만 그 전에 몇 가지 도움이 될 질문이 남았습니다.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이왕 이리 된 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본좌도 숨기지 않겠다.”


일단 호기심이 많이 섞인 질문입니다. 말씀하시지 않은 다른 절대고수에게는 무엇을 주셨습니까?”


언급하지 않은 사람은 소림의 수미인데 그는 승려이고 불문의 도리와 사문의 정리 말고는 딱히 세상에 남은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딱히 줄 것이 없었다. 본좌가 소림을 무림에서 지우고자 하는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면 그와 뭔가를 주고 받을 일이 없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나름대로 해탈의 큰 관문을 향해 대각을 이루는 삶의 여정을 걷고 있으니 본좌와는 적게 얽히게 된 셈이라 할 수 있다.”


대상맹에는 무엇을 제안하신 것입니까?”


대상맹을 이어갈 다음 세대는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었다.”


부모의 재산만 물려받아도 충분한 사람들이 욕심이 지나친 것 아닙니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저 부잣집 철 없는 젊은이의 망상과 허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물론 그 나이에 그런 좋은 배경을 지닌 젊은이들이 흔히 분수와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과시적인 업적을 세우고자 하는 일이 흔하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좌가 이미 말했듯이 본좌는 아무에게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좌가 판단한 사람에게만 주었다. 그러니 대상맹의 젊은 간사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못 이루고는 중요하지 않다. 속세의 부화뇌동 하는 자들은 그들이 성공하면 담대하고 원대한 계획과 야망이었다고 할 테고, 실패하면 무모하고 어리석은 젊은이의 치기라고 말하겠지만, 그건 평가도 무엇도 아니다. 새겨듣기는커녕 들을 가치도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에 관한 본좌의 판단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큰 일이 성공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의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라 그들이 사람의 할 바를 다하고 놓치는 것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마을에 와서 거래를 하고 다닌 일이 무슨 계획의 일부인지 모르겠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상인의 야망은 더 큰 상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촉땅을 지배하는 대상맹의 후대들이 바라는 것은 그럼 천하제일의 상인 정도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군요. 그런 게 가능하다면....”


거기까지 말하다가 구내아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는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여 말을 꺼냈다.

설마 촉한을 기반으로 거병 건국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신황조의 재정과 상계를 틀어쥐겠다 그런 생각입니까?”


그런 결론과 추측을 내리다니 훌륭하다. 산간 벽지에서 제대로 된 학문을 할 기회도 없었던 네 나이 청년이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답변을 하자면 네 추측이 맥락은 제대로 짚은 셈이다.”


구내아는 아직 자신이 깨달은 바를 스스로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에 거의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천하제일의 상인이 되려면 천하의 중심에서 황실이나 조정의 실세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원의 변방이 촉한은 물산이 풍부한 곳이나 여기서 아무리 부를 쌓아봐야 중원의 거상들을 밀어내고 황실이나 조정의 실세와 밀접해질 수는 없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상업적으로 진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아예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세워보자? 그렇지만 촉한에 한정된 나라를 세워 독립해봐야 어차피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한고조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제갈공명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여기서 발흥하여 중원의 황조를 갈아치우자? 듣자하니 지금의 황제는 우둔하기가 짝이 없고, 외적의 침략과 간섭이 심하니 이런 황조를 상대하는 것은 과거 초패왕이나 조조를 상대하던 조건에 비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 아닌가? 그런 것입니까?”


대체로 말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조금 전에 제해천의 현 문주 가문이 천하를 노리고 역성혁명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상맹의 간사들과 손잡고 거병하는 사람은 제해천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입니까?”


어째서 제해천의 가문 일원이 그 사람이 아니라 따로 명령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비록 이곳에도 대강(大江)의 상류가 흐르지만, 제해천의 문주 가문이 어떤 신망을 얻고 있는 지역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고조나 유비가 지녔던 정통성이나 명망이 있지도 않습니다. 무림에서의 위세와 명성이 드높다 하여도 그건 무림의 일이니 말입니다. 저라면 그런 사람이 무림에서 힘 좀 쓴다고 해서 우리 지역에서 난데 없이 나라를 세우고 임금입네 하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땅의 평범한 백성들이 면전에서는 말 못하여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나라는 거병천하는커녕 거병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진승과 오광의 무리처럼 그저 일어섰다 사라지는 무리가 되겠지요. 결국 민심이 천심이고 그 점을 모른다면 임금이 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옳은 판단이다. 그래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대상맹과 손잡고 거병을 하려는 사람은 소지막이란 사람이다. 관부에서는 꽤 이름있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야심과 능력이 큰 사람이지. 네가 말한 이 땅의 민심을 장악할 인망이 있는지는 이 지역의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만...”


외지인이 고관대작이라는 이유로 이 지역의 민심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유비와 제갈공명이 촉한을 얻으려 하던 시절에도 이 땅에는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세력이 있었다. 유비가 유일한 황실의 씨족도 아니었고, 하지만 유장이 물러서고 난 뒤 이 촉한의 호족들은 유비를 정통으로 인정하고 따랐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 외지인들을 섬기는 전통이 촉한땅에 이어지고 있지. 결국 그것은 이후 소지막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 구내아가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다시 말했다.

그 소지막이란 분도 단순히 어르신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군요. 그런 사람이라면 가치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이다. 그는 그 자신이 별도의 야심과 능력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가 완전한 것이 아니어도 잡으려고 

할 뿐이고, 그것을 위해서 어떤 도움도 마다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전의 창과 방패와 달리 이 소망은 서로 충돌하는 것 아닙니까? 소지막도 제해천의 문주가문도 천하를 노린다면? 그런데 어르신은 양측을 다 후원하는 듯하고 말입니다.”

사슴을 죽일 때까지는 손을 잡고 양측의 싸움은 사슴을 잡은 다음에 할 정도의 머리는 있는 사람들이지.”


천하제일..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제해천의 아무나 가도 소지막이란 분을 암살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소지막이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가 그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이라면 본좌가 내세우지도 후원하지도 않았다. 유방도 유비도 자기 부하들보다 강하고 똑똑하지 않았다. 정말 큰 사람이 되려면 자신보다 똑똑하고 자신보다 강하고, 또한 유능한 사람을 아래에 두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부하의 능력을 질투하는 상급자들이 조직을 망치는 법이다. 군주의 덕목은 각 분야에서 신하들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 압도적인 신하들을 두고 부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비슷한 원리로 유귀붕도 너를 수장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너 역시 구천십지의 인재들을 이끄는 구천십지제일신마로서 그런 능력과 태도를 함양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미뤄두었던 질문을 하겠습니다.”


듣겠다.”


어르신께서 우리에게 날 때부터 주신 것 외에 또 더하여 주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무엇입니까?”

화무제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학동을 보는 서당 훈장의 표정을 지으며 그 질문에 대답하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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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토욜에 올려드리고, 한편의 글 빚을 갚을까요 항상 송구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3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3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그런 수고를 하셨다는 말입니까?”

아니다. 그러나 본좌의 모든 의도를 말하고 싶지는 않구나.”

 

구내아는 화무제를 담담히 바라보면서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듣고 싶습니다.”


화무제는 구내아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본좌를 그런 눈빛과 태도로 제대로 된 무공도 없는 몸으로 그렇게 바라보며 말할 수 있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구나. 그래 조금은 털어놓아 보도록 하마.”


화무제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으로 잠시 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 네 친구부터 이야기하지. 유귀붕 그 아이를 보면 오래 전에 만났고 지금은 죽은 지 오래 된 내 제자가 생각나는구나. 그 아이의 무공 재질은 나쁘지 않았으나 절대고수의 영역에는 닿지 못했다. 하지만 총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그리고 마음에 품은 야심도 무척 컸다.”


어떤 야심이었습니까?”


천하를 암중에서 지배하는 단체를 만들고 그곳의 수장이 되려 했다.”


그런 단체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성공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군요. 실패했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고, 성공이면 암중에 있을 테니까요.”


천하를 암중에서 지배는 못 하여도 암중에서 조종하는 가장 큰 단체를 만드는 일에는 성공하였다. 본좌가 그 아이의 의견을 따라서 그 단체의 초대 수장이 되어 2년 정도 하다가 당시 군사 역할을 하던 그 녀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태상의 자리로 한 걸음 빠졌었다. 다 그 녀석의 계획에 있던 일이지. 스승에 대한 예우와 스승의 무공과 위광을 뒤에 업고, 여전히 태상의 자리에 있는 본좌를 소흘히 대하지 않으면서 만사를 의논하면서도 가장 좋은 계획을 들고 왔다. 그 계획의 목적을 반대하면 모를까 계획 자체는 반대할 구석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 사람이 유귀붕하고 닮았습니까?”


매우 닮았다. 본좌는 그래서 유귀붕이 너에 대해서도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경우는 네 목적과 녀석의 목적이 같이 갈 수 있는 것이어서 너는 수장으로 그는 군사로서 대업을 이루는 경우겠지. 한실(漢室)을 재건했든 못했든 유비와 제갈공명의 관계같은 이상적인 관계일 테고, 반대라면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갈라설 테지만, 실제 일어날 일은 그 중간 어디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는 유귀붕이 언제나 자신의 계획을 수정할 수 있는 예지몽 능력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어쩌면 네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다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다. 네 그릇이 정말 크다면 실제로 뭔가를 이룬 것은 유귀붕이 아니라 너이거나 혹은 네가 이룬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어르신도 그래서 제자의 계획을 다 알면서도 따라주신 것입니까?”


비슷하다. 본좌는 언제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받고자 하는 것을 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예를 들어 조금 전에 언급한 신주일군에게는 잘난 척 고고한 척 하면서 남을 돕는 척 아닌 척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편을 도와주면서 착하게 보이는 능력자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이 있다. 신주일군 본인 그걸 짐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신주일군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딱 좋은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자기 편을 돕지만 세상 일에서 한 발 물러나 초연한 모습을 지키는 자신의 정체성에는 더없이 적절한 상황이지. 본좌의 입장에서는 제 마음대로 낄 때 안 낄 때 참견하던 성격의 소유자에게 그런 성격이라면 마땅히 받게 될 대우를 해준 셈이다. 신주일군은 비겼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은 본좌가 비기도록 해 준 것이다. 본좌의 처지에서도 그 정도가 가장 대가와 보상이 균형을 이루는 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신주일군이라는 분은 당금 무림의 절대고수시죠? 그럼 다른 절대고수분들에게도 뭔가를 주셨습니까?”


검신에게는 영웅적인 죽음과 업적 가운데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다만, 일천검이 장렬하고 처절하게 그러나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죽거나 아니면 그 모든 적을 다 물리치고 살아남아 영웅적인 업적을 이룰 기회였다. 이것은 또한 결과적으로 신주일군이 자신에게 걸맞은 친구를 사귀는 기회를 주었고, 친구는 혼자서는 될 수 없는 것이니 나는 두 절대고수에게 친구를 선사한 셈이다.”


해명신군이라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의형제를 주었다. 그가 바로 내 의제이고 본좌가 그의 의형이다. 해명신군은 서출로 태어나 다섯 살에 본가에서 쫓겨난 이후로 좋은 가정을 이루고 좋은 사람을 만나 천하에 협명을 떨칠 문파를 세우겠다는 그런 소망이 잠재의식에 있었다. 본좌는 제해천의 전대 두 주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제해천의 문주 자리는 해명 아우의 자손이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제해천은 강호에서 가장 강한 문파이고, 특히 수상에서의 영향력은 말 한 마디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그 말을 듣고 구내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구내아가 생각에 잠기자 화무제는 아무 말도 없이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았다. 구내아가 촌각에 촌각을 더한 시간(10분 정도)을 고민하고 마침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해명신군의 자손들 즉, 현재 제해천의 문주와 그 가족에게는 무엇을 주셨습니까? 혹은 주려 하십니까?”


유귀붕이라면 단번에 궁금해하고 즉시 떠올렸을 의문이다. 역시 총명에서는 유귀붕만 못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고, 그것을 숙곡하여 괜찮은 질문을 찾아냈으니 너 역시 대단하다. 절대 보통 사람은 아닌 게지. 네 질문에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강호의 지배자가 아니라 천하의 지배자가 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천자가 되려 한다. 해씨 성을 국성으로 하는 황조를 개창하려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반역이지.”


그 말을 듣고 구내아는 약간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그런 사실을 말씀해 주시는 것은 이 대화의 끝에 저를 죽이려 하시기 때문입니까? 저는 저를 죽이려면 지극히 간단한 분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럴 의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편하게 대화했습니다만...”


네 말대로 본좌는 너를 죽일 의도가 없다. 네가 짐작한대로 있었다면 벌써 했겠지. 아니 애초에 너희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게 조작을 풍수지맥에 가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오늘 들은 사실을 가능한 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는 되는 아이라고 생각했기에 본좌도 말한 것이다.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해명 아우 본인은 지금의 황실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자식과 손자가 꼭 아비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좌는 서로 모순되는 그들의 소망을 다 지원하고 있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국은 어르신께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러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의 소망이라도 결국은 본좌의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을 만들고자 하는 각각의 두 대장장이가 있다면 본좌는 그 둘이 모두 소원을 성취하도록 해줄 것이다. 그 창은 언제나 상대의 방패를 뚫을 것이고, 그 방패는 언제나 적의 창에서 소지자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둘 다 무적의 방패와 창으로 남겠지. 본좌가 그 둘의 소망을 모두 이루어주고자 하는 한,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구내아가 다시 한번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저희는 마교가 원하던 사람이었습니까?”


정확하다. 너희는 마교가 오랜 세월 고대한 명존과 명왕의 도래라는 전설을 현실에 실현할 구천십지의 인재들이다. 본좌는 마교가 원하던 것을 마교에게 주었다. 비록 이미 너도 짐작하겠지만 그게 전체적인 이번 사건의 진상은 물론 아니고 일부의 진실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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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2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2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완전히 침상에서 일어난 구내아는 석연치 않은 몸 상태와 더불어 여러 가지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일단 창문이 이미 환하게 밝아있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마다 무척 늦게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이곳의 생활이 매우 편해서 매일 농사일로 단련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해이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배가 고프다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구내아는 이곳에서 주는 아침을 먹을 때까지 배가 고픈 일이 없었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치자 가만히 생각하던 구내아는 이미 아침 먹을 때를 놓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은 평소와 달리 너무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 아침 끼니를 놓쳐서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런 생각을 기다렸다는 듯이 후각에 어떤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방향을 향해 눈을 돌리니 문가 탁자에 쟁반이 있고, 그 위에 밥과 고기 채소가 갖춰진 아침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내아는 최근에 이곳에서 친해진 청년들이 구내아가 늦잠을 자자 굳이 깨우지 않았고, 심지어 끼니도 거르자 밥을 타다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준비해두었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마음도 들고 어쩌다 이렇게 늦잠을 잤을까 생각하면서 아침상이 마련된 탁자로 갔다. 그릇을 덮은 보자기를 걷자 그 위에 종이가 보였다. 그것을 펴자 아침상을 마련해둔 사람이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은 구내아가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평범하지 않았다.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고, 안에서 기다려라. 귀붕(貴朋).’


귀붕은 당연히 유귀붕일 것이다. 물론 글자 뜻만 보면 귀한 친구가 남긴 쪽지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요사이 유귀붕의 필체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그것이 유귀붕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굳이 자신의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남긴 데다 서명에 힘을 준 뜻은 

그가 구내아의 귀한 친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지는 쪽지였다.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순간 그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던 구내아는 다음 순간 생각난 듯이 문으로 움직여 문을 밀어보았다. 손가락이 문에 닿는 순간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은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단단하기는 했지만, 방 안에 있는 가구와 연습용으로 가져다 놓은 날이 없는 병기가 있으니 시간은 걸려도 강제로 열고 나갈 수는 있었다.


문을 막아 놓은 것은 필시 유귀붕일 테고 그는 똑똑한 사람이니 그 점을 모를 리 없는데 이렇게만 해 놓은 것은 구내아가 자신의 말을 따라주기를 기대했다고 봐야 했다.


도대체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지?’


그런 의문을 떠올렸으나 일단 밥이나 먹자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벽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구내아에게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밥을 안 먹고 남긴다거나 하는 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내아는 친구가 차려 놓은 상을 비우기 위해 들어 올리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음식에는 약이 들어있다.”


구내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은 방금 확인했고, 일어나서 방안을 한 번 둘러봤으니 방안에 사람이 없다는 점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구내아가 뒤로 돌아보니 구내아가 방금 일어난 침상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가 말했다.

놀랐구나. 당연한 일이지.”


그 남자는 넓은 장포를 입은 장년인이었다. 다만 구내아는 어쩐지 그가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수준으로는 이전에도 맹목검객이라는 장님 무사를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 사람도 돌아보면 갑자기 나타나 있고,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쩐지 그 사람보다 강한 기운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생각이 났고,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밥에 약이 들었다고요?”

그 편지를 남긴 자칭 네 친구가 넣었지. 독약은 아니다. 잠을 푹 자게 하는 약일뿐.”


귀붕이가 왜 저를 재우려고 하는 거죠?”


그 녀석은 오늘 이곳에서 나가려 한다. 그런데 이곳을 맡은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해줄 리가 없지. 유귀붕은 총명한 사람이라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자기 나름의 해결책을 만드려 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 녀석 딴에는 그것은 앞날을 위한 첫 포석이기도 하고.”


이곳 분들이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리란 점은 저도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귀붕이는 어떻게 하려 한다는 건가요?”


오늘 이곳을 방문할 마교의 수뇌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죽이고 그래서 자신들을 막는 사람이 없어지면 떠날 생각이지. 물론 자는 너도 데려갈 작정이다. 깨워서 갈지 자는 채로 업고 가든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 그런데 어르신은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좌는 화무제라고 한다. 너희들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


저희 와요?”


그렇단다. 너와 유귀붕과 그 외 구천십지에서 태어난 19명 모두와 관련이 있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니면 너희는 지금과는 다르게 태어났을 것이다.”


다르게요?”


너희는 풍수상의 기맥이 흐르는 외딴 마을에서 태어나 그 기운을 이었다. 그것은 대개의 사람이 지닌 인식으로는 흉지라고 여겨지는 그러나 실은 천마의 맥을 지닌 사람이 태어나기 좋은 땅이었다. 그러나 나는 천마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천마가 세상에 가져올 피해는 원치 않았다. 천마의 자질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 흉성이 깊어지면 능력 있는 악인이 될 테고 그러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겠지.”


저희가 악인이 된다고요?”


아니 그렇지 않다. 그것이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 되도록 내가 하늘의 기운을 담은 성좌의 배치에 따라 너희들이 태어난 마을 주변에 숲을 조성했다. 그 숲이 땅의 기운이 흐르는 것을 조정하고 변화시켜 너희가 필연적으로 타고날 마성을 하늘의 기운으로 조화시켜 인성이 충분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너희의 재능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었지. 물론 어떤 재능을 얻을지는 본좌도 알 수 없었다만....”


재능이요?”


그래 특별한 재능을 지녔지. 예상했던 것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더욱 대단한 일은 아직도 각자의 재능을 모두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본좌가 말이지. 예를 들어, 본좌는 네 재능을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나 네가 이들 19명의 기재들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명확히 알고 있다. 유귀붕 그 아이도 알고 있는 듯하다. 본능인지 학습으로 깨우친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제게 어떤 재능도 없어서는 아닐까요?”


본좌는 아직 개화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하늘의 이치는 매우 깊어서 본좌는 그것을 흉내 내 너희에게 불어넣었지만, 그 결과마저 본좌의 헤아림 안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있지도 않고.”


귀붕이의 재능은 뭔가요? 탁월한 총명함이겠죠?”


그것도 있다. 그러나 문재(文才)나 무재(武才). 둘 중의 하나는 너희들에게 기본적으로 갖춰진 바탕이 아닌가 싶다. 그것 말고 각자의 특별한 보통의 인간은 지니지 못한 재주가 있는데 유귀붕은 아마도 예지몽을 꾸고 그리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아이는 계속 자기 계획을 꿈을 꿀 때마다 수정하고 있지. 이것은 고금의 어떤 책사도 누리지 못한 특전이지. 자신의 계획이 실행되는 경험을 미리 하고 거기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고 고친다면 천하의 어떤 책사도 그를 당할 수 없겠지. 이런 능력이 있는 자라면 비록 삼류의 책사라도 제갈공명의 환생도 지략으로 누를 수 있겠지.”


다른 친구들은요?”


동물과 소통하고 그들을 부리는 아이도 있는 것 같고, 영혼만 빠져 나와 돌아다니는 능력을 지닌 아이도 있고.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본좌도 너희 모두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록 3일밖에 관찰하지 못했지만, 본좌의 능력으로 3일 안에 알 수 없었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다.”


구내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에게 이런 능력을 부여하신 것은 우리의 마성을 누르고 인성을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도록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본좌가 정말 원했다면 너희의 마성만 누르고 하늘의 기운이 지닌 여러 능력이 너희 각자에게 안배되는 일은 막을 수도 있었다.”


우선 어르신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런 안배를 해주신 일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인성을 함양시키는 일은 그렇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이런 재능을 주신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으신가요? 혹시 아무 염려가 없는 이유가 우리가 어떤 재주를 지녔건 통제할 수 있다

고 자신하시기 때문입니까?”


일부만 맞다. 너희 재주가 아무리 대단하여도 지금 무림의 절대고수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에 장차 절대고수가 나오고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무공과 결합한 절대고수가 된다면 그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니 본좌도 그것이 어떤 수준일지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재능을 지녔다고 절대고수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되어도 그것이 무공과 합쳐져 상승효과를 지닐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저희에게 하늘의 재능이 안배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똑같은 것만 있는 곳에 새로움을 더하고 싶었다.”


“?”

구내아가 이해가 안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화무제가 말했다.


무림을 시장이나 식당에 비유하자면 다 똑같은 음식만 팔거나 아니면 음식 장사만 시장에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림에는 여러 문파와 무공이 있고 그것들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 바탕은 비슷하다. 호랑이나 표범이나 사자나 다 비슷하듯이 말이지. 물론 지금 말한 맹수들의 싸움법은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호랑이들도 개체별로는 다르게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빨과 발톱 그리고 그에 연장된 근육의 힘으로 싸우는 것은 같지. 하지만 날개 달린 늑대가 있다면 그 싸움은 전혀 다르지 않겠느냐? 식당만 있는 곳에 향수 가게와 옷가게가 들어선다면? 그 새로움은 전혀 다른 종류의 다름이 아니겠느냐?”


왜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딱히 없을 필요도 없지. 사실 그보다는 그렇게 다른 종류의 재능은 무림에서 버틸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그런 다른 종류의 재능으로 무림에 행보한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재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신주일군 정도는 되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다.”


신주일군이요?”


그런 사람이 있다. 무공 말고도 여러 재주에 능통한 사람이지. 무공이 없어도 절대고수에 맞설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러나 신주일군은 천재였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대성을 이루었기에 거기에 무공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순서가 반대였다면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을까? 본좌는 모르겠다. 아마 신주일군 본인도 모를 것이다. 분명 신주일군은 무공이 없어도 어쩌면 절대고수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무공에서 먼저 절대고수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성취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조금이라도 무림에 접촉했다면 말이다. 본좌도 신주일군의 인생을 다 모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만 그래도 본좌의 생각이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어떨까? 하늘이 준 무공이 아닌 다른 재주를 지닌 너희들의 앞으로 행보는 어떨까? 어찌 궁금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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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한 편 더 써 올린다는 약속을 어겨 죄송합니다. 이 한 편의 글빚은 꼭 갚겠습니다.


허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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