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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12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2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완전히 침상에서 일어난 구내아는 석연치 않은 것을 하나 더 알아챘다. 창문이 이미 환하게 밝아있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마다 무척 늦게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이곳의 생활이 매우 편해서 매일 농사일로 단련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해이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배가 고프다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구내아는 이곳에서 주는 아침을 먹을 때까지 배가 고픈 일이 없었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치자 가만히 생각하던 구내아는 이미 아침 먹을 때를 놓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은 평소와 달리 너무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 아침 끼니를 놓쳐서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런 생각을 기다렸다는 듯이 후각에 어떤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방향을 향해 눈을 돌리니 문가 탁자에 쟁반이 있고, 그 위에 밥과 고기 채소가 갖춰진 아침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내아는 최근에 이곳에서 친해진 청년들이 구내아가 늦잠을 자자 굳이 깨우지 않았고, 심지어 끼니도 거르자 밥을 타다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준비해두었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마음도 들고 어쩌다 이렇게 늦잠을 잤을까 생각하면서 아침상이 마련된 탁자로 갔다. 그릇을 덮은 보자기를 걷자 그 위에 종이가 보였다. 그것을 펴자 아침상을 마련해둔 사람이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은 구내아가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평범하지 않았다.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고, 안에서 기다려라. 귀붕(貴朋).’


귀붕은 당연히 유귀붕일 것이다. 물론 글자 뜻만 보면 귀한 친구가 남긴 쪽지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요사이 유귀붕의 필체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그것이 유귀붕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굳이 자신의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남긴 데다 서명에 힘을 준 뜻은 

그가 구내아의 귀한 친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지는 쪽지였다.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순간 그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던 구내아는 다음 순간 생각난 듯이 문으로 움직여 문을 밀어보았다. 손가락이 문에 닿는 순간 문

이 잠겨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은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단단하기는 했지만, 방 안에 있는 가구와 연습용으로 

가져다 놓은 날이 없는 병기가 있으니 시간은 걸려도 강제로 열고 나갈 수는 있었다.


문을 막아 놓은 것은 필시 유귀붕일 테고 그는 똑똑한 사람이니 그 점을 모를 리 없는데 이렇게만 해 놓은 것은 구내아가 자신의 말을 따라주기를 기대했다고 봐야 했다.


도대체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지?’


그런 의문을 떠올렸으나 일단 밥이나 먹자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벽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구내아에게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밥을 안 먹고 남긴다거나 하는 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내아는 친구가 차려 놓은 상을 맛나게 먹었고, 깨끗하게 남김없이 비운 그릇을 탁자 위로 되돌리고, 이제 책이라도 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잠시 침상에 앉았는데 스르르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주약전(朱若戰)은 올해 32세의 고수로 마교의 양종이 그들이 모은 청년을 지도하기 위해 이곳에 파견한 남자였다. 이곳에 모인 청년들은 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글선생과 글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남녀로 나뉘어 그와 여자 측을 맡은 고수인 고종비(高種妃)가 각기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주약전은 어차피 이곳에 올 것이므로 점심은 항상 이곳에 와서 먹고 조금 쉬었다가 청년들을 지도하는 것이 일과였다. 자신의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음식이지만, 그래도 지도하는 처지라 먹는 곳은 달랐고,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이 상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있는 동안 필요한 업무에 사용하는 방으로 가면서 주약전은 대개는 학생들을 한 번 살펴보고 가는데 그가 오는 시간이 항상 비슷해서 식당에 모여있는 학생을 보게 마련이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짧은 일별이었지만, 주약전은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뭐가 다른지는 알 수 없었는데 자기 방에 앉자 평소와 뭐가 다른지를 알 수 있었다.


항상 식당에서 볼 수 있었던 구내아가 없었다.

오늘따라 일찍 먹고 들어갔나?’


그런 생각을 할 때 하인이 밥을 날라왔다. 식사하면서 주약전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도 이곳에서 계속 숙식을 하는 편이 저 애들을 지도하는 일에 더 도움이 될 텐데...’


주약전과 고종비 그리고 글선생이 이 높은 고산에 있는 건물로 출퇴근을 하는 것은 교내의 압력 탓이었다.


문무를 담당한 스승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고, 교내의 양종은 그 인선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그나마 가장 중립적인 사람을 찾아내 임명한 것이 그와 고종비였다.


그러나 교내에서 양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한 중립 인물은 없었기 때문에 평소의 인품으로 보아 자기 계파에 노골적으로 충성하지 않을 그래도 원칙이나 소신이 있고, 불편부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양측에서 남녀 한 명씩 고른 것이라서 교사와 학생이 종일 함께 생활하면 영향력을 안 받을 수 없다고 하여서 정말 가르칠 것만 딱 가르치고 퇴근해야 한다는 식으로 규칙이 정해졌고, 그 탓에 선생 된 자들이 매일 이곳을 오르내리게 된 것이었다.


밥하고 심부름하고 청소며 그 밖의 일을 하인들은 오히려 이곳에 상주하였는데 이들은 무공은커녕 글도 익히지 않은 무지렁이들로 정말 일이나 하는 사람임을 양측이 혹시라도 상대방이 몰래 넣은 자가 아닌지 확인하고 배치한 사람들이었다.


천애의 절벽 고산지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출입구를 봉쇄하고, 그보다 약간 아래에 건축한 건물에 고수와 경비병이 있으면 학생들이 내려오거나 누군가 학생에게 가려고 올라가는 일은 완벽히 막을 수 있었다.


한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관리하는 사람 없이 하인들만 남아있으니 안에서 학생들끼리만 있는 시간에 학생끼리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점은 문제였다.


그런데 문제라는 것은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인식을 해야 문제가 되는 것인데, 명왕종의 혼괴광란의 사대장로는 학생들이 서로 두들겨 패거나 심지어 죽여서라도 서열을 정하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고독(蠱毒)을 만드는 방식이라는 최후의 하나가 남을 때까지 서로 싸우는 일이 생겨도 그 하나만 건지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자도 있었으니 이 같은 방치는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기도 했다.


주약전은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소교주도 꺾지 못한 혼괴광란 4대장로의 고집에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고종비 측에 물어보니 남녀 간의 문제는 일단 없는 듯이 보인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직 무공을 처음 익히는 초반부 과정에 있으니 힘자랑을 하기는 이르다는 것이 주약전의 생각이었고, 젊은 청년들이 조금 뜻이 안 맞는다고 주먹다짐을 한다면 대개는 주변에서 말리기 마련이고 심각한 혈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그렇게 주약전은 바라고 있었다. 더구나 공공연하게 너희 중 하나만 살아남을 것이니 최후의 결전에 대비하란 식으로 언질을 준 적도 없었고, 교단의 양측계열이 정말로 그것을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19명을 모두 모으고 그들 모두가 교의 동량으로 성장해주면 그것이 최상이라는 사실은 분명했기 때문에 굳이 최고의 인재 하나만 남기고 상잔하게 하자는 의도는 없다는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주약전은 문제가 생긴다면 남녀의 애정 문제에서 일이 터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젊은 청년 중 누군가가 낭자들 숙소에 침입해서 강제로 욕을 보이려 한다든가 누군가 누구를 짝사랑하거나 연적이 생기거나 좋아했다가 헤어지는 그런 일 때문이면 저 나이 때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단은 여자 측을 맡은 고종비가 보는 바로는 그런 눈치는 없다니 다행한 일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심을 마친 주약전은 차 한잔을 마시고, 그의 학생들의 오후 일과인 무공교습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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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계속 일이 생겨서 죄송합니다.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힘든데 독자분들과 주변 분들이 무탈하시고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전개상 분량이 약간 줄어서 죄송합니다


허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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