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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선별부 12권 평서전기 하편 17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7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유귀붕이 초사력과 마음으로만 통하는 말로 친구인 비이기(費利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인과 의장로는 명왕일종의 광난(狂亂) 두 장로와 손속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 넷의 실력은 매우 비슷하여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그만큼 작은 실수나 변수만 있어도 승부는 어이없이 끝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귀붕은 적절한 시점에서 친구인 비이기가 아무 몸에 들어가 잠시만 경직 시키면, 승부의 균형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한편으로 그렇게 만들게 하려고 초사력에게 언제든지 자기 방 침상에 누워 있는 비이기에게 말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었다.


다만 이 경우 초사력도 자기가 눈앞에 빙의해 온 그 몸에 담긴 비이기에 영혼에 말을 거는 것인지 침대에 누워서 조종하는 비이기에게 연락하는 것인지는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초사력의 재주는 일반적인 시야가 닿은 거리라면 중간에 벽이 있거나 산이 있거나 계곡이 있거나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거리가 문제이지 중간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전달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자기 말이 어디에 전달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넓은 곳에 가서 비이기를 여기저기 놓아두고 자리를 바꿔가면 실험하면 알겠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었고, 중요한 것은 일정 거리 안에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점이니 크게 지금은 딱히 그 호기심을 충족할 필요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안에서는 비이기가 원래 자기 방에 있건, 남에게 빙의하건 어차피 유효거리 안이기 때문에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유귀붕과 그런 심산을 지니고 있었으나, 사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아마도 유귀붕이 무공에 관한 식견이 조금만 높았으면, 그것을 조금 미리 눈치챌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인장로는 목숨을 걸고 자신과 싸우는 난장로의 공격을 간신히 피해 잠시 노려보는 대치 상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유귀붕이 모르던 점이 이것이었다. 유귀붕의 실력으로는 당대 무림의 거대세력인 마교 장로가 펼치는 무공을 보고 그 의도를 짐작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온갖 수를 사용해 간신히 이 기회를 얻어낸 인장로는 상대인 난장로에게 외쳤다.

이보게,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적의 흉계에 걸린 듯싶네.”


난장로는 습관적으로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하려다가 인장로의 진지한 표정과 자신 역시 이 일에 의구심이 있었기에 잠시 손을 멈추고 말을 들어보려 했다.


인장로는 매우 어색하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죽어간 양측의 고수와 새떼를 자유로이 부리던 이곳의 구천십지의 학생들 그리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 주약전 등을 언급하며 이것이 교내의 음모가 아니며, 자신들 명존지종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명왕일종의 계획도 아니지 않겠냐고 설득하였다.


그 말을 듣는 가운데 다른 두 장로와 남은 두 명의 수하도 싸움을 자연스럽게 그쳤다. 그러나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상태라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고, 특히 명왕일종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저 두 장로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인데 그냥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강해서, 인장로가 목숨을 구걸하여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 살아보려고 하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강했다.


유귀붕은 여기서 끼어들어 선동질하여 다시 상태를 싸움으로 밀어 넣으려 하는데 인장로가 상대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다음의 한마디를 하였다.

만약 이것이 그대들 명왕일종이 정말로 우리를 제거하기 위해 세운 계획이었다면, 나중에라도 그게 사실이라는 점이 밝혀진다면, 내 기꺼이 만인이 보는 앞에서 자결하겠네. 명존께 맹세코 그리하지. 하지만 나는 이것이 저기 있는 구천십지의 인재, 아니 저 나쁜 놈들이 불순한 목적을 지니고 우리를 상잔하려고 꾸민 계략이라고 생각하네. 거듭 말하거니와 그게 아니라 그대들의 계획이라면 최소한 나 한 사람은 명존에 맹세코 자결할 걸세.”


양종의 누구든 모시는 신을 걸고 하는 맹세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그것으로 상대방이 진심이고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네 명의 장로와 두 명의 수행원은 즉시 시선을 구천십지의 인재들에게로 돌렸다.


유귀붕이 자기 머리를 탁치며 말했다.

! 이런 한 수가 있었네. 이걸 생각하지 못했다니 이런 이런. 이제 이를 어쩐다. 이기가 한 명을 묶어도 남은 3인 장로의 공격을 지금은 우리가 수는 많아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말하던 유귀붕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정면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장로들에게서 자신들 뒤편의 문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래의 와선군사에게는 이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습니까?”

모두가 유귀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4인의 장로는 공력이 높아서 누군가 밖에 도착해 이제 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어떻게 같은 교단의 사람이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된 이곳에 침입해 여기까지 와서 문을 열게 되었는지 몰랐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권평서와 안혜빈 그리고 최근에 만난 두 처자 옥소홍과 등영림이었다.

 




 

 

 

등영림은 잠에서 깨어나 옷도 대충 걸치고 바로 옆방의 문을 두들겼다. 권평서와 안혜빈은 잠 들어 있었으나 무공도 없는 사람이 기척도 지우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데 계속 자고 있을 사람이 아니기에 바로 몸을 일으켰다. 등영림은 안에서 사람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자 아직 객잔의 방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외쳤다.



어서 일어나세요. 우리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몽땅 죽을 거에요.”


권평서는 침상에서 내려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또 미래를 본 게구나! 알았다.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한편, 유귀붕은 잠에서 깨어나며 말했다.

이 여자애랑 처음 만나는 날짜와 장소는 계속 바뀌는군. 어제는 우리가 장로들에게 전멸할 때 나타나서 죽어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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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재를 상습적으로 하루 밀려 죄송하고 분량이 적어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12권 평서전기 16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6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형제를 공격한 명존지종의 수행원의 표정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각자의 처지에서 다양하게 해석하였다. 명왕일종의 두 장로는 그 표정을 뭔가 사정이 있어 강압 때문에 시키는 일을 내키지 않아도 했으나 막상 저지르고 나니 자신이 더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때 명왕일종의 수행원 중 하나가 몸을 재빠르게 일으켜 탁자를 넘어 반대편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형제를 공격한 후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어찌할 줄 모르던 그자를 공격하였다. 양편의 어느 장로가 보기에도 그 공격은 성공할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공격하고 당황한 마음이 너무 컸는지 수행원 여섯의 평균적인 실력은 고사하고 여자를 담당한 지도자인 고종비라도 막을 수 있는 공격이 그대로 적중하였다. 그렇게 멍한 상태인 적수의 천령개를 격파해 일장으로 격살한 명왕 측의 수행원이 남은 한 명의 멀쩡한 수행원을 공격하였다.


이때는 이미 양편의 장로들이 사정을 따지지 않고, 대치상태에 들어갔는데 서로의 실력이 비슷한 만큼 어느 쪽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명존 측에서는 명왕 측이 뭔가 일을 꾸며 자기 측의 수행원을 배신시켰고, 이 자리가 필시 그들 두 장로를 노리고 만들어진 함정이라고 이른 시간 안에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 측인 명왕 측 장로들도 그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이곳에 오지 않은 두 장로나 그중 하나가 일을 꾸민 것이라면 자신들에게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곳에 온 장로들도 당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일을 계획했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자기편을 의심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명왕 측 두 장로는 같이 온 다른 자기편 장로는 자기와 달리 아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품고 있었다.




 

한편으로 형제를 죽인 수행원을 격살하고 이제 명존 측에서는 유일하게 남은 멀쩡한 수행원을 공격하던 명왕 측 수행원의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태에 대해 이미 같이 온 셋 중의 하나는 죽고 하나는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자기에게 명왕 측 수행원의 공격이 들어오자 남은 명존 측 수행원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력을 끌어올려 일생일대의 공격으로 맞받았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적중하리란 생각보다는 상대도 부담을 느끼고 물러서면 한 박자 쉴 틈을 찾아 싸움의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공격이 그대로 들어갔다. 상대방은 일부러 그 공격을 맞아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대처하더니 그냥 그렇게 전력을 다한 공격을 그냥 맞고 쓰러졌다. 그럴 거면 왜 그런 흉험한 기세로 한 사람을 죽이고 남은 명존 측 사람을 공격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말이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일단 그런 공격이 성공했어도 전세는 그들이 불리하였다.


명왕 측의 남은 두 수행원 역시 사태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물어볼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갑자기 이런 유혈극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그간 교내의 양측 종파의 사이였기 때문이다.


명왕 측의 남은 두 수행원은 명존 측의 남은 한 명을 상대하여 죽이거나 제압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때까지는 대치만 하고 있던 4인의 장로 역시 각자 상대를 맞아 22의 대결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였고,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출수를 망설이지 않았다.

 



고종비와 학생들은 갑자기 싸움터가 된 장소에서 물러나 새떼들의 공연이 펼쳐졌던 마당으로 조금씩 움직여서 싸움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양측 역시 고종비와 학생들의 움직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학생 중에 최소한 유귀붕은 어떤 식으로든 이 사태와 연관이 있고, 당연히 교내의 고위층 누군가와도 연관이 있는 관계일 거라고 짐작하였다.


 

명존 측의 두 장로인 인장로와 의장로는 자신들의 수행원은 하나만 멀쩡하고 명왕 측은 둘이 멀쩡한데 실력은 동반했던 여섯이 모두 비슷하였으니 싸움은 보나 마나라고 생각하고 21의 대결에서 이긴 명왕 측의 수행원이 가담하기 전에 상대 장로와의 대결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이 일을 꾸민 것은 아무리 봐도 명왕 측인 것 같으니 더욱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들 수준에서는 넉넉히 막으리라고 생각했던 명존 측 수행원의 공격을 명왕 측의 수행원이 마치 넋이라도 나간 듯이 그대로 맞으며 바로 절명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싸움은 완벽하게 33의 대결이 되었고, 서로의 실력도 매우 비슷하여 쉽게 결착이 나지 않는 상태로 들어섰다.


싸우는 양측이 모두 마음 한구석에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지만, 그런 점을 의식해서 싸움을 중지하기에는 눈앞에 당도한 상대방이 매우 강했다. 더구나 양측은 오랜 앙금이 서로 쌓여있는 상태라 미심쩍은 상황에 대한 의심보다는 본래 갈등하던 상대에 대한 의심이 더 강했다.


유귀붕은 양측이 서로 싸우느라 아무 짓도 못 하자 물러서 있던 마당에서 천천히 걸어서 가장 처음 부상을 입고 빈사 상태에 있던 명존 측의 수행원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꽤 길이가 긴 단검을 꺼내더니 그 수행원의 가슴에 박아 남아있던 명줄을 끊었다. 이 사람은 유귀붕이 그렇게 천천히 단검을 꺼내 서두리지 않고 자신의 가슴으로 내리 찌르는데도 어떤 반격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위중한 상태로 그냥 두어도 죽을 것 같았지만, 유귀붕이 확실히 처리하였다.


유귀붕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단검을 갈무리한 다음 싸우고 있는 명왕 측 장로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빈사에 처한 적이나마 마무리하여 충성심을 보였으니 명왕종에서는 약속을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유귀붕이 그렇게 말하자 싸우던 사람들은 더욱 이 상황에 대한 일말의 의심을 접고 상대방을 해치우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유귀붕과 고종비 그리고 남녀 학생들이 마당으로 물러나 싸움을 지켜보는데 학생 중 하나인 초사력이 말을 걸어왔다.


이곳의 학생들은 제각각 특별한 재주가 하나씩 있었는데 초사력은 특별하게도 재주가 두 가지였다. 그 두 번째 재주는 이곳에 와서

야 그들도 알게 된 것으로 서로 시야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다면 그들 같은 운명을 타고난 19명과는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고도, 또 무림에서 사용되는 전음입밀의 수단이 없어도 대화할 수 있다는 능력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초사력만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초사력은 누구든지 마음으로 말을 걸고 그렇게 마음으로 말을 건 상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고, 원할 때 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초사력이 없으면 이곳에 모인 청년들 사이에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반대로 초사력에게만 어떤 말을 전달하면 아무도 모르게 모든 친구들에게 그 말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능력을 지닌 사람은 초사력과 여자 학생 숙소의 다른 여제자 한 명 그렇게 둘뿐이었다.


유귀붕은 일부러 구내아 등 몇 사람에게는 시험하지 않았지만, 시험할 것도 없이 초사력과 다른 여학생의 능력이 그렇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초사력은 일정 시간에 유귀붕에게 말을 걸어 필요한 사항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전달받은 내용을 초사력은 다른 남자와 또 같은 능력을 지닌 여자에게 전달하였고, 여자는 자기 친구에게 전달하여 그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상황에서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올 수 있었다.


그런 초사력이 마음으로 물어온 것은 특별한 정보가 아니라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은 여섯의 대결에는 이기가 끼어들지 않아?’


이기는 비이기(費利器)를 가리켰다. 비이기의 능력은 유체이탈이었는데 단순히 유체이탈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빙의한 몸을 지배하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지배당하는 처지에서는 의식은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고, 원치 않는 행동을 막을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실험에 따르면, 그들과 동류인 19명의 구천십지의 인재에게는 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 같은 동류가 아니면 누구에게든 빙의할 수 있었다. 절대고수에게는 안 될지도 모른다고 유귀붕은 추측하였지만, 그것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귀붕은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연속으로 너무 많은 사람에게 들어갔다 나왔다 했어. 너무 일찍 빠져나오면 본래 몸의 주인이 지배권을 되찾아 공격에 반응하거나 반격할 수 있지. 그래서 가장 마지막 순간에 더는 본래 몸의 주인이 몸을 되찾아도 막을 수 없는 순간까지 버텨야 해. 그렇지만 죽는 순간까지 버텨서 지배한 몸이 죽으면, 죽지는 않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껴 그러면 한동안은 다른 일을 못 하지. 이기 그 친구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아무런 고통 없이 매번 성공해도 기운이 빠져서 쉬지 않으면 안 돼. 자기 몸에서 벗어나는 것은 온종일 그래도 상관없는 듯하지만, 남의 몸에 들어가는 것은 한 번만 하여도 힘든 일이라 하더군. 지금은 자기 몸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아직은 다 계획대로야 저들은 실력이 비슷해서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기는 그사이에 기운을 회복하고 다시 저들 중 하나에게 들어가 그 몸을 마비시킬 테고 그런 식으로 하나만 남을 때까지 반복하게 될 테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그렇게 남의 몸에 들어가면 그 몸의 무공도 다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그럴 수 있지만, 지금은 그저 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해. 그 몸이 훈련해 온 재주를 사용하는 일도 아직은 어렵지. 그러니까 만약 이기가 숙수(요리사)의 몸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는 없다는 뜻이지. 그렇지만 몇 년 뒤에는 요리사가 지닌 재주, 예를 들면 빠르고 정확하게 야채를 가지런히 써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전히 그 상태에서도 요리는 못해. 요리는 야채를 써는 능력, 불의 온도를 아는 지식 등등 여러 가지가 결합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고기는 언제 준비하는 언제 써는지 야채는 어떻게 써는지 밀가루는 언제 반죽할지 고기 써는 일과 밀가루 반죽하는 일 중에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준비한 재료는 어떻게 보관하고 언제 화덕에 넣을지 요리사의 몸을 지배하고 칼질 능력이나 다른 모든 능력을 자기 것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인 상태일 테니까....’


그럼 지배당한 자의 무공을 펼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겠군.’


그래. 언젠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기로서는 어렵지.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야 우리의 재주는 아직 충분히 여물지 않았어.’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건 내 재주 때문이지. 나는 같은 인생을 꿈속에서 많이 살고 있으니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이 결국 훈련이 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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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일을 매주 하루 늦어 죄송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무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권 15편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5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아래의 경비시설을 지나온 4인의 장로 일행은 조금 더 걸어 오른 끝에 구천십지의 인재들이 거주하는 건물에 다가섰다. 이 시설은 수용하는 인원에 비하면 과도하게 크다. 그것이 크다는 증거의 하나로 여자 인재를 교육하는 고종비가 이곳에 수용한 구천십지의 인재들을 데리고 마중을 나온 안뜰은 몇백 명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일을 위해 일부러 만든 건물이 아니라 교단이 지닌 건물 가운데 이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건물을 개조하였기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거나 잔치를 하거나 대형 연무장으로 쓸 수 있는 마당이 넓은 건물이 원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당으로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이 건물에 일하도록 배치해둔 하인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4명의 양대종파의 장로와 그 수행원이 마당을 밟았다.


말했듯이 남녀 제자들을 거느리고 마당의 전면에서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던 고종비와 제자들이 장로들에게 몸을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들 앞으로 다가서자 고종비가 더 깊게 고개를 숙이며 환영의 인사말을 하였다. 그 의례적인 말을 흘려들으며 인장로가 물었다.

주약전은 어디에 있는가?”


고종비가 그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난장로가 물었다.

학생들의 숫자도 들은 바보다 적군.”


고종비가 두 가지 물음에 하나로 엮어서 답했다.

그는 일부 학생들을 이끌고서 장로님들의 행차에 대비한 준비를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보이지 않은 아이들은 그와 함께 있으므로 그러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질문이어서 다행이었다. 한쪽에만 대답하여도 혹은 어느 쪽 질문이 먼저여서 그것에 먼저 대답을 하여도 다른 쪽의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고종비의 지위와 무공으로는 그런 불안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깊이 추궁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의장로가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나 보자고 만든 자리인데 뭘 준비하겠다고... 주약전이 그런 성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고종비가 그 말에 반응하였다.

주사부가 비록 상급자에게는 대찬 면이 있으나 이번에 보니 제자들에게는 정이 많더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장로들에게 잘 보이는 일에는 신경을 쓰고 있어서 솔직히 저도 그런 면이 있었나 하고 요즘 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새로 알게 된 면이 있습니다.”


그 말에 그런가 하고 다들 넘어가고 고종비의 인도에 따라 장로와 수행원들이 도달한 곳은 잔치상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였다.

디귿자로 이루어진 삼면의 연회상 가운데 중앙은 4대 장로와 그 수행원이 좌측에는 남자 학생들 반대 측에는 여자 학생들이 앉는 구조였고, 고종비는 여자 제자들이 앉는 자리의 가장 상석이자 장로들이 앉은 식탁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한쪽은 뭔가 공연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배치라는 점이 분명한 방식이었다.


위치상 남자 제자들의 탁상의 같은 자리는 당연히 주약전의 자리였는데 그 자리는 아직도 한다던 준비가 끝나지 않았는지 비어있었다. 그리고 남자 제자들의 연회상의 맨 끝자리는 유귀붕이 앉아 있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의도적인 배치였다.


유귀붕은 자리에서 절도있는 모습으로 일어나며 포권을 하여 장로들이 앉은 상석에 예를 표한 후 말했다.

듣기로 여러 장로님들께서 저희가 그간 어느 정도의 재주를 익혔는지 점검하시고, 또 저희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 남녀 사부님과 저희가 의논하여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보여드리고 그 평가를 들으면 어떻겠냐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마음에 흡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신호 삼아 손뼉을 쳤다. 그 태도가 매우 당당하고 자연스러워서 장로 중 누구도 제지할 틈이나 다른 말을 할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원래 이런 행사는 특히 오늘처럼 윗전들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행사를 기획하였을 경우 비록 형식적이라도 지금부터 이런 것을 보여드릴 테니 허락을 부탁한다는 의례적인 말이라도 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유귀붕의 태도와 표정 그리고 언행이 매우 당당하고 자연스러워서 장로 중 누구도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손뼉을 친 다음에야 한 명의 장로가 그런 점에 생각이 미치기는 하였으나 이미 때를 늦춰 잠깐이라고 말하기가 어색했다.


그래도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반대편의 장로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을 꺼내기도 그렇고, 비록 자신이 상급자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여기 학생들을 반대편이 아닌 자신의 종파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딱딱한 태도를 보이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자 결국 그 마음을 접었다.


무엇보다 손뼉 소리가 난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이 놀라운 일이라 그 생각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세 마리의 새가 정확히 마당을 삼분하는 적절한 지점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른 새들이 더 날아와서 마당에 내려앉는데 모두 장로들이 앉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 내려앉은 위치가 열과 오가 정확히 맞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새들은 곧 비행을 시작하더니 공중과 땅을 모두 무대로 쓰며 오르락내리락 새들의 군무를 펼쳤다.


대단히 멋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대단히 인상적인 일이었다. 아니 한두 마리의 새도 아니고 수십 마리의 새가 저렇게 정교하게 비록 투박하고 단순한 동작의 반복에 지나지 않더라도 또한 일정한 경로를 계속 왕복하고 서로 자리를 교대하는 정도의 움직임에 불과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장로 중 광장로가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 말에는 참으로 여러 의미가 담겨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일에 놀라는 마음도 있었고, 기대했던 일이 어그러진 마음도 담겨있었다. 기대했던 일이 어그러진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곳의 구천십지 인재들이 그간 배운 무예를 시범 보이고, 자신들이 그 자질을 평가하고 그래서 누구누구를 영입 우선순위를 놓고 다른 파의 장로와 경쟁이나 협상 등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왔기 때문에 그들이 보려던 학생들의 재능이나 재주는 이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유귀붕이 손뼉을 치자 새들은 갑자기 통제를 벗어난 듯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의장로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이것이 네 재주냐?”


의장로의 진지한 어조와는 달리 유귀붕은 예의를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볍고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다른 동무의 재주입니다.”


동무라... 그간 이곳의 친구들과 나름대로 우정을 쌓은 모양이구나. 좋은 일이지. 그래 그러면 어느 친구의 재주냐?”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라?”


의장로는 쉽게 대답이 나오리라 생각한 질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듣고 저도 모르게 그렇게 반응하였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말씀드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의장로는 화를 내지 않고 다시 질문하였다.

너희는 우리 교단에 이미 속한 몸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상급자이고 그러니 너는 당연히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뭔가 드는 생각이 있어서 의장로는 이번에는 질문의 내용을 바꾸었다.


혹시 내가 교단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네 상급자는 아니란 뜻이냐?”


유귀붕이 활기차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 질문에 담은 뜻이 정확히 사실에 일치하고 틀리는 바가 없습니다.”


의장로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명왕일종의 두 장로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약속을 어기고 이들에게 멋대로 미리 손을 쓴 것인가? 그래서 이들이 우리 일파의 사람을 상급자로 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의장로에 질문에 대해서 광장로와 난장로는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혹시 상대방은 알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를 쳐다보았으나 같은 종파의 사람끼리 숨길 이유가 없으므로 둘은 서로가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서로의 얼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교의 자신들의 종파에는 장로 둘이 더 있었고, 그들이 뭔가를 꾸몄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올라오기 전에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명존지종의 의장로가 시선을 다른 종파인 명왕일종의 두 장로에게 돌린 순간부터 그들을 수행해 온 세 명의 고수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상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주시하고 있는 대상은 상대파의 두 장로가 아니라 자기와 동급인 그쪽의 수행원 세 사람이었다. 장로들이 뭔가를 벌인다면 그것을 막아야 할 책임도 막을 능력도 모두 이쪽의 장로들에게 있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저쪽의 수행원들이 뭔가 할 때 그것을 저지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래서 가장 끝에 앉은 동료가 바로 옆의 동료를 암습하는 일은 상상도 못 하였다. 고르고 골라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왔는데 그 사람이 배신자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공격을 가장 먼저 인지한 사람은 상대편이었는데 그도 그 공격을 보면서 지금 저자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하는 판이였다. 명왕일종의 수행원들이 보기에 명존지종의 수행원이 다른 수행원을 습격하는 것을 보고 알고 보니 우리 편이었거나 이쪽의 누군가가 공작하여 배신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을 전혀 떠올리리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럴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인장로의 두 아들과 의장로의 아들 하나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왔는데 인장로의 두 아들 중 하나가 다른 아들을 공격한다는 것을 어떻게 그들이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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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건너서 송구합니다. 그리고 또 하루 밀려 일요일 연재라 죄송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한 세상, 독자 여러분 모두 무탈하시거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허안 배상


[알림] 한 주만 휴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신상의 사정으로 한 주만 휴재하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독자분들에게 송구합니다.

코로나 걸린 것은 아니고요. 그냥 가내의 일입니다.

독자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코로나에 주의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여건이 되면 주중에라도 올리겠습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4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4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날짜를 잡는 일부터가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그전에 이번 방문이 실제로 실행되는 날이 오늘 온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마교의 양대종파가 구천십지의 인재를 모으고는 싶었으나 그 인재를 하나라도 내부의 반대교파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성과도 구경하고, 친분도 쌓고, 누가 뛰어난 인재인지 눈 여겨도 보고 해야 하는데 서로가 견제를 하기 때문에 중립적인 인사를 스승이랍시고 붙여 놓고 시간만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시간만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간이 합의에 이르기 위한 지난한 시간이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러서야 양측의 장로 두 명 즉 4인의 장로와 그 장로를 수행하는 세 명의 수행원이 따르는 총 열 명의 간소한 무리가 산을 오르게 되었다.


이 장소가 어쨌거나 비밀장소이기에 아는 사람도 적어야 하고, 혹시라도 다른 문파나 방회의 세력에 눈에 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소수의 고수 집단만을 보내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명존의 일종에서는 인의예지 4대 장로 가운데 인과 의장로가 나섰고, 명왕의 일종에서는 혼괴광난(混怪狂亂)4대장로 가운데 광

장로와 난장로가 뽑혔다.


사실 이들 4대 장로는 청년들을 뽑아오는 과정에서 꽤 접촉이 있었고, 관찰할 시간도 있었기 때문에 인의의 두 장로는 구내아를 제외하면 다 처음 보는 청년들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명존지종은 손해를 보고 들어가는 셈이지만, 교내에서 평소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측이라는 이유로 금번 이건에 관해서는 상당한 양보를 하는 쪽을 택해 온 까닭에 그 정도의 불균형은 문제 삼지 않기로 하고 내색하지 않았고, 명왕지종에서는 명존일종의 그러한 양보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면이 있었다.


위로는 구천십지의 기운을 타고난 학생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일을 막고, 반대로는 누군가 아래에서 이리로 오는 것을 막고 감시하는 임무를 지닌 관문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


그 관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교단 양대종파의 장로들과 수하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서 누각이라지만 거의 성벽이라고 할 수 있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 없이 몸짓으로만 인사를 하였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서너 명이 함께 걸으면 서로 어깨가 부딪치는 것이 당연한 너비의 계단이 위로 뻗어있었다. 양옆은 곳곳에 문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 문이 잠겨져 있다는 점에서 양측이 모두 벽으로 되어 있는 계단 골목과 다름없었다.


4인의 장로는 무공이 높았고, 그만큼 몸놀림이 좋아서 네 사람이 나란히 계단을 걸어 오르면서도 어깨가 닿지 않았으나 일반인이 이렇게 같은 속도로 위로 오른다면 서로 몸이 닿지 않고 걷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4인의 장로는 지위가 완전히 같은지라 누군가 누군가의 뒤에 걷는다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또 상대를 앞에 세우기도 싫고 상대에게 등을 내주기도 싫어서 신법을 응용하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오르고 있었다.


그 골목 계단의 양편에는 무사들이 장로가 자신의 앞에 이르면 비록 위쪽에서이긴 하지만 몸짓으로나마 예를 표하였다.

그들이 올라온 문은 이미 큰 소리를 내며 닫혔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장로는 몰라도 그들을 따라온 여섯 명의 고수는 무공이 낮지 않음에도 어쩐지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과연 자신들만 왔다면 이 상황에서 비록 정중하게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양측 위에 서 있는 무사들이 암기나 투사 무기를 쏟아내면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벽호유장공에 능하거나 벽을 타는 재주가 대단하여도 양옆의 벽을 타고 오르는 시간은 상당히 걸릴 듯했다. 그래도 암기와 활이 쏟아지는 정도라면 어떻게 피하면서 간신히 올라가 위에서 승부를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한 무공으로는 어렵지만 양종의 장로들이 고르고 골라서 데려온 자신들이니 가능하다고 그렇게 양측의 수행원들이 판단했을 때, 그런 눈치를 챘는지 인장로가 입을 열었다. 딱히 누구에게 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이 오르막 계단으로 출입할 수 있는 출입구가 곳곳에 있지만, 수비하는 측에서 안으로 잠근다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네. 그것을 뚫느니 벽호유장공을 사용해 벽을 타고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야 하네. 어쩌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네만, 만약 실전이라면 저 위에서 독수(毒水)가 쏟아져 내려올 테니 더욱 어려워지네. 이 정도 경사의 계단에서 물이 따로 빠져나갈 곳도 없는데 쏟아져 내려온다면 폭포나 다름없지. 더구나 저 아래 문을 막으면 그 독수가 빠져나가지 못해 점점 차오른다네. 너무 차올라서 독에 강한 자들이 부력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딱 하반신만 차는 높이까지만 차오르지. 아 물론 평소에는 배출구가 열려 있어 빗물은 그냥 흘러내려 간다네.”


그 조건을 듣자 수행 무사들은 그 조건이 추가되면 과연 자신들이 빠져나갈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 온 사인의 장로는 그 정도 난관은 극복할 수 있는 고수였다. 물론 몸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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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에 실패해 짧습니다. 하루 늦은 연재가 분량도 적어 죄송합니다.

어디 나가지도 못하는데 처와 아들 둘 달린 가장의 주말은 번잡합니다.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코로나 주의하셔서 무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3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3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무공 교습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실내였다. 물론 하늘이 보이는 마당도 있었지만, 비가 오는 날에도 실외에서 훈련할 과정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실내에서 무공을 익히기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실내라지만 2층 높이의 실내 공간을 틔운 것이어서 창검을 높이 휘두르거나 경공의 고수가 높이 뛰어올라도 지장이 없었고, 넓이도 100명이 약간 비좁게 줄 맞춰 연무할 수 있는 공간에 많아야 열 명이 있으니 절대 부족함이 없었다.


사방의 벽면에는 교습에 필요한 무기와 교재들이 쌓여있거나 걸려있었다. 같은 크기와 구조의 여자용 교습장이 따로 있으니 이곳에 모인 청년 남녀들 처지에서는 자기가 살던 집은 고사하고 살던 마을보다도 넓은 건물에서 거주하는 셈이다.


사실 각자 거처하는 방이 자기가 살던 집보다 큰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교습장에 들어선 주약전은 여덟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여섯만이 있자 사람이 비어있기에 물었다.

구내아와 비이기(費利器)가 보이지 않는군. 무슨 일이 있나?”


유귀붕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몸이 좋지 않은지 각자 자기 방에 있습니다. 두 사람 다 꾀를 부릴 사람도 아니고 제가 본 바로는 지금 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저희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약전이 잠깐 어떻게 답할지 망설이는 틈을 놓치지 않고 유귀붕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듣자니 오늘 높은 분들이 방문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그것 때문에 자리가 빈 일이 문제가 될까 그러십니까?”


주약전은 유귀붕을 만난 날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녀석은 똑똑하여도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그런 눈치는 보지 않는다.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자.”


그렇게 말을 마치면서 주약전은 자신이 유귀붕에게 조금은 당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윗사람에 아부하는 유형의 사람으로 비취는 일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짧은 교습기간에도 잘 알게 된 유귀붕의 은근한 언사에 자신이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심리적 잔수는 자신이 원래 잘하지 못하는 것이고, 유귀붕은 그런 잔수에는 타고난 것 같으니 그런 면에서 제자에게 뒤처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런 생각을 옆으로 치우려다가 흠칫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의 장로들이 방문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을 유귀붕에게 확인해봐야 의미 없는 일이었다. 폐쇄된 이런 장소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사람은 여기서 일하는 하인들이다.


십중팔구 누군가가 장로들이 방문하니 준비를 시켰을 테고, 하인들은 접대 준비를 했을 것이다. 영리한 유귀붕이 그 모습을 보고 넌지시 물어서 알아냈는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짐작했는지, 어느 쪽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인들이나 그들을 부리는 관리자를 엄히 단속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약전은 오늘의 교습을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서 교육받고 있는 사람은 남자 여덟과 여자 일곱이었다. 찾아내는 즉시 이곳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지금은 구내아가 처음 왔을 때는 물론이고 얼마 전 백건재가 왔을 때보다도 사람은 늘었다.


어차피 모두 모아야 남녀 합쳐 19명인데 그중 열 다섯 명의 남녀를 이곳에 모았으니 완벽하지는 않아도 목표한 바는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할 숫자였다.


남자반은 여덟 중 오늘 구내아와 비이기가 결석했고, 교습을 받는 사람은 여섯이었다. 영리하고 무()보다는 문()에서 더 높은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유귀붕과 왕년에 해명신군이나 화무제 혹은 신주일군 같은 천재들이 저러지 않았었나 싶은 무재(武才)를 타고난 보연로가 있었고, 그 정도의 천재는 아니지만, 성실하고 사려 깊은 백건재가 있었다.


다른 세 명의 청년은 국요관(鞠要冠), 초사력(楚事力), 전시만(全市萬)이란 이름을 지녔다.

 



이들 모두는 보연로가 워낙 뛰어난 성취를 보여서 그렇지 자질과 오성이 뛰어난 청년들이었다. 주약전이 보기에 자신에게 이들의 무공 재능에 반만 있었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경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청년들이 자신의 나이에 도달하면, 아니 이런 기초과정을 배우는 단계만 지나도 과연 저 아래쪽에 이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무사들이 이 청년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주약전은 뭔가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따라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는 점을 깨닫자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떠올리려 했다. 무인의 본능이 그에게 뭔가를 경고하고 있는데 그것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때 어떤 점이 강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면서도 가장 노력하는 학생이었던 보연로가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고 있으며, 국요관과 백건재 등은 평소보다 열정을 더 내고 있으며, 유귀붕은 그냥 놀다시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잠재의식이 주는 경고가 무엇이든 간에 주약전은 가르치는 처지에서 일단 유귀붕에게 던지는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너는 너무 노는 것 아니냐?”


유귀붕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재미도 없고, 별로 배울 점도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주약전은 화를 내지 않고 평온하게 그 말을 받았다.

네가 빨리 배울수록 나는 더 많은 것을 가르치겠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면 이미 알려준 것을 완벽히 익히는 것이 지름길이다.”


그 말에 유귀붕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 말씀은 마치 개인의 성취만 훌륭하면 교단의 장로나 교주님의 진전도 배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실제로는 무슨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가르침이 베풀어질 리 없다는 사실을 스승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주약전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역시 말로는 유귀붕의 상대가 못되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논리적 언변 이전에 냉정한 현실이었다.


그래도 주약전은 이렇게나마 말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얕은 배움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갈 수 있다. 너는 겨우 이 정도를 배우고 더 멀리 갈 수 없다 하여 출발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유귀붕이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제 뜻을 오해하셨군요. 제가 따지는 것은 배움의 깊이나 넓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더냐?”


제가 따지는 것은 이 교단이 우리를 어떻게 대할지 교단과 함께 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장차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살지 아니면...”


아니면?”


유귀붕이 말을 끊자 주약전이 저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아니면 어느 정도로 이용당하다가 어떻게 버려져 어떻게 죽을지 이런 문제입니다.”


주약전은 차마 그 말을 부인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데 유귀붕의 말이 이어졌다.

교단의 내부에는 고위직이 있고, 그 직위들은 모두 혈연에 의한 계승이 지배적입니다. 교주님 이하 거의 그렇죠. 물론 스승님이 속한 이 교단은 바닥부터 올라오는 사람에 비교적 관대한 조직이고, 그런 사람들이 교단내에서 일종의 세가를 이루는 일에도 관대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완전히 실력으로 평가되고 올라간다면 지금 장로들이나 교주님의 혈족의 10분의 1도 현재의 고위직에 해당하는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겁니다. 반대로 바닥부터 올라온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이야말로 그 10분의 1 자리를 차지하겠죠.”


주약전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한 마디 했다.

네 능력이라면 비록 10분의 1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것은 여반장일 것이다. 그야말로 시간문제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교단의 빌어먹을 높은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쓸 만큼 부려먹다가 살아남는 놈들에게 한 자리 챙겨주고 재산 좀 한몫 챙겨주면 된다고... 아마 그게 그들이 최대로 생각하는 그들 딴에는 최고의 선의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에게 품은 그들의 기대고 우리의 미래겠죠. 그리고....”


그리고?”


저도 저 혼자라면 그 정도에 만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교단의 분위기가 능력에 따라서는 제가 교주에 오르는 것도 완전히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되고 말입니다.”


그래 그것도 안 되는 일은 아니다. 교주님의 혈족이라고 반드시 다음 대의 교주가 되는 것은 우리 교리에 없는 일이니까.”


그렇죠. 저 혼자라면 어렵더라도 아니 어렵기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그 길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열아홉 명이나 됩니다.”


나를 비롯해 누구나 교단에서 처음 시작할 때는 그보다 많은 동배와 시작한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지. 아니 이것은 우리 교뿐 아니라 고금 천하에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면 다 마찬가지다. 그게 관부건 상계건 경쟁은 불가피하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건 일반론입니다. 문제는 당신들은 당신들이 손에 쥐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열아홉은 그저 그런 집단에서 출발하는 동기 모임 따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늘의 뜻이든 지옥의 안배든 우리는 우리 각자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날 때부터 동류로 묶인 사람들이며 모두가 당신들이 생각도 하지 않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당신들이 부려먹다가 선심 쓰듯 내주는 자리가 눈에 찰 것 같습니까?”


그래서 이곳을 나가겠다는 것이냐?”


그전에 제가 한 마디를 빼먹었습니다. 아까 제가 따지는 일이 어쩌고 했지만, 그건 여기 친구들도 함께 따지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나중에 합류한 백건재가 우리와 뜻을 모으면서 더욱 확실히 알게 됐지요.”


주약전은 유귀붕의 말에서 어떤 점이 마음에 걸려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합류한 백건재?”


유귀붕이 웃으며 말했다.

네 백건재는 여기 와서 만났지만, 다른 친구들은 당신들이 우리를 찾기 전에 우리끼리 이미 만나서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친구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서로 멀리서도 교통을 이룰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잠시나마 스승으로 모시었고, 그간 성품을 보니 나쁜 분이 아니어서 기회를 드리려 합니다. 저희를 도와주시면 저희도 섭섭하지 않게 대하겠습니다.”


뭘 도와달라는 말이냐?”

오늘 이곳에 교단의 양종에 속한 장로들이 온다는 사실을 압니다. 누가 오는지도 어떻게 오는지도 와서 무슨 소리를 할지도 다 압니다. 그걸 다 알고 나니 더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귀붕이 네가 머리가 좋다는 점은 안다. 네 추측이 많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래 교단의 행태나 그들이 하려는 일이 네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단은 그분들의 말도 듣기 전에 그분들이 하려는 말을 예상해서....”


유귀붕이 주약전의 말을 잘랐다.

예상 아닙니다. 저희 중 누군가에게는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뭐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아무튼, 그야 어찌 되었든 저희를 도와주실지 아닐지 말씀해주십시오. 시간을 더 드리면 좋지만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그렇게 장래를 잘 예측한다는 녀석이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냐?”


압니다. 그래서 유감입니다. 알면서도 굳이 이렇게 다시 확인하는 것이 그나마 그간 모신 스승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여 주십시오.”


무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이 일이 어찌 흘러갈지 주약전에게 알려주었다. 내공을 은밀히 끌어올리면서 주약전이 말했다.

“1년 뒤라면 너희 중 누구라도 나를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너희 중 누구라도 아니 너희 전부가 합동하여도 내 상대가 못 된다. 너희들이 무공을 익힌 시간은 한 달도 채 안 된다. 아무리 너희들이 무재를 타고 났어도...”


유귀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스승님은 저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 이곳을 방문할 그 대단하다는 마교의 양대종파의 고수중의 고수인 장로들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스승님도 넘어서지 못할 실력이라면 그런 일을 계획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 유귀붕이 그렇게 멍청해 보입니까?”


그 말을 듣자 주약전도 의문이 들었다. 유귀붕이 무공이 어떤지는 몰라도 그의 총명은 보통이 아니다. 저 태도가 그저 무르익지 않은 자신의 어설픈 지혜를 믿는 철부지의 무모함에 지나지 않는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주약전에게도 들었다.


그때 유귀붕이 말했다.

스승에 대한 예우로 선수를 양보하겠습니다.”


어느새 다른 학생들이 자리를 만들었고, 유귀붕이 앞으로 나섰다. 주약전은 싸움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스승으로서 네 건방진 태도를 바로 잡아주겠다.”


그런 태도는 곤란합니다. 그렇게 물렁물렁한 각오로는 저를 이기실 수 없습니다. 뭐 어차피 어떤 각오든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건방진!”


그 말과 함께 주약전은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선수를 펼쳤다. 후배에게 선수를 양보받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이지만, 지금 이것은 정식 대결이 아니라 사제 간에 스승이 제자의 버릇을 고치는 회초리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선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귀붕은 주약전이 펼친 이제까지 그가 가르친 적도 없고, 유귀붕이 배운 적도 없는 수법을 간단하게 피했다. 그리고 주약전이 펼친 초식에 딱 맞는 파해법을 펼쳐 왔다.


그다음부터는 주약전은 그 오랜 강호의 실전 경험과 높은 무공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유귀붕의 초식을 등한히 하지 못하고 다섯 초식을 연이어 물러나다가 간신히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싶었는데 돌연 몸에 힘이 빠졌다.


유귀붕이 주약전의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방금 이렇게 반격하려 하셨죠. 그랬으면 저는 이렇게 한 다음 이렇게 했을 겁니다. 그러면 스승님의 목에 구멍이 뚫리며 절명하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랬다. 주약전이 보기에 유귀붕이 보여준 동작과 초식이라면 그렇게 될 것이 맞았다. 그러나 주약전은 그렇게 사실을 말하는 유귀붕에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도 맞다고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언제 내게 독을 쓴 것이지. 이렇게 기미도 기척도 없이 펼치면서 효과는 강력한 독이라니...’


유귀붕이 서 있는 자세이기는 했지만, 마비된 듯 꼼짝도 못 하는 주약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스승님인데 죽일 때 죽이더라도 피를 보기 싫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방금 보여드렸으니 실제로도 지셨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생각하실지 아는데 독에 당한 것이 아닙니다. 유언을 하실 기회를 남겨드리고 싶으나 무슨 말씀을 하실지 이미 들은 것과 다름없으니 듣지 않고 보내드리겠습니다. , 독이 아니면 뭐냐고요? 비이기입니다. 오늘 결석한 비이기 그 친구의 특이한 재능이 혼만 몸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기입니다. 그리고 그 재능이 더 대단한 것은 다른 사람의 몸을 차지하고 지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는 본체는 실신 상태라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만 편히 가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유귀붕은 손가락을 뻗어 주약전의 사혈을 짚으며 말했다.



이 점혈법, 아직은 배우지 않았지만,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처음 본 것이 다섯 살 때 무렵 꿈속입니다. 열두 살이 되기 전에 완벽히 익혔다고 자부합니다. 스승님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주약전은 여전히 말을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생각했다.

 


완벽해. 나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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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코로나로 외출도 어려워도 주말에는 이런 저런 일이 항상 있습니다. 

연재가 하루 늦어져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점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라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2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2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완전히 침상에서 일어난 구내아는 석연치 않은 것을 하나 더 알아챘다. 창문이 이미 환하게 밝아있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마다 무척 늦게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이곳의 생활이 매우 편해서 매일 농사일로 단련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해이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배가 고프다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구내아는 이곳에서 주는 아침을 먹을 때까지 배가 고픈 일이 없었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치자 가만히 생각하던 구내아는 이미 아침 먹을 때를 놓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은 평소와 달리 너무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 아침 끼니를 놓쳐서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런 생각을 기다렸다는 듯이 후각에 어떤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방향을 향해 눈을 돌리니 문가 탁자에 쟁반이 있고, 그 위에 밥과 고기 채소가 갖춰진 아침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내아는 최근에 이곳에서 친해진 청년들이 구내아가 늦잠을 자자 굳이 깨우지 않았고, 심지어 끼니도 거르자 밥을 타다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준비해두었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마음도 들고 어쩌다 이렇게 늦잠을 잤을까 생각하면서 아침상이 마련된 탁자로 갔다. 그릇을 덮은 보자기를 걷자 그 위에 종이가 보였다. 그것을 펴자 아침상을 마련해둔 사람이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은 구내아가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평범하지 않았다.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고, 안에서 기다려라. 귀붕(貴朋).’


귀붕은 당연히 유귀붕일 것이다. 물론 글자 뜻만 보면 귀한 친구가 남긴 쪽지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요사이 유귀붕의 필체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그것이 유귀붕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굳이 자신의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남긴 데다 서명에 힘을 준 뜻은 

그가 구내아의 귀한 친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지는 쪽지였다.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순간 그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던 구내아는 다음 순간 생각난 듯이 문으로 움직여 문을 밀어보았다. 손가락이 문에 닿는 순간 문

이 잠겨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은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단단하기는 했지만, 방 안에 있는 가구와 연습용으로 

가져다 놓은 날이 없는 병기가 있으니 시간은 걸려도 강제로 열고 나갈 수는 있었다.


문을 막아 놓은 것은 필시 유귀붕일 테고 그는 똑똑한 사람이니 그 점을 모를 리 없는데 이렇게만 해 놓은 것은 구내아가 자신의 말을 따라주기를 기대했다고 봐야 했다.


도대체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지?’


그런 의문을 떠올렸으나 일단 밥이나 먹자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벽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구내아에게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밥을 안 먹고 남긴다거나 하는 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내아는 친구가 차려 놓은 상을 맛나게 먹었고, 깨끗하게 남김없이 비운 그릇을 탁자 위로 되돌리고, 이제 책이라도 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잠시 침상에 앉았는데 스르르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주약전(朱若戰)은 올해 32세의 고수로 마교의 양종이 그들이 모은 청년을 지도하기 위해 이곳에 파견한 남자였다. 이곳에 모인 청년들은 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글선생과 글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남녀로 나뉘어 그와 여자 측을 맡은 고수인 고종비(高種妃)가 각기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주약전은 어차피 이곳에 올 것이므로 점심은 항상 이곳에 와서 먹고 조금 쉬었다가 청년들을 지도하는 것이 일과였다. 자신의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음식이지만, 그래도 지도하는 처지라 먹는 곳은 달랐고,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이 상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있는 동안 필요한 업무에 사용하는 방으로 가면서 주약전은 대개는 학생들을 한 번 살펴보고 가는데 그가 오는 시간이 항상 비슷해서 식당에 모여있는 학생을 보게 마련이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짧은 일별이었지만, 주약전은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뭐가 다른지는 알 수 없었는데 자기 방에 앉자 평소와 뭐가 다른지를 알 수 있었다.


항상 식당에서 볼 수 있었던 구내아가 없었다.

오늘따라 일찍 먹고 들어갔나?’


그런 생각을 할 때 하인이 밥을 날라왔다. 식사하면서 주약전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도 이곳에서 계속 숙식을 하는 편이 저 애들을 지도하는 일에 더 도움이 될 텐데...’


주약전과 고종비 그리고 글선생이 이 높은 고산에 있는 건물로 출퇴근을 하는 것은 교내의 압력 탓이었다.


문무를 담당한 스승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고, 교내의 양종은 그 인선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그나마 가장 중립적인 사람을 찾아내 임명한 것이 그와 고종비였다.


그러나 교내에서 양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한 중립 인물은 없었기 때문에 평소의 인품으로 보아 자기 계파에 노골적으로 충성하지 않을 그래도 원칙이나 소신이 있고, 불편부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양측에서 남녀 한 명씩 고른 것이라서 교사와 학생이 종일 함께 생활하면 영향력을 안 받을 수 없다고 하여서 정말 가르칠 것만 딱 가르치고 퇴근해야 한다는 식으로 규칙이 정해졌고, 그 탓에 선생 된 자들이 매일 이곳을 오르내리게 된 것이었다.


밥하고 심부름하고 청소며 그 밖의 일을 하인들은 오히려 이곳에 상주하였는데 이들은 무공은커녕 글도 익히지 않은 무지렁이들로 정말 일이나 하는 사람임을 양측이 혹시라도 상대방이 몰래 넣은 자가 아닌지 확인하고 배치한 사람들이었다.


천애의 절벽 고산지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출입구를 봉쇄하고, 그보다 약간 아래에 건축한 건물에 고수와 경비병이 있으면 학생들이 내려오거나 누군가 학생에게 가려고 올라가는 일은 완벽히 막을 수 있었다.


한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관리하는 사람 없이 하인들만 남아있으니 안에서 학생들끼리만 있는 시간에 학생끼리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점은 문제였다.


그런데 문제라는 것은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인식을 해야 문제가 되는 것인데, 명왕종의 혼괴광란의 사대장로는 학생들이 서로 두들겨 패거나 심지어 죽여서라도 서열을 정하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고독(蠱毒)을 만드는 방식이라는 최후의 하나가 남을 때까지 서로 싸우는 일이 생겨도 그 하나만 건지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자도 있었으니 이 같은 방치는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기도 했다.


주약전은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소교주도 꺾지 못한 혼괴광란 4대장로의 고집에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고종비 측에 물어보니 남녀 간의 문제는 일단 없는 듯이 보인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직 무공을 처음 익히는 초반부 과정에 있으니 힘자랑을 하기는 이르다는 것이 주약전의 생각이었고, 젊은 청년들이 조금 뜻이 안 맞는다고 주먹다짐을 한다면 대개는 주변에서 말리기 마련이고 심각한 혈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그렇게 주약전은 바라고 있었다. 더구나 공공연하게 너희 중 하나만 살아남을 것이니 최후의 결전에 대비하란 식으로 언질을 준 적도 없었고, 교단의 양측계열이 정말로 그것을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19명을 모두 모으고 그들 모두가 교의 동량으로 성장해주면 그것이 최상이라는 사실은 분명했기 때문에 굳이 최고의 인재 하나만 남기고 상잔하게 하자는 의도는 없다는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주약전은 문제가 생긴다면 남녀의 애정 문제에서 일이 터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젊은 청년 중 누군가가 낭자들 숙소에 침입해서 강제로 욕을 보이려 한다든가 누군가 누구를 짝사랑하거나 연적이 생기거나 좋아했다가 헤어지는 그런 일 때문이면 저 나이 때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단은 여자 측을 맡은 고종비가 보는 바로는 그런 눈치는 없다니 다행한 일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심을 마친 주약전은 차 한잔을 마시고, 그의 학생들의 오후 일과인 무공교습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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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계속 일이 생겨서 죄송합니다.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힘든데 독자분들과 주변 분들이 무탈하시고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전개상 분량이 약간 줄어서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1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1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구내아는 뭔가 불편함을 느끼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지만 1시진 안에 해가 뜰 것 같았다. 시간을 알 방법은 딱히 없었지만, 구내아는 자신이 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이유 없이 느껴지는 불편함이었다


몸이 아니라 지금 잠에서 깨자마자 떠오른 요즈음의 그리고 특별히 어제의 기억이 그의 뇌리에 자꾸 머무르려 했다.

백건재라는 새 친구를 만나 그와 친해진 지도 스무날 정도 지났다. 그 사이에 또래의 남녀들이 계속 들어왔고, 열흘 정도 전에는 글 

선생 하나와 무공을 가르치는 두 사람이 추가되어 소개를 마쳤다.

강호의 흔한 무공이라고는 하지만 기초에 도움이 된다며 비급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무공을 수록한 책들도 서가에 다수 추가되었고, 훈련용의 병기도 연습장에 배치되었다.


글 선생이 글을 가르칠 때는 남녀가 같이 모여서 배웠고, 무공은 남자는 남자가 교습하고 여자는 여자가 교습하였다.

이렇게 문무를 배우자 구내아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곳에 모인 몇몇은 그야말로 천재였다.


이곳에 모인 또래 남녀는 하나도 부잣집 출신이 없어서 아무도 천자문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구내아도 이곳에 와서야 심심해서 책을 읽었고, 그것이 처음으로 글을 배운 일이었고, 그 점은 다른 또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열흘이 지난 지금은 천자문을 읽히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자문을 열흘에 읽히는 일은 대단한 일이지만, 유사한 사례가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방 촌구석에서 데려온 아이들이 모두 그런 것은 틀림없이 이상한 일이었다.


특히 유귀붕이라는 청년이 이 점에서 대단하였는데 다른 청년들이 대부분이 천자문을 떼고 소학을 익히고 있는 데 비해, 이 청년은 13경을 익히는데 한 권당 하루면 충분해서 소위 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위 청년들을 최소한 학문에서는 멀찌감치 앞서고 있었다.


첫날에 논어를 둘째 날에는 대학을 완벽히 읽고 외우더니 어떤 날은 하루에 두 권을 떼는 날도 있었다. 앞으로 하루 이틀이면 13경을 완전히 떼고 다른 책을 배워야 할 판이였다. 글 선생으로 온 이는 다른 친구들의 재주에도 놀랐지만, 유귀붕의 자질에는 그저 탄복하였고, 이미 공공연히 자신의 학생들 앞에서 유귀붕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학생들도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학식으로는 더는 가르치기 어려우니 새 스승을 모셔야 하겠다는 하곤 했다.


하기는 이 추세로라면 구내아처럼 이 무리에서 가장 학문 공부가 뒤떨어지는 축에 드는 사람도 2년 정도면 과거장에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내아가 그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는 점도 냉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귀붕(劉貴朋)은 글 선생과 하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배운 것을 간단히 정리하여 동무들에게 말해 주곤 했다. 그런데 이것이 짧고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잘 요약하고 있어서 공부가 매우 쉬워졌다. 유귀붕이 정리한 내용을 듣고 다시 책을 보면 내용이 

더 명확하게 와 닿아서 확실한 복습이 되었고, 그만큼 잊어버리기가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여긴 모인 친구들이 다들 그렇게 머리가 좋은 편에 속했고, 가장 간명하게 학업의 핵심을 전달하는 동료가 있으니 학문의 정진에 후퇴가 없었다. 따라서 처음으로 글을 배우는 학생이 열흘 만에 천자문을 떼는 것을 넘어 제일 느린 사람이 소학의 끝에 도달하고 대부분은 그 이상을 나갔으며 가장 앞선 학생인 유귀붕은 13경 전체를 완파하기 직전이란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처럼 여겨졌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그들이 전에는 글공부해본 적이 없고,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에 학문의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므로 자신들의 성취를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글 선생이 제자를 칭찬하기 위해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도 있었다.


무공에서 가장 대단한 자질을 보여준 청년은 남자에서는 보연로(保延輅)라는 청년이고 여자에서는 보연한(保延翰)이라는 처녀였는데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남매였다.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시골 벽지에서 온 것은 같았지만, 오기 전부터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경우는 이들의 사례가 유일하였다.


여자들은 따로 배우니 보연한의 성취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보연로는 같이 배우니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교관이 한 번 시범을 보이면 그 자리에서 그것을 바로 해내었는데 그 품새가 교관보다 멋들어졌다. 키가 크고 신체의 체형이 좋아서 평범하게 생긴 사람보다 멋져 보이는 점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한 번 일러주고 시범을 보이면 그것을 그대로 해내는 심지어 더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세상 이치에 어두워도 두 명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두 사람이나 있었고, 심지어 그들이 남매이기도 했다. 직접 보지 못한 보연한의 능력도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 못지않다고 하니 장차 이들 남매를 막을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제 있던 무공 수련 시간에는 3일 전에 배운 무공을 시험받았다. 내공을 배제하고 초식만을 겨루었는데 교관이 일부러 보연로가 배우지 않은 무공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보연로는 같이 배우는 청년들이 한 번도 보거나 배우지 않은 초식으로 교관의 공세를 무력화시켰다.


교관은 그 공세를 수습하고서는 탄복하기를 그 같은 변화는 그 무공에 잠재해 있는 것인데 그 같은 변초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친 사용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고 말하며 탄복하였다.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배운 무공에 내재하여 있는 원리에서 저절로 발현하는 해법을 찾아내고 그것이 그 무공의 상급 과정에서 배우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초식이었다는 사실은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원래 이런 일이란 새롭게 찾아낸 변초를 오랜 시간 대부분은 몇 대에 걸쳐서 다듬어야 제법 쓸 만한 초식이 되기 마련인데 보연로는 며칠 만에 그것을 해내었고, 해당 문파가 누대에 걸쳐 가다듬어 도달한 결론에 바로 수렴하는 정답을 보여주었으니 이 같은 무재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라고 듣는 사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존재하는데 그리 놀라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학문 천재 유귀붕이었다.


조금 전에 설명한 시범이 보연로와 교관에 의해 이루어졌을 때 구내아는 바로 옆에 있는 유귀붕이 그 같은 이치를 파악하고도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쩐지 알 수 있었고, 그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러자 유귀붕도 구내아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런데 유귀붕이 한 말은 약간 의외였는데 그가 한 말은 자기가 왜 놀라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귀붕이 구내아의 기색을 파악하고 하는 말이었다는 점에서 그런 태도 역시 이상한 일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유귀붕이 한 말은 이랬다.


이상한 일이지 않나?”


뭐가? 연로가 무공에 천재인 것이?”


아니. 무공에 천재인 사람이 모두 같은 마을에서 온 것이 말이야.”


그게 왜 이상하지?”


우리는 모두 이곳 촉지방의 궁벽한 마을에서 왔어. 하나도 예외가 없고, 모두 어떤 분야든 대단한 재능을 지녔어. 그런데 같은 마을에서 온 사람은 내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없어야 하는 데 있는단 말이지. 나는 그 점이 이상해.”


그게 왜 이상한지 모르겠군. 그리고 네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네가 생각한 것이 뭔데?”


그건 나중에 말하도록 하지.”


그게 어제의 일이었다. 구내아는 침상에서 일어나서 자신이 왜 불편한지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일이 어제의 그 대화였다. 구내아가 불편한 것은 몸이 아니었다. 몸은 어디도 아픈 곳이 없었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마치 악몽을 꾸고 난 것처럼 새벽에 잠을 깬 지금 어제의 그 대화가 생각나고 뭔가 심리적으로 불편하였다.


마치 지난 밤에 꾼 악몽을 억지로 되살리려는 기분이라 자신이 그런다는 사실에 점점 더 불편해졌다. 그래서 일단 구내아는 자신의 편치 않은 기분을 치워두고 밝은 날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곳은 밥걱정할 필요도 없고, 문무를 익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같이 모인 또래들도 구내아와는 모두 잘 지내고 있다.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잘 먹고 충실히 배우고 연습하다가 잠들면 될 것이다.


그렇게 일단 생각하고 침상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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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연재를 지키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바이러스 온 세상이 떠들석합니다. 건강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0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0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권평서는 비록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크게 두 소저에게 감사의 말을 하였다. 그리고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랫사람으로서 주공이 맡긴 일을 해내고, 부모로서 병옥이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이 두 가지 대의(大義)만으로도 다른 협의(俠義)는 생각지 않아도 되지 않는다고 전에 부인이 한 말도 이 부족한 사람을 깨우쳐주려는 말씀이셨구려. 세 분 여인에게서 좋은 말을 들어서야 내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니 한편 고맙고 한편 부끄럽소이다.”

 

옥소홍이 물었다.

그럼 이제 마음을 정하신 것 같으니 그 일을 하려 하시겠네요?”


그래야겠지요.”

옥소홍과 등영림이 서로 시선을 한 번 마주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같이하겠어요.”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등영림이 그 말에 약간 고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첫째로 다른 길이 없지 않나요? 우리가 이런 큰일에 얽히지 않고 남은 평생을 지내는 일은 이미 틀렸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권평서는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이 두 소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림이, 세상이 그렇게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달아나거나 숨는 것도 만만하지 않아요. 물론 굳이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고 싶지도 않아요.”

첫째라 하셨으니 둘째도 있습니까?”


둘째로 이왕 그렇게 되었다면 좋은 사람들과 같이하고 싶어요. 가능하면 옳은 일을 하고 싶고, 그런 일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권평서는 나름대로 선천적인 재주는 있지만, 무공을 모르는 두 젊은 소저가 이런 일에 끼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런데도 이미 두 소저가 스스로 알고 있듯이 피할 길이 없다는 점도 분명했다.


마교를 찾아가 너희랑 손잡을 테니 재물을 내놓으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반드시 두 소저에게 나은 길이라고 할 수 없었고, 권평서와 안혜빈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바로 반각 전의 권평서라면 자기 편의 이익을 위해서 두 소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판단을 내릴 때 세 번은 더 고민했을 것이나 조금 전에 얻은 교훈이 있기에 그러한 검토는 한 번으로 끝냈다.


더구나 이 두 소저는 선천적으로 총명을 타고나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반복하여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두 소저가 두 사람을 숙부와 숙모로 부르기를 원하여 호칭만 그렇게 정리하였다.


앞으로 할 일은 정했으나 그 할 일의 구체적인 내용은 정하지 않았으나 이제 그것을 정해야 할 차례였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는 일단 마음을 정한 권평서에게는 어느 정도 복안이 심중에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그래서 안혜빈이 물었을 때 아주 상세한 계획은 없었지만, 다음 단계로 해야 할 일 정도는 정리해 말해 줄 수 있었다.

 

현재 이 땅에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두 분 소저 덕분에 기대볼 가능성이라도 있는 세력이 생겼소. 바로 두 분 소저와 같은 선천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오. 이 사람들은 어차피 이 일에 무관할 수 없다면,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겠소.”


마교가 그냥 있지 않을 텐데요?” 아내의 질문에 권평서가 말했다.


그나마 마교가 가장 움직여볼 만한 세력이오. 다른 명문정파는 지금도 먹은 것이 있는 탓에 중도 관망해야 할 처지고 그것을 움직이는 일은 어렵소. 그들에게 줄 것도 빼앗을 것도 없기 때문이오. 하지만 마교는 내부의 양종의 알력도 있고, 아직 구천십지의 인재들이 그들과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을 테니 그들 젊은이와 양종 가운데 하나를 움직일 수 있다면 최선이고, 최소한 청년들은 얻도록 노력해야 하오. 그리고.....”


그리고요...”


무하독문은 한 번 시도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오. 무하독문이 우리가 함께 들어갔던 와선별부엣 얻은 것은 수혼수였소. 무척 귀한 물건이지만 무하독문 처지에서는 직접적인 효용이 닿는 물건이 아니오. 그들은 독문이니까 말이오. 비록 그 문파가 권장에 약하니 그 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무하독문의 문주인 녹포노조의 공력이면 본인 자신에게는 있으면 좋고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오. 그렇다면 산민 아우의 재주를 팔아볼 가능성이 있소.”


그것은 먼 데 있는 물로 가까운 불을 끄자는 말씀인데...”


물론 알고 있소. 산민 아우는 지금이면 북방 어딘가에 있겠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소식을 전달할 방법도 없다는 점은 나도 아오. 그리고 아우는 분명히 그곳에서 타아우와 더불어 자기 몫을 할 텐데 형이 되어서 이곳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손 벌릴 생각부터 하다니 이렇게 불민한 일이 어디 있겠소. 그러나 그런 점은 이미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부인. 나는 할 수 있는 일이면 저급한 술수든 뭐든 하루 생각이니까 말이오.”


알겠습니다.”


물론 나도 무하독문 정도를 움직이기에 우리가 지닌 것이 크지 않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쩔 수 없소.”


권평서의 말이 이어졌다.

대상맹에서 반대파를 제거했다지만 아직 반감을 품은 상인들이 있을 것이오. 대상맹 간사들의 역량이 높고, 그들이 끌어들인 10대 검객의 몇몇이 대단하니 겉으로는 못 하더라도 내심으로는 아닌 사람들이 있을 테니 그들을 통해서 현재 실세 간사들을 누를 수 있다면, 그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소.”


마치 이미 진 바둑에서 묘책은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두어보는 기분이지만, 상공의 말씀이 옳습니다.”


고맙소. 그리고 두 분 소저도 미안한 말이지만, 이왕 이 일에 발을 들이기로 했으니 내 철저히 부릴 생각이니 마음 단단히 잡수시는 편이 좋겠소.”


두 사람이 그 말에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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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집안에 행사나 일이 생겨서 연재가 늦어져 죄송합니다. 그리고 분량도 적어서 더욱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009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9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권평서의 안타깝다는 말에 옥소홍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저희가 달아날 수 없거나 적어도 어렵다는 사실은 알았어요. 그런데 두 분은 저희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디로 가시려 했나요? 아니 무엇을 할 생각이셨나요?”


권평서는 자신들의 사정을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잠시 더 고민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제부터 하는 말의 높은 비밀가치와 그로 인해서 이 아가씨들의 인생에 미칠 영향을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권평서는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두 소저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점만으로 죽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등영림이 거의 한 식경을 말없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소지막이란 사람이 거병을 할 생각이고, 그런 낌새를 알만하고 또 외부에 전할만한 세력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막기 때문에 우리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아까 하신 설명이 조금 더 이해되었어요. 그런데 두 분은 그 일을 막으려 하시고요. 뭐 사실 저같이 학문을 안 한 계집애도 반역이 나쁜 것이라는 점은 잘 아니 그건 막아야 하겠네요. 그리고 저희의 일은 최근에 아신 것이지만, 누군가 우리를 세상에 이렇게 태어나도록 만든 사람, 아마도 화무제라는 분이라고 추측하신다고 했죠. 증거는 없지만, 그분도 나름대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고, 일을 꾸민 김에 겸사겸사 우리를 바라마지 않던 마교에게 넘겨주거나 알려주고, 한편으로 소지막이란 분의 거병도 돕겠다. 그리고 역시 추측이지만, 소지막이란 그분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화무제라는 분의 부하로서 그런 일을 꾸미는 것 같다?”


권평서가 답했다.


제대로 알아들으신 듯싶소.”


하나 더 제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확인해주세요.”


그러리다.”


그런데 두 분은 겨우 두 분이 이런 일을 막거나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시는 거고요?”


그런 셈이오.”


그때 옥소홍이 끼어들었다.

아닌 것 같아요.”


권평서와 안혜빈이 약간 당황한 빛을 담아 거의 동시에 말했다.

아닌 것 같다니 그 무슨 말씀이시오?”


 

옥소홍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자주 귀신이 되어서 그런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이나 분위기를 눈치채는 일에 감이 조금 있거든요. 제가 보기에 두 분은 그중에서도 특히 아저씨는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시는 것 같지 않아요. 방법을 아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 고민하고 있다? 황당한 말씀으로 들리오만? 옥소저...”


이번에는 등영림이 나섰다.

저도 소홍이 말을 듣고 나니까 어쩐지 알 거 같아요. 그리고 저도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인데 두 분처럼 척 봐도 총명하신 분이 모를 리 없는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태도를 보고 저도 뭔가 깨달았어요.”


권평서는 평생에 남이 아는 일을 자기가 모르는 일이 드문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 드문 일도 대개는 상대가 아는 정보를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경우였고, 권평서가 사람인 이상 세상의 모든 정보를 알 수는 없는 일이니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단서가 노출된 상황에서 가장 먼저 그것을 그러모아 답을 내는 사람은 권평서였는데 이 두 아가씨는 자기도 모르는 것을 먼저 안다고 하는데 권평서가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은 대단히 특이한 경우였다.


할 수 없이 권평서가 물었다.

그럼 내가 알면서 피한다는 그 해법이라는 것이 뭐라 생각하는지 듣고 싶소만...”


간단하잖아요. 소지막이란 그 높은 벼슬아치를 죽이면 되지요.”

이건 옥소홍의 말이었다.


제치사 소지막의 암살이요.”

이건 등영림의 말이었고, 곧이어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아마 아저씨는 암살 같은 어쩌면 치졸하다고 생각하기 싫어하시기에 한 쪽에 치워두고 계신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소지막이란 사람이 죽으면, 굳이 이 땅에서 거병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권평서는 충격이 뇌리를 스치는 기분이었다. 문리가 트인 이래 이렇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나 싶었다. 그리고 두 소저의 말대로 자신이 원래 이 방법을 알고 있었으나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 애썼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얼굴에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다행히 생각은 창피하지 않게 속으로만 할 수 있었다.



내 입으로 뱉은 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었구나. 권평서야... 그런 주제에 잘도 동이불화 화이부동이니 유림이니 무림이니 군명이니 협명이니 떠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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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연재가 하루 늦어져 죄송합니다. 더불어 이번 화는 끊을 곳을 찾지 못해 분량이 짧아서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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