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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선별부 타산지옥 96편

타산지옥(他山之玉)

 

11권 제 96

 

 

설자(楔子)

 

어느 날 다람쥐(혼유자鼲鼬子)가 엽신(獵神)에게 물었다.

사냥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합니까?”

주로 거짓을 행한다.”

 

어느 날 엽신이 신주일군에게 물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무엇을 주의해야 합니까?”

착각하지 마라.”

혹자는 이 말이 엽신에게 주는 꾸중이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사건은 곽윤아가 혈기창(血驥槍)을 얻은 다음에 일어났다.


어느 한방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불이 모두 꺼졌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여산민이 가장 먼저 이유를 알아채고 말했다.

안에 공기가 없습니다. 따라서 불이 꺼진 겁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심지어 문을 열고 있는데도 안과 밖의 공기가 섞이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물었다.

안에 공기가 없다고?”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공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잘 설명하기 어려운데 공기에는 우리가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어떤 생명에 필수적인 원기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공기는 그것을 결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완전히 밀폐된 장소에 오래 있으면 질식해서 죽는 이유가 그것인데 사실 그 상황에서도 숨을 쉬어보면 뭔가 기체로 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밀폐된 공간에서는 그 생명의 원기가 되는 것이 모두 소진되고 없는 죽은 공기만 남게 되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이 방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안에 공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있지만, 죽은 공기라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이 방이 환인공을 위한 방이나 창고가 아닐까 합니다. 환인공은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몸이었으니까요.”


용부단주가 그 말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 옥로전장은 북야삼공이나 사위의 신물이 필요한데 과거 북야쌍비(北野雙妃) 가운데 좌비(左妃)의 물건은 이미 본장에서 주었고, 이제 우비의 노리개도 타기곡 대협과 그 의제에게 들어갔소. 혈기창은 곽소저가 챙겼고, 다른 삼위의 물건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소. 삼공 가운데 다른 둘 중 하나는 팔병비와 이미 동행한 모양이니 이곳이 환인공의 거처나 비고(祕庫)이고 안에 환인공의 신물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취하겠소.”


모두가 동의하는 가운데 용부단주가 고개를 돌려 계필을 보면서 말했다.

물론 자네와 연관된 물건이 있다면 본장은 약속을 지킬 것일세. 자네도 그 신물을 지니고 본장과 협력한다는 약속을 지키리라 내가 믿듯이 자네도 믿어주면 되네.”

계필은 말과 표정으로 그 말에 동의하였다. 용부단주가 다른 횃불을 안으로 넣어 살피려 하는데 방 입구를 조금 넘자 얼마 안 가서 꺼졌다.


여산민이 말했다.

죽은 공기 속에서는 불도 타지 않습니다. 야명주를 사용하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고풍무를 보았다. 고풍무는 어디선가 구슬을 하나 꺼내주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의아해하는데 여산민이 대표로 물었다.

야명주가 하나 더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지하로 내려와서 받은 큰 야명주 말고 원래 야명주를 지니고 있었군요.” 여산민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하기사 지하에 내려와서 그런 큰 야명주를 받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면, 아무 준비도 안 할 분이 아니시긴 하죠.”


고풍무가 대답했다.

분명히 그 야명주를 받을 때 내가 본 것은 그보다는 훨씬 작았다는 이야기를 했지. 하지만 아무도 그걸 내가 구입 했는지 아직도 지니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지.”


흡혈귀가 태양 빛에 약하고 그것을 대신할 수단이 야명주라는 사실을 아는데 야명주를 준비해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용부단주는 뒤에서 그런 말을 나누거나 말거나 숨을 참은 채 야명주에 내공을 불어넣고 앞으로 나갔다.


수색 끝에 척 봐도 귀중한 상자를 하나 비밀 벽 뒤에서 찾아냈고, 그것을 방 밖으로 운반해 나왔다.


밖에 나와서 참았던 숨을 크게 쉬는 사이 고풍무가 환인공에게 받은 열쇠를 건넸다. 용부단주가 그중에 이 상자와 가장 맞을 것 같은 열쇠를 골라 상자를 열었다.


다른 함정이 있을까 봐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용부단주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열었지만, 함정은 없었거나 제대로 된 열쇠로 열 때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상자의 크기가 컸는데 그 안은 귀중품이 꽉 차 있었다. 용부단주가 쉽게 들고나와서 몰랐는데 용부단주 같은 고수가 아니었으면,

는 일도 쉽지 않은 무게라고 생각되었다.


용부단주는 숨을 참은 상태에서 한편으로 야명주에 내공을 사용하면서 했으니 역시 옥로전장이 가려 뽑아 보낸 고수답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중품이 가득 차 있었지만, 용부단주의 얼굴은 조금도 기쁜 표정이 없었다.


분명 상자 안에는 금덩이와 보석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으며 각기 자루별로 담겨 있기까지 했다.

, 금괴는 10개씩 한 자루에 담겨 있었고, 보석은 색깔과 종류별로 비단 주머니에 담겨 있었다. 다른 보물들도 그렇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볼품없는 것은 상자로 무겁고 단단하고 튼튼하고 적합한 방법이 아니면 열리지 않도록 매우 잘 만들어진 금속제 상자이긴 했지만, 그런 실용성을 제외하면 장식이나 소재가 평범한 것이어서 돈이 될 물건은 아니었다.


다만 상자의 두꺼운 금속 벽에 칼날과 독침이 들어있는 것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보였다. 테두리에 날카로운 바늘과 칼날이 상자의 내벽와 외벽 사이에 틈을 만든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고, 열쇠가 아닌 것으로 열 때 어떤 방식으로든 작동하리라 예상되었다.


열쇠를 사용하여 열더라도 부주의하여 가장자리를 잘못 만지기라도 한다면 찔리거나 베이기 쉬웠다. 물론 환인공은 부주의하여 자기 상자를 자기가 열다가 테두리를 잘못 만지거나 닿아도 그런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해를 입지 않으니 문제없었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달랐다.


아무튼, 용부단주 처지에서는 이런 재물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굳이 용미가 나서지 않더라도 상자에 담긴 물건들이 돈으로는 가치가 높지만, 돈으로서의 가치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그 상자의 내용물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곽윤아와 초양서를 제외하면 인생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고, 초양서도 부유하게 생활하고 여러 보물을 본 경험이 많으므로 그도 그 사실을 짐작하고 용부단주의 표정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용부단주가 비단 주머니에 담긴 보석이며 금괴 묶음이며 하나하나 꺼내어 바닥이 드러나 상자가 비도록 했으나 다른 것은 없었다.

용부단주가 바닥의 둔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기 위해 이제까지 몸을 굽히고 있다가 결국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상대는 소위 일꾼이라는 사람들이었다.

재물은 자네들이 원하면 골고루 나눠 갖도록 하게.”


여산민이 나서서 말했다.

아직 모든 방과 창고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실망하긴 이릅니다.”


여산민이 그렇게 말했을 때 고풍무가 상자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용부단주에게 준 것이 아닌 다른 큰 야명주를 꺼내어 빛을 내면서 상자를 가지고 나온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숨을 참아야 했지만, 그런 점이 고풍무에게 문제가 될 리 없었다. 고풍무는 방 안에서 꽤 오래 뭔가를 살피더니 밖으로 나와서 말했다.

이보게, 나착.”


이름이 불리자 나착이 앞으로 나섰다.

.”


당신 왕년에 중원에서 이름 날리던 포두였지. 나랑 이 방을 같이 한번 둘러보겠나? 숨 참기 어려우면 즉시 밖으로 나가도록 하게. 하지만 자네도 무공을 하니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그 말에 나착이 동의하자 두 사람은 다시 야명주를 밝힌 채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고풍무가 밖으로 나와서 물었다.

어떤가?”


확실히 이상합니다.”


그렇지?”

고풍무가 말했다.

나도 어떤 위화감이 들었어. 오래 강호를 구르다 보면 사람과 주변 환경이 얼마나 어울리는지 어색한지를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런 위화감을 느낄 때가 있지. 대개 그런 경우는 누군가가 억지로 가짜 객잔을 꾸미고 나를 기다린다거나 그런 상황이었지. 그런데 지금도 그런 기분이 느껴졌어. 그런데 정확히 짚어내지는 못하겠군. 하지만 뭔가 이상해.”


나착이 그 말을 받았다.

상자 안의 보물이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가져가기 좋게 말입니다. 반면에 방안은 아주 어지럽고 정돈하지 않은 상태는 아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상자의 주인의 성격이 정말 반영되는 공간은 이런 방인데 그 방과 상자를 정리한 성격이 다릅니다.”


나착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물론 방안 정리정돈보다 보물이 중요하니 보물에만 정성을 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상자만 너무 실용적입니다. 그리고 상자가 실용적인 것에 비하면 보물을 포장한 주머니나 자루 그리고 끈은 너무 사치스럽습니다. 죄다 비단이거나 그보다 귀한 것들이죠.”


여산민이 그 말에 생각이 난 듯한 어조로 말했다.

말하자면 누군가 몰래 방안에 들어와 비밀 벽을 열고 보물 상자를 발견하여도 상자는 가져가기 어렵지만, 일단 상자를 열면 상자는 두고 그 안에 담긴 보물은 가져가기 쉽게 해두었다는 말인가?”


나착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을 분류하여 넣어두는데 화려한 문양의 비단을 사용한 사람이 상자에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고 나니 날카로운 칼날이 촘촘한 상자가 모양도 나쁘고 안에 암기와 칼이 숨어있고 그것이 작동하도록 무겁기까지 하니 누구도 가져갈 생각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도를 품고 상자를 겉멋은 없고 투박하게만 만든 것입니다. 정말 실용적인 사람이라면 보물을 분류한 주머니도 일부러 주문하여 맞춘 것이 틀림없는 저런 비단과 천 따위를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 정도의 비단 주머니를 일부러 주문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실용적인 목적이라도 상자 역시 겉모습이 괜찮도록 주문했을 터이고요.”


그리고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상자를 열지도 않고 통으로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겁지. 무엇보다 주인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해서 들고 가야 하고 말이지. 그것도 북야왕의 거처에서 환인공을 상대로 말이지.”


이 상자가 이곳 북야왕의 거처에 외부인도 드나들 수도 있었던 과거부터 있었다 치면, 염려할 것은 상자를 통으로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몰래 열어서 안에 담긴 물건을 가져가는 일을 염려하는 편이 현명합니다.”


나착의 말에 용미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제가 살펴보니 무공이 깊다면 상자를 강제로 열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열쇠가 없으면 칼날과 독침이 상자를 강제로 여는 순간 발사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만, 뒤집어 이야기하면 이 상자를 내공을 사용하여 열쇠 없이 힘으로 열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정도에 당하지 않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상자를 쉽게 운반할 수 있는 내공이나 근력을 지닌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열쇠 구멍 자체를 부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잘 정리된 보물이 역시 비싼 자루와 주머니에 들어있다면 챙길 수 있을 만큼 재물만 챙겨서 가겠지.”



고풍무가 그렇게 정리하고는 검을 들어서 상자를 내리쳤다. 금속으로 된 상자가 두 쪽이 나나 싶더니 고풍무가 중간에서 검을 멈췄다. 그리고 타기곡을 보았는데 타기곡이 그 눈짓에 따라 다가가 힘을 주어 고풍무가 갈라서 베어 놓은 부분을 더욱 벌렸다.

그러자 밑바닥에 숨겨진 한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물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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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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