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선부臥仙府

follower.egloos.com

포토로그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35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35

 

 

설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명왕종의 4대 장로는 그렇게까지 솔직해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편리한 말에 기대었다. 그리고 그 말에 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담겨있었기에 거짓도 아니었다.


천자의 말에는 무게가 있는 법이니 믿고 의지할 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소지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이 몸이 창업의 군주가 되려 한다는 점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 이 땅에 오게 된 일은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제치사로서의 명을 받아 왔고, 따라서 가족을 동반할 수 없었다. 대업의 거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곧 그 사실이 조정에도 알려질 것이다. 그러면 가족은 물론이요. 친족까지 그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소지막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대업을 위해 그 아픔을 감내하기로 작정하고 떠나온 길이다. 대업의 길에 아무리 많은 준비를 미리 한들 충분할 수 없으니 포기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너희가 도움을 제시하기 전에도 나름대로 준비한 대업이었으니 너희가 없다고 못 한다면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했겠지. 그러나 이제 그대들이라는 기존에 없던 힘을 얻었다. 그 힘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알아볼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나? 다행히 내 가족과 친족이 모두 황도에 있지는 않다. 명부를 줄 터이니 그들을 구하는 임무를 주겠다. 너희의 충성과 능력을 보여라.”


대상맹의 맹주 종진천(鐘震川)이 눈으로 소지막의 허락을 구한 뒤 입을 열었다.

대의를 위해 멸친하신 분이시니 행여 어르신의 가솔을 손에 넣었다 하여 그것으로 어르신을 좌우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이런 품위 떨어지는 계산적인 말은 천자를 꿈꾸는 사람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기에 종진천이 나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4대 장로 역시 그 정도는 헤아리고 있었다. 소지막이 이제 막 연합을 제의하는 세력에게 자기 혈족의 안위를 넘길 정도의 멍청이였다면, 애초에 그 연합은 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4대 장로는 소지막이 손자를 비밀리에 먼 곳에 감추고,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나라를 세우는 일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혈족이 모두 지금 황실에게 죽어서 후계자가 없으면 황위가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가족과 친족 모두를 미리 빼돌리는 일은 너무 티가 나고,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황위를 이을 적손 한둘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소지막에게는 최선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미 그런 조처했다는 사실을 4대장로는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추가로 혈족을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리고 싶은 것이 또한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혈족을 외부세력에게 넘기는 일이다. 실패하면 모르되 성공한다면, 아무리 이미 버릴 패라고 생각했어도 미련이 남을 사람들이 가족과 친족이다. 쥐고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협상과 거래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협상과 재료의 가장 나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교단이 그 가족을 현재의 조정에 갖다 바치는 일이다. 그런 배신 상황 역시 아무리 버릴 패라고 이미 마음을 먹었어도, 그렇게 간단히 마음 정리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행히 소지막의 옆에는 상인의 계산으로 그 일의 무용성을 말해 준 종맹주 외에도 다른 사람이 있었다.

 


무인인 서국환(西國患) 홍순이 그 점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 일을 함에 있어 너희들이 믿는 신 앞에 맹세하라. 절대 신의를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비록 관부에 속한 무인이나 협의를 논하는 강호에 발을 담근 사람답게 무엇이 핵심인지를 오히려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사대장로는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고, 안 할 생각도 없었다. 그들이 맹세의 말을 하였고, 그로써 이 일은 설령 4대장로가 마음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일로 확정되었다. 이것은 종교인이 특정한 신앙을 지님으로써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는 약점이었다.

 

반면에 종교인이 지니는 강점도 있는데 이 시점에서 소지막측이 생각하지 못한 점이 그것이었다. 소지막의 혈족들이 명왕지종의 구원을 받게 된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 그들이 함께 있게 되리란 점이었다.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종교적 영향력과 경전이 지닌 힘이 신실한 신자와 함께 할 때 얼마나 사람에게 전파력이 큰지 모르고 있었다. 소지막이 나라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황족 가운데 얼마나 많은 열성 교도들이 생길지 알 수 없다.


4대장로는 그 점을 내다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인의 관점으로 이 일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학(儒學)이나 무예(武藝)나 상리(商理)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가족 중에 광신자가 나오기 전에는 그런 경험을 하기 어렵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미리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사람의 내면이 종교에 감화되는 것은 급격하게 어느 날 변하는 것 같아도 실은 매우 천천히 일어나기에 초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은 함께 사는 가족이어도 쉽지 않은 법이다.

 

--------------------------------------------------------------------

퇴직하고 추석 연휴에는 코로나에도 본가 등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평일로는 이틀 지났는데 할 일이 있습니다. 퇴직 후에도 중요하진 않지만 국민건강보험이니 뭐니 처리할 일이 적지 않군요.  모처럼 재개되는 연재인데 분량이 적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전업작가로 다시 시작하니 연재일은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분량도 늘리고요. 



허안 배상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