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선부臥仙府

follower.egloos.com

포토로그



[연재] 와선별부 평서전기 하편 52

평서전기 하편

 

12권 제 52

 

 

설자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저들의 행사에 간섭하려 하니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림(儒林)이 아니라 무림(武林)에 속합니다. 인의(仁義)가 아니라 협의(俠義)를 따르며 논어(論語)가 아니라 논검(論劒)을 하고 군명(君命)을 존중하기보다 협명(俠名)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좇는 주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권평서가 마교 소교주의 질문에 답하며 한 말

- 이한서(李瀚瑞). 강호사설(江湖辭說) 중에서

 

 

 

 

 

 

 

해광수에게 오늘의 첫 손님이 찾아왔다. 꽤 잘 차려입은 노인과 그를 따라온 아들인 듯한 사람 둘, 그리고 하인인 듯한 사람도 셋이나 거느린 일행이었다. 그들이 앞에 서자 해광수의 자리 앞은 그것만으로 꽉 차보였다.


노인이 말을 건넸다.

자네가 점을 꽤 잘 본다고 들었네. 그리고 사람 따라서 말을 해주기도 하고 천기를 누설할 수 없어 감추기도 한다고 하더군. 어디 나를 보아줄 수 있나?”


해광수는 어차피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그건 무슨 점을 보실 것인지 따라 다릅니다.”


혹시 길일을 잡을 줄 안다면 내 딸의 혼삿날을 정해주면 좋겠네. 그리고 그걸 묻는 이유는...”


해광수가 그의 말을 잘랐다.


죄송하오나 그걸 물어보시는 이유는 어르신께서 그때까지 사실 수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시겠군요.”


, 그런 셈이지. 다른 자식들은 다 치우고 이제 하나 남았는데 정혼자 집안을 졸라서 일찌감치 혼례를 올려야 할지. 조금 더 곁에 두어도 될지 궁금하네. 내 조금 더 살 수 있다면, 더 오래 딸을 보아도 되겠고, 굳이 장차 딸의 시집이 될 곳에 굳이 혼삿날을 재촉할 이유도 없지만, 더 살지 못한다면, 내 살았을 적에 하루라도 일찍 보내는 편이 좋지 않겠나.”


해광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죄송하오나 비록 자리가 누추하오나 이 앞에 앉아 주시겠습니까?”


아들들은 비록 마르고 깨끗하긴 하였으나 짚을 짜서 만든 자리에 아비를 앉히는 일이 마땅치 않아 보였으나, 노인은 흔쾌히 응낙했다.


노인이 자리에 앉자 해광수가 말했다.

소인이 어르신의 관상을 보아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맹인이니 손으로 만져서 윤곽을 봐야 하겠습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더듬어야 할 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세. 내 점을 보러 왔으니 뭘 망설이겠나.”


해광수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손을 내밀었다. 노인은 몸을 숙여 해광수가 자신을 잘 만질 수 있도록 했다. 아들들이 얼른 옆에 내려앉아 아비가 몸을 숙이다가 무리가 가지 않도록 옆에서 부축했다.


한참의 시간을 공들여 만진 후에 해광수는 손을 떼더니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소인이 확실히 하기 위해서 어르신의 수상도 볼까 합니다. 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으니 손을 내밀어 주시면 제가 손으로 더듬어 손금을 알고자 합니다.”


노인은 이번에도 흔쾌히 응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해광수는 그 손을 한 손으로 붙잡고 한 손은 노인의 손끝에서 손목까지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면밀하게 짚었다 떼었다 하며 손금을 읽는 듯했다. 그리고는 노인의 다른 손도 부탁해서 그 손도 시간을 들여 읽었다.

 


이렇게 천천히 하니 비록 한 사람이지만 점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거의 반시진이나 걸렸다. 해광수가 마침내 노인의 몸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말했다.


제가 읽은 바를 들으시려면 복채를 주셔야 합니다.”


이를 말인가. 그야 당연한 일이지.”


천기를 읽는 일에는 대가가 따르니 듣지 아니함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결과가 나쁘면, 사람은 화를 내기 마련입니다.”


이 늙은이는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 설령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여도 그게 자네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하늘이 정한 수명일 테지. 하지만 내일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오늘 그 준비를 하고 싶네. 결코 자네를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


그러시다면 복채부터 주십시오.”


그러자 노인이 준비한 주머니를 상위에 올려놓았다.


안에는 분명히 금자나 은자가 들어있을 테지만, 무엇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해광수는 그 주머니가 상위에 올려지자마자 말했다.


너무 많습니다. 숫자는 같아도 되지만, 은이면 충분합니다.”


그 말을 들은 노인과 아들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안에 넣은 것은 은이 아니라 금이 맞지만, 설령 돌을 넣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설령 눈이 보이는 사람이라도 알 수 없는 일을 장님인 해광수는 알아차리고 금이 아니라 은으로 같은 양을 달라고 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다고 생각하지 않네. 솔직하게만 말해주게나.”


복채는 신령한 것이므로 받을 만큼만 받아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다치지 않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해광수가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자 노인은 아들을 쳐다보았고, 아들이 품 안에서 은자가 담긴 다른 주머니를 꺼내어 상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해광수는 그 은자 주머니를 집어서 품에 넣으며 말했다.


처음 주머니보다 은자 한 냥이 덜 들었으나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들이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내가 돈을 아끼려는 것이 아니라 따로 준비한 것이 없어서 있는 것을 주다 보그리되었네. 부족하다면...”


아닙니다. 천기 앞에서 복채에 욕심을 부리는 일은 금기입니다. 하나 적으니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욕심을 줄여서 잘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오니....”


해광수는 그렇게 말하고 말을 잠시 끊었다. 그러자 노인과 아들들이 자연히 긴장하면서 해광수에게 더욱 주목하였다.


하오니, 소인의 말이 귀에 쓰다 하여 너무 원망하시지는 마십시오., 그 또한 욕심입니다.”


노인이 그 말을 받았다.


알겠네. 그리함세. 걱정하지 말고 일러보게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노인장께서는 반년을 넘기지 못하실 듯합니다. 그것도 약을 잘 쓰시면, 그렇게 연장되겠으나, 그 늘어난 기간에 병마의 고통이 매우 크시니 살아도 사신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가?”


죄송합니다.”


아들들의 표정이 변했으나 노인이 보지도 않고 자기 뒤편의 기색을 읽고 손을 내저었다.


자네가 죄송할 것이 무엇인가? 오히려 고맙네. 내 천수를 일러주어 고맙네.”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아들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서더니 그 자리를 천천히 떠나갔다. 해광수가 상대가 보든 말든 앉은 채로 그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다관에서 그 진행되는 모습을 보던 등영림이 안혜빈을 보면서 말했다.

뭐죠? 저 애도 저처럼 미래를 보는 건가요? 그런데 우리 같은 능력은 남녀 한 명씩만 있는 거 아니었어요?”


---------------------------------------------------

항상 건강하세요


허안 배상

 


덧글

  • 구독자 2020/12/07 13:24 # 삭제 답글

    제목이 51에서 52편으로 수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요
  • 허안 2020/12/07 15:16 #

    감사합니다. 오타가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