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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선별부 12권 평서전기 16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16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형제를 공격한 명존지종의 수행원의 표정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각자의 처지에서 다양하게 해석하였다. 명왕일종의 두 장로는 그 표정을 뭔가 사정이 있어 강압 때문에 시키는 일을 내키지 않아도 했으나 막상 저지르고 나니 자신이 더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때 명왕일종의 수행원 중 하나가 몸을 재빠르게 일으켜 탁자를 넘어 반대편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형제를 공격한 후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어찌할 줄 모르던 그자를 공격하였다. 양편의 어느 장로가 보기에도 그 공격은 성공할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공격하고 당황한 마음이 너무 컸는지 수행원 여섯의 평균적인 실력은 고사하고 여자를 담당한 지도자인 고종비라도 막을 수 있는 공격이 그대로 적중하였다. 그렇게 멍한 상태인 적수의 천령개를 격파해 일장으로 격살한 명왕 측의 수행원이 남은 한 명의 멀쩡한 수행원을 공격하였다.


이때는 이미 양편의 장로들이 사정을 따지지 않고, 대치상태에 들어갔는데 서로의 실력이 비슷한 만큼 어느 쪽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명존 측에서는 명왕 측이 뭔가 일을 꾸며 자기 측의 수행원을 배신시켰고, 이 자리가 필시 그들 두 장로를 노리고 만들어진 함정이라고 이른 시간 안에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 측인 명왕 측 장로들도 그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이곳에 오지 않은 두 장로나 그중 하나가 일을 꾸민 것이라면 자신들에게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곳에 온 장로들도 당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일을 계획했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자기편을 의심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명왕 측 두 장로는 같이 온 다른 자기편 장로는 자기와 달리 아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품고 있었다.




 

한편으로 형제를 죽인 수행원을 격살하고 이제 명존 측에서는 유일하게 남은 멀쩡한 수행원을 공격하던 명왕 측 수행원의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태에 대해 이미 같이 온 셋 중의 하나는 죽고 하나는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자기에게 명왕 측 수행원의 공격이 들어오자 남은 명존 측 수행원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력을 끌어올려 일생일대의 공격으로 맞받았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적중하리란 생각보다는 상대도 부담을 느끼고 물러서면 한 박자 쉴 틈을 찾아 싸움의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공격이 그대로 들어갔다. 상대방은 일부러 그 공격을 맞아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대처하더니 그냥 그렇게 전력을 다한 공격을 그냥 맞고 쓰러졌다. 그럴 거면 왜 그런 흉험한 기세로 한 사람을 죽이고 남은 명존 측 사람을 공격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말이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일단 그런 공격이 성공했어도 전세는 그들이 불리하였다.


명왕 측의 남은 두 수행원 역시 사태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물어볼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갑자기 이런 유혈극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그간 교내의 양측 종파의 사이였기 때문이다.


명왕 측의 남은 두 수행원은 명존 측의 남은 한 명을 상대하여 죽이거나 제압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때까지는 대치만 하고 있던 4인의 장로 역시 각자 상대를 맞아 22의 대결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였고,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출수를 망설이지 않았다.

 



고종비와 학생들은 갑자기 싸움터가 된 장소에서 물러나 새떼들의 공연이 펼쳐졌던 마당으로 조금씩 움직여서 싸움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양측 역시 고종비와 학생들의 움직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학생 중에 최소한 유귀붕은 어떤 식으로든 이 사태와 연관이 있고, 당연히 교내의 고위층 누군가와도 연관이 있는 관계일 거라고 짐작하였다.


 

명존 측의 두 장로인 인장로와 의장로는 자신들의 수행원은 하나만 멀쩡하고 명왕 측은 둘이 멀쩡한데 실력은 동반했던 여섯이 모두 비슷하였으니 싸움은 보나 마나라고 생각하고 21의 대결에서 이긴 명왕 측의 수행원이 가담하기 전에 상대 장로와의 대결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이 일을 꾸민 것은 아무리 봐도 명왕 측인 것 같으니 더욱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들 수준에서는 넉넉히 막으리라고 생각했던 명존 측 수행원의 공격을 명왕 측의 수행원이 마치 넋이라도 나간 듯이 그대로 맞으며 바로 절명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싸움은 완벽하게 33의 대결이 되었고, 서로의 실력도 매우 비슷하여 쉽게 결착이 나지 않는 상태로 들어섰다.


싸우는 양측이 모두 마음 한구석에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지만, 그런 점을 의식해서 싸움을 중지하기에는 눈앞에 당도한 상대방이 매우 강했다. 더구나 양측은 오랜 앙금이 서로 쌓여있는 상태라 미심쩍은 상황에 대한 의심보다는 본래 갈등하던 상대에 대한 의심이 더 강했다.


유귀붕은 양측이 서로 싸우느라 아무 짓도 못 하자 물러서 있던 마당에서 천천히 걸어서 가장 처음 부상을 입고 빈사 상태에 있던 명존 측의 수행원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꽤 길이가 긴 단검을 꺼내더니 그 수행원의 가슴에 박아 남아있던 명줄을 끊었다. 이 사람은 유귀붕이 그렇게 천천히 단검을 꺼내 서두리지 않고 자신의 가슴으로 내리 찌르는데도 어떤 반격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위중한 상태로 그냥 두어도 죽을 것 같았지만, 유귀붕이 확실히 처리하였다.


유귀붕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단검을 갈무리한 다음 싸우고 있는 명왕 측 장로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빈사에 처한 적이나마 마무리하여 충성심을 보였으니 명왕종에서는 약속을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유귀붕이 그렇게 말하자 싸우던 사람들은 더욱 이 상황에 대한 일말의 의심을 접고 상대방을 해치우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유귀붕과 고종비 그리고 남녀 학생들이 마당으로 물러나 싸움을 지켜보는데 학생 중 하나인 초사력이 말을 걸어왔다.


이곳의 학생들은 제각각 특별한 재주가 하나씩 있었는데 초사력은 특별하게도 재주가 두 가지였다. 그 두 번째 재주는 이곳에 와서

야 그들도 알게 된 것으로 서로 시야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다면 그들 같은 운명을 타고난 19명과는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고도, 또 무림에서 사용되는 전음입밀의 수단이 없어도 대화할 수 있다는 능력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초사력만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초사력은 누구든지 마음으로 말을 걸고 그렇게 마음으로 말을 건 상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고, 원할 때 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초사력이 없으면 이곳에 모인 청년들 사이에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반대로 초사력에게만 어떤 말을 전달하면 아무도 모르게 모든 친구들에게 그 말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능력을 지닌 사람은 초사력과 여자 학생 숙소의 다른 여제자 한 명 그렇게 둘뿐이었다.


유귀붕은 일부러 구내아 등 몇 사람에게는 시험하지 않았지만, 시험할 것도 없이 초사력과 다른 여학생의 능력이 그렇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초사력은 일정 시간에 유귀붕에게 말을 걸어 필요한 사항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전달받은 내용을 초사력은 다른 남자와 또 같은 능력을 지닌 여자에게 전달하였고, 여자는 자기 친구에게 전달하여 그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상황에서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올 수 있었다.


그런 초사력이 마음으로 물어온 것은 특별한 정보가 아니라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은 여섯의 대결에는 이기가 끼어들지 않아?’


이기는 비이기(費利器)를 가리켰다. 비이기의 능력은 유체이탈이었는데 단순히 유체이탈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빙의한 몸을 지배하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지배당하는 처지에서는 의식은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고, 원치 않는 행동을 막을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실험에 따르면, 그들과 동류인 19명의 구천십지의 인재에게는 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 같은 동류가 아니면 누구에게든 빙의할 수 있었다. 절대고수에게는 안 될지도 모른다고 유귀붕은 추측하였지만, 그것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귀붕은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연속으로 너무 많은 사람에게 들어갔다 나왔다 했어. 너무 일찍 빠져나오면 본래 몸의 주인이 지배권을 되찾아 공격에 반응하거나 반격할 수 있지. 그래서 가장 마지막 순간에 더는 본래 몸의 주인이 몸을 되찾아도 막을 수 없는 순간까지 버텨야 해. 그렇지만 죽는 순간까지 버텨서 지배한 몸이 죽으면, 죽지는 않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껴 그러면 한동안은 다른 일을 못 하지. 이기 그 친구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아무런 고통 없이 매번 성공해도 기운이 빠져서 쉬지 않으면 안 돼. 자기 몸에서 벗어나는 것은 온종일 그래도 상관없는 듯하지만, 남의 몸에 들어가는 것은 한 번만 하여도 힘든 일이라 하더군. 지금은 자기 몸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아직은 다 계획대로야 저들은 실력이 비슷해서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기는 그사이에 기운을 회복하고 다시 저들 중 하나에게 들어가 그 몸을 마비시킬 테고 그런 식으로 하나만 남을 때까지 반복하게 될 테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그렇게 남의 몸에 들어가면 그 몸의 무공도 다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그럴 수 있지만, 지금은 그저 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해. 그 몸이 훈련해 온 재주를 사용하는 일도 아직은 어렵지. 그러니까 만약 이기가 숙수(요리사)의 몸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는 없다는 뜻이지. 그렇지만 몇 년 뒤에는 요리사가 지닌 재주, 예를 들면 빠르고 정확하게 야채를 가지런히 써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전히 그 상태에서도 요리는 못해. 요리는 야채를 써는 능력, 불의 온도를 아는 지식 등등 여러 가지가 결합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고기는 언제 준비하는 언제 써는지 야채는 어떻게 써는지 밀가루는 언제 반죽할지 고기 써는 일과 밀가루 반죽하는 일 중에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준비한 재료는 어떻게 보관하고 언제 화덕에 넣을지 요리사의 몸을 지배하고 칼질 능력이나 다른 모든 능력을 자기 것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인 상태일 테니까....’


그럼 지배당한 자의 무공을 펼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겠군.’


그래. 언젠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기로서는 어렵지.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야 우리의 재주는 아직 충분히 여물지 않았어.’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건 내 재주 때문이지. 나는 같은 인생을 꿈속에서 많이 살고 있으니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이 결국 훈련이 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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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일을 매주 하루 늦어 죄송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무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허안 배상 


덧글

  • 구독자 2020/03/29 20:20 # 삭제 답글

    잘보고 있습니다
  • 허안 2020/04/05 22:15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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