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선부臥仙府

follower.egloos.com

포토로그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2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2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완전히 침상에서 일어난 구내아는 석연치 않은 몸 상태와 더불어 여러 가지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일단 창문이 이미 환하게 밝아있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마다 무척 늦게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이곳의 생활이 매우 편해서 매일 농사일로 단련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해이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배가 고프다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구내아는 이곳에서 주는 아침을 먹을 때까지 배가 고픈 일이 없었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치자 가만히 생각하던 구내아는 이미 아침 먹을 때를 놓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은 평소와 달리 너무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 아침 끼니를 놓쳐서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런 생각을 기다렸다는 듯이 후각에 어떤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방향을 향해 눈을 돌리니 문가 탁자에 쟁반이 있고, 그 위에 밥과 고기 채소가 갖춰진 아침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내아는 최근에 이곳에서 친해진 청년들이 구내아가 늦잠을 자자 굳이 깨우지 않았고, 심지어 끼니도 거르자 밥을 타다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준비해두었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마음도 들고 어쩌다 이렇게 늦잠을 잤을까 생각하면서 아침상이 마련된 탁자로 갔다. 그릇을 덮은 보자기를 걷자 그 위에 종이가 보였다. 그것을 펴자 아침상을 마련해둔 사람이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은 구내아가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평범하지 않았다.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고, 안에서 기다려라. 귀붕(貴朋).’


귀붕은 당연히 유귀붕일 것이다. 물론 글자 뜻만 보면 귀한 친구가 남긴 쪽지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요사이 유귀붕의 필체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그것이 유귀붕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굳이 자신의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남긴 데다 서명에 힘을 준 뜻은 

그가 구내아의 귀한 친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지는 쪽지였다.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순간 그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던 구내아는 다음 순간 생각난 듯이 문으로 움직여 문을 밀어보았다. 손가락이 문에 닿는 순간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은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단단하기는 했지만, 방 안에 있는 가구와 연습용으로 가져다 놓은 날이 없는 병기가 있으니 시간은 걸려도 강제로 열고 나갈 수는 있었다.


문을 막아 놓은 것은 필시 유귀붕일 테고 그는 똑똑한 사람이니 그 점을 모를 리 없는데 이렇게만 해 놓은 것은 구내아가 자신의 말을 따라주기를 기대했다고 봐야 했다.


도대체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지?’


그런 의문을 떠올렸으나 일단 밥이나 먹자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벽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구내아에게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밥을 안 먹고 남긴다거나 하는 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내아는 친구가 차려 놓은 상을 비우기 위해 들어 올리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음식에는 약이 들어있다.”


구내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은 방금 확인했고, 일어나서 방안을 한 번 둘러봤으니 방안에 사람이 없다는 점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구내아가 뒤로 돌아보니 구내아가 방금 일어난 침상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가 말했다.

놀랐구나. 당연한 일이지.”


그 남자는 넓은 장포를 입은 장년인이었다. 다만 구내아는 어쩐지 그가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수준으로는 이전에도 맹목검객이라는 장님 무사를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 사람도 돌아보면 갑자기 나타나 있고,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쩐지 그 사람보다 강한 기운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생각이 났고,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밥에 약이 들었다고요?”

그 편지를 남긴 자칭 네 친구가 넣었지. 독약은 아니다. 잠을 푹 자게 하는 약일뿐.”


귀붕이가 왜 저를 재우려고 하는 거죠?”


그 녀석은 오늘 이곳에서 나가려 한다. 그런데 이곳을 맡은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해줄 리가 없지. 유귀붕은 총명한 사람이라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자기 나름의 해결책을 만드려 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 녀석 딴에는 그것은 앞날을 위한 첫 포석이기도 하고.”


이곳 분들이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리란 점은 저도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귀붕이는 어떻게 하려 한다는 건가요?”


오늘 이곳을 방문할 마교의 수뇌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죽이고 그래서 자신들을 막는 사람이 없어지면 떠날 생각이지. 물론 자는 너도 데려갈 작정이다. 깨워서 갈지 자는 채로 업고 가든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 그런데 어르신은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좌는 화무제라고 한다. 너희들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


저희 와요?”


그렇단다. 너와 유귀붕과 그 외 구천십지에서 태어난 19명 모두와 관련이 있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니면 너희는 지금과는 다르게 태어났을 것이다.”


다르게요?”


너희는 풍수상의 기맥이 흐르는 외딴 마을에서 태어나 그 기운을 이었다. 그것은 대개의 사람이 지닌 인식으로는 흉지라고 여겨지는 그러나 실은 천마의 맥을 지닌 사람이 태어나기 좋은 땅이었다. 그러나 나는 천마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천마가 세상에 가져올 피해는 원치 않았다. 천마의 자질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 흉성이 깊어지면 능력 있는 악인이 될 테고 그러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겠지.”


저희가 악인이 된다고요?”


아니 그렇지 않다. 그것이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 되도록 내가 하늘의 기운을 담은 성좌의 배치에 따라 너희들이 태어난 마을 주변에 숲을 조성했다. 그 숲이 땅의 기운이 흐르는 것을 조정하고 변화시켜 너희가 필연적으로 타고날 마성을 하늘의 기운으로 조화시켜 인성이 충분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너희의 재능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었지. 물론 어떤 재능을 얻을지는 본좌도 알 수 없었다만....”


재능이요?”


그래 특별한 재능을 지녔지. 예상했던 것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더욱 대단한 일은 아직도 각자의 재능을 모두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본좌가 말이지. 예를 들어, 본좌는 네 재능을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나 네가 이들 19명의 기재들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명확히 알고 있다. 유귀붕 그 아이도 알고 있는 듯하다. 본능인지 학습으로 깨우친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제게 어떤 재능도 없어서는 아닐까요?”


본좌는 아직 개화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하늘의 이치는 매우 깊어서 본좌는 그것을 흉내 내 너희에게 불어넣었지만, 그 결과마저 본좌의 헤아림 안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있지도 않고.”


귀붕이의 재능은 뭔가요? 탁월한 총명함이겠죠?”


그것도 있다. 그러나 문재(文才)나 무재(武才). 둘 중의 하나는 너희들에게 기본적으로 갖춰진 바탕이 아닌가 싶다. 그것 말고 각자의 특별한 보통의 인간은 지니지 못한 재주가 있는데 유귀붕은 아마도 예지몽을 꾸고 그리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아이는 계속 자기 계획을 꿈을 꿀 때마다 수정하고 있지. 이것은 고금의 어떤 책사도 누리지 못한 특전이지. 자신의 계획이 실행되는 경험을 미리 하고 거기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고 고친다면 천하의 어떤 책사도 그를 당할 수 없겠지. 이런 능력이 있는 자라면 비록 삼류의 책사라도 제갈공명의 환생도 지략으로 누를 수 있겠지.”


다른 친구들은요?”


동물과 소통하고 그들을 부리는 아이도 있는 것 같고, 영혼만 빠져 나와 돌아다니는 능력을 지닌 아이도 있고.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본좌도 너희 모두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록 3일밖에 관찰하지 못했지만, 본좌의 능력으로 3일 안에 알 수 없었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다.”


구내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에게 이런 능력을 부여하신 것은 우리의 마성을 누르고 인성을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도록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본좌가 정말 원했다면 너희의 마성만 누르고 하늘의 기운이 지닌 여러 능력이 너희 각자에게 안배되는 일은 막을 수도 있었다.”


우선 어르신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런 안배를 해주신 일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인성을 함양시키는 일은 그렇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이런 재능을 주신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으신가요? 혹시 아무 염려가 없는 이유가 우리가 어떤 재주를 지녔건 통제할 수 있다

고 자신하시기 때문입니까?”


일부만 맞다. 너희 재주가 아무리 대단하여도 지금 무림의 절대고수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에 장차 절대고수가 나오고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무공과 결합한 절대고수가 된다면 그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니 본좌도 그것이 어떤 수준일지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재능을 지녔다고 절대고수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되어도 그것이 무공과 합쳐져 상승효과를 지닐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저희에게 하늘의 재능이 안배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똑같은 것만 있는 곳에 새로움을 더하고 싶었다.”


“?”

구내아가 이해가 안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화무제가 말했다.


무림을 시장이나 식당에 비유하자면 다 똑같은 음식만 팔거나 아니면 음식 장사만 시장에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림에는 여러 문파와 무공이 있고 그것들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 바탕은 비슷하다. 호랑이나 표범이나 사자나 다 비슷하듯이 말이지. 물론 지금 말한 맹수들의 싸움법은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호랑이들도 개체별로는 다르게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빨과 발톱 그리고 그에 연장된 근육의 힘으로 싸우는 것은 같지. 하지만 날개 달린 늑대가 있다면 그 싸움은 전혀 다르지 않겠느냐? 식당만 있는 곳에 향수 가게와 옷가게가 들어선다면? 그 새로움은 전혀 다른 종류의 다름이 아니겠느냐?”


왜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딱히 없을 필요도 없지. 사실 그보다는 그렇게 다른 종류의 재능은 무림에서 버틸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그런 다른 종류의 재능으로 무림에 행보한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재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신주일군 정도는 되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다.”


신주일군이요?”


그런 사람이 있다. 무공 말고도 여러 재주에 능통한 사람이지. 무공이 없어도 절대고수에 맞설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러나 신주일군은 천재였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대성을 이루었기에 거기에 무공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순서가 반대였다면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을까? 본좌는 모르겠다. 아마 신주일군 본인도 모를 것이다. 분명 신주일군은 무공이 없어도 어쩌면 절대고수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무공에서 먼저 절대고수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성취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조금이라도 무림에 접촉했다면 말이다. 본좌도 신주일군의 인생을 다 모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만 그래도 본좌의 생각이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어떨까? 하늘이 준 무공이 아닌 다른 재주를 지닌 너희들의 앞으로 행보는 어떨까? 어찌 궁금하지 않겠느냐?”





--------------------------------------------------------------------

연휴에 한 편 더 써 올린다는 약속을 어겨 죄송합니다. 이 한 편의 글빚은 꼭 갚겠습니다.


허안 배상 

 


덧글

  • 해밀 2020/05/11 11:27 # 삭제 답글

    화무제가 등장했군요.
    가히 모든일에 천재지변에 준하는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의 몸을 하고있는 신께서.......
    점점 더 재미있어 집니다.
    제법 착한 제일신마 탄생의 비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 애독자 2020/05/11 21:46 # 삭제 답글

    련이 미리 개입해서 뭔가 수작을 부렸을거라 생각 했었는데 ...
    화무제가 나타나리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어떻게 진행될지 더 궁금해집니다.^^
  • 허안 2020/05/17 15:47 #

    고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