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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평서전기 하편 005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5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구내아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해가 떠 있는 늦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시간이 흘렀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구내아의 기준으로 잠에서 깨는 시간은 최소한 해가 뜨기 직전에는 일어나서 아침 햇살을 받을 즈음에는 밭에 나가 있어야 했다.


더하여 자기 방을 따로 소유하고 있는 일도 익숙하지 않았다. 비록 자기가 어젯밤에 떠 놓은 것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방을 나가지 않고도 세수를 할 수 있는 물이 준비된 생활도 익숙하지 않았다.


서서 세수를 할 수 있도록 철로 된 간단한 받침대에 올려진 세숫대야로 가기 전에 구내아는 역시 어젯밤에 자기 전에 자기가 떠 놓은 자리끼 병을 집어서 그것을 마셨다.


날이 어두워지고 취침 시간이 되면 절대로 방을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이곳 사람들 때문에 밤에 필요할지 모르는 것들은 미리 준비해두어야 했다. 그것에는 자리끼와 요강 비우기 등등 여러 가지가 포함되었다.


구내아가 받은 요강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서 자기 전에 미리 비우고 씻어둘 일은 없었다. 구내아의 처지에서 일을 볼 때 요강을 쓰는 것은 다 죽기 전의 노인이나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곳의 측간은 너무 깨끗하고 넓어서 구내아의 기준으로는 그 안에서 잠을 자라고 하여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구내아는 자신이 배당받은 방을 둘러보았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방 정리와 청소를 매일 하고 있어서 그의 방은 깨끗했다. 여기 온 지 이틀 정도 되었을 때 방 청소를 하러 온 사람에게 청소도구를 주면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말했고, 그 말이 받아 들여져서 청소는 그가 직접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방을 각자 청소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구내아로서는 알 수 없었다.


구내아는 몰랐지만, 청소를 직접 하겠다고 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 이유는 달랐다. 자기 공간에서 자기만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한 사람도 있었고, 구내아처럼 단순히 부지런함과 성실이 몸에 배 그런 사람도 있었고, 청소도구라는 나름대로의 장비를 확보하고 자기 방에서 뭔가를 계획하고, 어떤 물건을 만들어 숨겨 놓아도 그것을 공식적이고 주기적으로 수색당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그 나름대로 타산이 있는 청년도 있었다.


그러나 구내아는 다만 평생을 벽촌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일하면 살아온 청년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밥을 먹는 일은 아직도 낯선 일이었기에 그렇게 했다.

 


세수하고 여기서 나눠준 옷을 입으면서 구내아는 옷이 아직도 쓸만하고 그가 살던 마을의 기준으로는 전혀 빨래할 때가 아니지만,

오늘은 세탁할 장소를 물어봐서 빨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문을 열고 나서자 함께 여기서 기거하는 다른 청년 네 명의 방이 보였다. 아직은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직 잠에 취해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구내아가 생각하기에는 침상만 더 들여놓으면 그들 다섯이 다 함께 자도 괜찮을 넓이의 자신의 방 같은 것이 열 개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다섯 개만이 사람이 있었다. 식사 때만 마주치는 반대편 누각에는 여자들이 사는데 거기는 여자 세 명이 있는 모양이었다.


누군가 아예 나오지 않고 방에만 있다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눈치로 보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10개의 방이 3면을 차지하고 다른 한 면의 한 가운데에는 출구가 있는 구조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면 중앙에 탁자가 놓인 공간도 있고, 구내아는 알 수 없는 기구들이 놓인 공간도 있었다.


위아래 사이에 중간층이라 아래와 위가 모두 막혀 있었으나 각자의 방으로 가서 창문을 열면 외부를 내다보고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물론 그 창은 쇠로 된 창살로 막혀 있었지만, 도주방지 용도보다는 추락방지 용도라고 봐야 했다. 창살 사이로 내려다보는 경치는 좋았지만, 떨어지면 누구라도 죽을 높이라는 점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답답한 환경이지만, 구내아는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구내아의 성격상 그냥 논다는 것은 도저히 성정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의 다른 어떤 젊은이처럼 내보내 달라고 애걸복걸하기에는 그런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

을 것이란 사실을 알 정도는 되었다.


공유공간에는 서가가 있었고, 책이 많았다. 할 일이 없다면 학습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자로 된 책을 읽으려면 익혀야 할 글자가 적지 않은데 대개 그 첫 과정은 천자문이었다.


구내아도 자신이 천자문부터 천천히 익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천자문을 찾다가 못 찾아서 드나드는 사람에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천자문을 찾아주었다.


알고 보니 천자문의 별명이 백수문(白首文)인데 천자문을 지은 사람이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옛이야기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런데 이곳의 천자문은 어쩐 일인지 천자문이라고 표지에 쓰지 않고 백수문이라고 써 놓아서 구내아가 어설프게 아는 일천천()자만으로는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자를 익히고 있는데 새로운 청년들이 도착했다. 새로 온 청년은 둘이었는데 그들에 말에 따르면 맞은 쪽의 여자들 누각에도 두 사람이 새로 그들과 같이 왔다고 했다.


구내아는 두 청년의 이름을 모두 들었으나 같은 파촉 지방의 사람이어도 사투리가 그가 사는 지역과 달라서 그 발음을 정확하게 듣지 못해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다른 한 사람은 백수문을 물어봤던 기억이 아직 명확해서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역시 흴 백()자로 시작하는 백건재라는 청년이었다.

 







 

 

권평서와 안혜빈은 대상맹이 사들인 지역 가운데 아직 가보지 않은 마을을 마저 돌기로 하였다. 이 청년들이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고, 그리하여 가능하면, 그들이 마교의 손에 이용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현재 촉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연하는 일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안혜빈이 말하였다.

이들 열아홉 명을 모두 파악한다면 한 가지 사실은 알게 되는 거죠?”


별로 대단한 도움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긴 합니다. 천마지체의 성별은 알 수 있습니다. 열아홉 명을 모두 모았더니 남자 10에 여자 9라면 당대의 천마지체는 남자고, 반대라면 당대의 천마는 여자가 됩니다.”


아직은 아무도 모든 젊은이를 다 모으지 못했을 테니 지금 당장은 누구도 그것조차 알지 못하겠군요.”


실은 전설대로 천마지체 한 명을 제외하면 짝을 맞춰 남녀동수로 태어나는지도 아직은 확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인.”


그런데 외람되오나 상공.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제 소견으로는 상공께서 해결 방안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사실은 마음의 빗장을 지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인.”


공명정대하고 비교적 협의에 벗어나지 않는 계책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흐음..”


아랫사람으로서 주공이 맡긴 일을 해내고, 부모로서 병옥이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이 두 가지 대의(大義)만으로도 다른 협의(俠義)는 생각지 않으셔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이 아녀자의 짧은 소견입니다.”


안혜빈은 스스로 아녀자의 짧은 소견이라 했지만, 그 말은 권평서에게 뭔가 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하는 바가 있었다.


부인께서는 언젠가 내가 왕학 공자와 나눈 말을 기억하기 때문에 방금 그 말을 하신 것입니까?”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군자가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하나....”

자신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권평서는 과거의 기억에서 그때의 구절을 꺼내 올려 입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반추가 결국 그들 두 부부의 행보와 장차 촉땅의 진로를 결정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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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하루 늦어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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