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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25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25

 

 

설자(楔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본시 본좌가 네게 아니 너희 모두에게 주려던 것은 지금까지 본좌가 알려준 이야기였다.”


구내아가 조용히 있자 화무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최소한 너는 자신이 지니게 된 힘이나 저간의 사정이나 이런 일에 대해 궁금증이 없다시피 하구나. 본좌는 너희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과 정체성에 대한 희의감을 풀어줄 정보를 강력하게 원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귀붕은 몰라도 너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구나. 따라서 처음 본좌의 생각과는 달리 네게는 별로 준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 정도만 제공하고 훌쩍 떠나도 어쩌면 충분할지 모른다는 선택지는 이미 사라진 셈이다.”


송구합니다.”


네가 송구할 일은 아니지. 마치 조금 전에 말한 소림의 수미처럼 크게 원하는 것이 없으니 크게 줄 것도 없는 상황이랄까? 이래서야 본좌가 오히려 향후 너희의 행보를 보고 싶다는 큰 욕심이 있다는 불리한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제가 딱히 원하는 것이 없으나 오늘 들은 말씀을 듣고 난 뒤에는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실은 저 자신도 이미 제가 태어난 마을을 떠나올 때의 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매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문리가 트여서 생각이 뚜렷해졌다고 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짧았지. 본좌도 그것은 네가 지닌 천부의 재능이 개화하면서 네게 명철을 더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더하여 주실 것이 없다 하시면, 저희의 출생 전에 저희가 인성을 유지하도록 해주신 일에 대하여 보답을 기대하십니까?”


그것은 천하를 위하여 한 일이다. 본좌는 천하에 마인과 악종이 넘치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본좌의 이익에 들어맞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전쟁을 사주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사주라 할 수도 있겠지만, 용인이라고 하자. 하지만 가능하면 그런 비극과 악행은 용인하고 싶지 않다. 물론 정녕 필요하다면 피하지도 않겠다는 점 역시 사실이긴 하다.”


가능하다면 저 역시 어르신과 충돌하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정녕 필요하다면 피하지도 않겠습니다.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하하. 좋다. 잘 배우는구나. 그 정도도 좋다. 본좌는 본래 너희들이 모두 본좌의 일에 투신하여 정성을 다하는 그런 좋은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이 본좌의 일을 방해하면 어려운 일이 되리란 점도 오래전부터 명확했지. 하지만 너희들이 있는 세상이 그리고 무림이 어떻게 변할지는 불명확하고 본좌가 보고 싶은 경과와 결과는 그것이 될 것이다.”


자신의 운명도 좋고 자신의 원하는 의지도 좋다. 무엇이든 세상에 남겨 보아라. 가능하면 좋은 것으로 가능하면 본좌와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화무제는 예외적으로 말을 흐렸는데 하고 싶은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답지 않은 고민을 끝낸 화무제가 말했다.

이 대화는 이 정도로 끝내자. 다만 오늘 일어날 사건은 너와 네 친구들에게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 일에 관찰자로 설 것인지, 주재자가 될 것인지, 혹은 참여자가 될 것인지, 방관자가 될 것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간단하게 방관자가 되려 한다면 저기 미뤄놓은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하는 방법도 있겠지.”


그 말을 듣고 구내아가 밥상에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화무제를 보았을 때는 화무제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만 앉았던 곳에 글이 남겨져 있었다.

그럴 리 없지만, 행여 꿈이라 생각할까 봐 남겨둔다. 더하여 다음에는 검각에서 한번 보자꾸나.’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면서 노파심을 적어 놓은 글을 남기고 화무제는 사라졌다.

 

화무제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기고 간 숙제, 사실 그 숙제는 화무제가 남긴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출제하고 화무제가 그런 숙제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준 것이지만, 아무튼 그러한 숙제는 남았다.

 

구내아는 몰랐지만, 이제까지 유귀붕이 계획한 그리고 내다본 어느 미래에서도 없었던 구내아의 적극적인 결정이 이제부터 일어날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었다.

 

구내아를 깨우고 움직이게 함으로써 화무제가 얻으려 하는 숨겨진 의도가 있을지 모르지만 구내아로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보통 사람들이 평범하게 하는 행동을 특별하게 하여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태도를 택하는 방식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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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독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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